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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이슬람의 등장

아라비아에서 일어난 새 종교가 100년 만에 이베리아부터 인더스까지를 하나의 정치권으로 묶었다. 사산조는 사라지고 동로마는 영토의 절반을 잃었다.

한반도

삼국의 각축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전쟁 1건

비잔티움-사산 최후의 전쟁602 – 628
동로마 vs 사산 페르시아

황제 마우리키우스가 살해된 것을 구실로 호스로 2세가 침공했다. 사산군은 예루살렘과 이집트까지 점령했다.

예루살렘 함락 614콘스탄티노플 포위 626니네베 627

결과헤라클리우스가 역전해 성십자가를 되찾았지만, 26년의 소모로 두 제국이 함께 탈진했다. 10년 뒤 사막에서 나온 아랍군에 둘 다 무너진다.

26년 · 두 제국의 동반 탈진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8명

당 태종정치630 · 정관의 치를 이룬 당의 2대 황제
598 – 649, 재위 626 – 649

형제를 죽이고 아버지를 밀어내 즉위했지만, 신하의 간언을 듣고 돌궐을 꺾어 「천가한」으로 불린 황제가 됐다.

  • 현무문의 변(626)으로 즉위
  • 동돌궐 격파, 천가한 칭호(630)
  • 정관의 치 — 위징의 간언 수용
선덕여왕정치632 · 한국사 최초의 여왕
재위 632 – 647

신라 진골 성골 혈통이 끊길 위기에서 즉위한 한국사 최초의 여왕. 첨성대를 세우고 황룡사 9층 목탑을 건립하는 등 불교를 통해 왕실의 권위를 세우려 했다.

  • 한국사 최초의 여성 군주로 즉위
  • 첨성대·황룡사 9층 목탑 건립
  • 백제·고구려의 잦은 침공 속 김유신 등 인재 등용
우마르정치640 · 이슬람 제국의 틀을 만든 2대 칼리파
584 무렵 – 644, 재위 634 – 644

10년 만에 시리아·이집트·페르시아를 정복했다. 정복지의 세금·군대·달력 제도를 세워 아랍 부족 연합을 제국으로 바꿨다.

  • 야르무크·카디시야 승리로 비잔티움·사산 격파
  • 예루살렘 무혈 입성(637)
  • 히지라력 제정, 디완(급여 대장) 설치
을지문덕장군612 · 고구려 장군
생몰 미상

수의 대군을 살수로 끌어들여 궤멸시켰다. 30만 중 살아 돌아간 자가 수천이었다.

  • 수의 30만 별동대를 살수로 유인
  • 살수대첩 612
  • 적장에게 보낸 시 「여수장우중문」
현장사상645 ·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온 「서유기」의 삼장법사
602 – 664

국법을 어기고 서역으로 나가 17년 만에 경전 657부를 싣고 돌아왔다. 그의 여행기는 인도 역사의 1급 사료다.

  • 인도 나란다에서 유학(631–643)
  • 「대당서역기」 저술
  • 「반야심경」「유식」 경론 번역
무함마드사상610 · 이슬람을 연 예언자
570 무렵 – 632

메카의 상인이었다가 40세 무렵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메카의 박해를 피해 메디나로 이주(헤지라, 622년)한 뒤 공동체를 조직해 아라비아반도 대부분을 통합했다.

  • 622년 헤지라(메디나 이주), 이슬람력의 기준
  • 630년 메카 무혈 입성
  • 사후 후계 문제가 순니-시아 분열의 씨앗이 됨
쇼토쿠 태자정치604 · 일본의 틀을 세운 사람
574 – 622

불교를 국가의 이념으로 받아들이고 관위 12계와 헌법 17조를 만들었다. 그 불교와 기술은 백제에서 왔다.

  • 헌법 17조 — 화합을 첫 조항에
  • 관위 12계 — 혈통 아닌 능력
  • 호류지 — 세계 최고의 목조 건물
김춘추정치654 · 신라 29대 무열왕
603 – 661

딸이 죽은 대야성 함락 뒤 고구려와 일본을 거쳐 당으로 갔다. 진골로서 처음 왕이 됐다.

