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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알렉산드로스가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죽자 부하 장군들이 제국을 나눠 가졌다. 셀레우코스·프톨레마이오스·안티고노스 왕조가 서로 싸우는 동안 서쪽에서 로마가 올라왔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알렉산드로스가 후계를 정하지 않고 죽자 「가장 강한 자에게」라는 말만 남았다. 부하들이 40년을 싸웠다.
결과제국이 안티고노스·프톨레마이오스·셀레우코스의 셋으로 굳었다. 그리스 문화가 이집트에서 인더스까지 퍼진 헬레니즘 세계가 이때 만들어졌다.
공리에서 출발해 논리적으로 정리를 끌어내는 증명 방식을 세웠다. 원론은 2천 년 넘게 교과서로 쓰였다.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내 꿈을 꾸는 것인가. 우화와 역설로 세속의 기준을 뒤집었다.
사람은 본디 착하다 — 그러니 임금은 힘이 아니라 어짊으로 다스려야 하고, 백성을 버린 임금은 갈아치울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
알렉산드로스가 인더스까지 왔다 물러간 뒤의 혼란을 타고 난다 왕조를 무너뜨렸다. 조언자 카우틸리야가 통치와 첩보에 관한 책을 남겼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사건 · BC 300 · 세상의 모든 책을 한곳에 모으려 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항구에 들어오는 배의 책을 모두 필사했다. 에라토스테네스가 여기서 지구 둘레를 오차 2%로 계산했고, 유클리드가 「원론」을 썼다.
【그때 그 자리】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가 죽고 제국이 부하들에게 나뉘었다. 이집트는 프톨레마이오스가 차지했다.
그는 그리스인이 이집트를 다스리는 처지였다. 무력만으로는 정당성이 부족했다.
답으로 택한 것이 학문이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시신을 가져와 안치하고, 그의 이름을 딴 도시를 지중해 학문의 중심으로 만들기로 했다.
【왜 그렇게 됐나】
무세이온을 세웠다. 뮤즈 여신들에게 바친 곳이라는 뜻으로, 오늘날 뮤지엄이라는 말이 여기서 왔다.
학자들을 국비로 초빙했다. 숙식과 급여를 주고 세금을 면제했다. 국가가 연구자를 고용해 연구만 하게 한 첫 사례로 꼽힌다.
부속 도서관에 책을 모았다. 파피루스 두루마리 수십만 권으로 추정된다.
수집 방식이 공격적이었다. 항구에 들어온 배를 뒤져 책이 있으면 압수해 베낀 뒤 사본을 돌려주고 원본을 보관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테네에서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의 원본을 빌리며 큰 보증금을 걸고는, 베낀 뒤 보증금을 포기하고 원본을 가졌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어떻게 흘렀나】
여기서 나온 것이 이렇다.
에우클레이데스가 기하학원론을 썼다. 2천 년 넘게 교과서였다.
에라토스테네스가 지구 둘레를 계산했다. 하지 정오에 시에네에서는 우물 바닥까지 해가 비치는데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막대에 그림자가 진다는 것을 이용했다. 그림자 각도와 두 도시 사이 거리로 계산했는데 오차가 몇 퍼센트에 불과했다.
아리스타르코스가 태양이 중심이라고 주장했다. 코페르니쿠스보다 1,700년 앞선다.
헤로필로스가 인체를 해부해 신경을 밝혔다. 당시 해부는 금기에 가까웠다.
히브리어 성경이 그리스어로 옮겨진 70인역이 여기서 나왔다. 뒤에 기독교가 퍼지는 데 결정적이었다.
호메로스의 텍스트를 여러 사본과 대조해 정본을 만드는 작업도 이뤄졌다. 문헌학이 여기서 시작된다.
【그래서】
도서관은 한 번에 불타지 않았다.
기원전 48년 카이사르가 내전 중에 항구의 배를 태웠는데 그 불이 번져 창고의 두루마리가 탔다는 기록이 있다. 3세기 아우렐리아누스가 반란을 진압하며 학자 구역이 파괴됐다. 391년 테오도시우스의 이교 신전 폐쇄령으로 부속 도서관 세라피움이 헐렸다.
여러 차례에 걸쳐 흩어졌다. 7세기 이슬람 세력이 태웠다는 이야기는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그때는 이미 남은 것이 거의 없었다.
415년 여성 수학자이자 철학자 히파티아가 군중에게 살해됐다. 종교 갈등이 배경이었다. 고대 학문 도시의 끝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자주 인용된다.
【남은 것】
잃어버린 것의 크기는 알 수 없다. 목록조차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리스타르코스의 태양중심설도 다른 사람이 인용한 문장으로만 전한다. 원본은 사라졌다.
소포클레스는 희곡 120편을 썼다고 전하는데 7편만 남았다.
인류가 아는 것을 한곳에 모으려 한 첫 시도였고, 한곳에 모으면 한 번에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함께 보여줬다.
2002년 같은 자리에 새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이름이 비블리오테카 알렉산드리나다.
지도에서 보기: BC 3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야요이 — 벼와 쇠가 건너오다 아피아 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