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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교황과 황제가 성직자 임명권을 두고 다퉜다. 성지 회복을 내건 원정이 시작되며 유럽이 처음으로 바깥을 향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호족 연합으로 선 왕조가 과거제와 관료제로 중앙집권을 다졌다. 거란·여진과 부딪히며 북방 경계를 지켰다.
해당 없음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성지 탈환을 호소했다. 「신이 그것을 원하신다」는 외침이 군중에서 터져 나왔다고 전한다.
물을 다스려 일어선 나라의 절정이었다. 해자 한 변이 1.5킬로미터인 사원을 자기 무덤으로 지었다. 돌 500만 톤을 40킬로미터 밖에서 수로로 실어 왔다.
몽계필담을 쓴 박학한 관료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사건 · 1107 · 윤관의 여진 정벌
여진족과의 첫 전투에서 고려의 기존 군대가 기병 중심인 여진족에 고전하자, 윤관은 기병·보병·승병을 아우르는 특수 부대 별무반을 조직해 재정비했다. 이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족을 북방으로 몰아낸 뒤, 그 자리에 9개의 성(동북 9성)을 쌓아 새 영토로 편입했다(1107년). 그러나 이 지역을 지키는 데 드는 비용과 여진의 거센 반환 요구 등을 고려해, 고려는 몇 년 뒤 이 땅을 여진에게 돌려주고 철수했다.
여진족이 세력을 키워 고려의 동북 국경을 위협하자, 윤관은 새로운 부대를 조직해 이들을 정벌하고 동북 9성을 쌓았다.
여진족과의 첫 전투에서 고려군은 기병 중심의 여진족 기동력에 밀려 고전했다. 이를 뼈아프게 여긴 윤관은 기병 부대뿐 아니라 보병, 승려로 조직한 승병 부대까지 아우르는 특수 편제 별무반을 새로 창설해 훈련시켰다.
1107년, 윤관은 이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족을 북쪽으로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정복한 지역에 9개의 성을 쌓아(동북 9성) 새 영토로 편입하고 백성을 이주시켜 지키게 했다.
그러나 이 지역은 고려 본토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방어와 관리에 많은 비용이 들었고, 삶의 터전을 잃은 여진족의 거센 반환 요구도 계속됐다. 결국 고려는 몇 년 지나지 않아 이 땅을 여진에게 돌려주고 철수했다. 훗날 이 여진족은 세력을 더 키워 금나라를 세우고 오히려 고려를 위협하는 처지가 됐다.
지도에서 보기: 11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앙코르의 물길 이자겸의 난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카노사의 굴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