  • 648년 나당 동맹을 맺음
  • 진골 출신 첫 왕
  • 660년 백제 멸망을 봄

그 무렵의 사건

628
영이 숫자가 되다
빈자리가 아니라 계산할 수 있는 수가 됐다.
브라마굽타가 영을 더하고 빼고 곱할 수 있는 수로 다뤘다. 음수도 함께 정리했다 — 빚을 재산에서 빼는 것으로 설명했다. 이 개념이 아랍을 거쳐 유럽으로 가서 지금 우리가 쓰는 숫자 체계가 됐다.
622
헤지라
메카에서 메디나로 옮겨가 신앙 공동체가 정치체가 됐다. 이슬람력의 원년이다.
신앙 공동체가 정치체가 된 순간. 이슬람력의 원년이다.
612
살수대첩
수나라의 100만 대군이 고구려를 침공하자, 을지문덕은 살수(청천강)에서 이들을 크게 격파했다.
수 양제는 무리하게 대규모 원정군을 일으켜 고구려를 침공했다. 을지문덕은 정면 승부 대신 거짓으로 패한 척하며 적을 지치게 만드는 전술로 수나라 별동대를 평양 근처까지 깊숙이 유인한 뒤 철수시켰고, 지친 수나라 군대가 살수를 건너는 순간을 노려 크게 무찔렀다. 30만이 넘던 별동대 중 살아 돌아간 병력은 수천 명에 불과했다고 전한다. 이 참패는 수나라가 국력을 소진해 멸망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610
이슬람의 시작
메카의 상인 무함마드가 계시를 받았다고 선언했다.
100년 만에 이베리아부터 인더스까지가 하나의 정치·종교권으로 묶인다.
600
티와나쿠와 와리
해발 3,800미터의 도시.
티티카카 호숫가에 돌을 정밀하게 깎아 맞춘 도시가 섰다. 높은 땅에서 얼지 않게 짓는 두둑 밭을 썼다. 북쪽의 와리와 함께 안데스를 나눠 가졌고, 두 세력이 무너진 자리에서 뒤에 잉카가 자란다.
600
소그드 상인
중앙아시아 소그디아나 출신 상인들이 수백 년간 실크로드 무역을 사실상 장악했다.
사마르칸트·부하라를 근거지로 한 소그드 상인들은 중국·페르시아·비잔티움을 잇는 대상 무역로에서 언어(소그드어)까지 국제 통용어로 쓰일 만큼 영향력이 컸다. 8세기 이슬람 세력의 팽창과 안사의 난 이후 실크로드 교역 구조가 바뀌며 서서히 영향력을 잃었다.

교역로 4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영이 숫자가 되다

사건 · 628 · 없음을 적는 법

브라마굽타가 영을 더하고 빼고 곱할 수 있는 수로 다뤘다. 음수도 함께 정리했다 — 빚을 재산에서 빼는 것으로 설명했다. 이 개념이 아랍을 거쳐 유럽으로 가서 지금 우리가 쓰는 숫자 체계가 됐다.

【그때 그 자리】 AD 628년이다. 인도의 수학자 브라마굽타가 「브라마스푸타싯단타」를 썼다.

그 안에 0을 숫자로 다루는 규칙이 있다.

「어떤 수에서 그 자신을 빼면 0이 된다.」

「0에 어떤 수를 더하면 그 수가 되고, 0을 곱하면 0이 된다.」

0을 계산의 대상으로 명시한 가장 이른 기록으로 꼽힌다.

【왜 그렇게 됐나】 0에는 두 가지 쓰임이 있다.

하나는 자리를 비운다는 표시다. 「빈자리 표시」다.

바빌로니아가 그것을 썼다. 마야도 썼다.

그런데 그것은 수가 아니라 부호였다. 605와 65를 구분하기 위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없음」이라는 양 자체다.

0을 더하고 빼고 곱할 수 있는 수로 다루는 것이다.

그것이 인도에서 나왔다.

왜 인도인가에 대한 설명이 있다.

「슌야(비어 있음)」라는 개념이 철학과 종교에 이미 있었다.

불교의 공(空)과 이어진다는 견해가 오래 있었다. 다만 직접적 인과인지는 논쟁이다.

【어떻게 흘렀나】 브라마굽타가 나눗셈에서 막혔다.

「0을 0으로 나누면 0이다」라고 적었다. 이것은 틀렸다.

어떤 수를 0으로 나누는 문제는 그 뒤 1,000년 넘게 정리되지 않았다.

12세기 바스카라 2세가 「무한대」에 가까운 답을 냈다.

지금은 정의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리고 음수를 다뤘다. 브라마굽타가 그것을 「빚」이라 불렀다.

「재산에서 빚을 빼면 재산이 늘고, 빚에서 재산을 빼면 빚이 는다.」

음수를 정식으로 다룬 이른 사례다. 유럽은 17세기까지 음수를 「가짜 수」로 여겼다.

【그래서】 그 책이 아랍어로 번역됐다.

8세기 바그다드에서다.

알콰리즈미가 그것을 받아 「인도 숫자를 이용한 계산법」을 썼다.

0을 아랍어로 「시프르(비어 있음)」라 옮겼다.

그것이 라틴어로 「제피룸」이 되고, 「제로」와 「사이퍼」로 갈렸다.

1202년 피보나치가 「산반서」로 유럽에 소개했다.

그런데 곧바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피렌체가 1299년 아라비아 숫자 사용을 금지했다. 0을 고쳐 쓰면 숫자를 위조하기 쉽다는 이유였다.

로마 숫자가 몇 백 년 더 쓰였다.

【남은 것】 지금 우리가 쓰는 자릿값 체계가 0 없이는 불가능하다.

십진법으로 큰 수를 적고 계산하는 것이 0 덕분이다.

인도 괄리오르의 사원에 876년의 비문이 있다. 「270」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는데, 인도에서 0이 새겨진 이른 명문 자료다.

바크샬리 필사본은 더 이르다는 측정 결과가 나왔으나 논쟁이 있다.

「아라비아 숫자」라는 이름이 붙었으나, 아랍에서는 「인도 숫자」라 부른다.

지도에서 보기: 6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헤지라 살수대첩 이슬람의 시작 티와나쿠와 와리 소그드 상인 우마이야 칼리파국 성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