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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알렉산드로스가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죽자 부하 장군들이 제국을 나눠 가졌다. 셀레우코스·프톨레마이오스·안티고노스 왕조가 서로 싸우는 동안 서쪽에서 로마가 올라왔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알렉산드로스가 후계를 정하지 않고 죽자 「가장 강한 자에게」라는 말만 남았다. 부하들이 40년을 싸웠다.
결과제국이 안티고노스·프톨레마이오스·셀레우코스의 셋으로 굳었다. 그리스 문화가 이집트에서 인더스까지 퍼진 헬레니즘 세계가 이때 만들어졌다.
공리에서 출발해 논리적으로 정리를 끌어내는 증명 방식을 세웠다. 원론은 2천 년 넘게 교과서로 쓰였다.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내 꿈을 꾸는 것인가. 우화와 역설로 세속의 기준을 뒤집었다.
사람은 본디 착하다 — 그러니 임금은 힘이 아니라 어짊으로 다스려야 하고, 백성을 버린 임금은 갈아치울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
알렉산드로스가 인더스까지 왔다 물러간 뒤의 혼란을 타고 난다 왕조를 무너뜨렸다. 조언자 카우틸리야가 통치와 첩보에 관한 책을 남겼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사건 · BC 300 · 한반도에서 규슈로
조몬의 채집 생활이 논농사로 바뀌었다. 벼와 청동기와 철기가 한반도를 거쳐 규슈로 들어갔다. 사람이 모이고 잉여가 생기자 다투기 시작했고, 그 위에서 야마타이 같은 나라가 선다.
【그때 그 자리】 BC 300년 무렵이다. 일본 규슈 북부다.
그전까지 1만 년 넘게 조몬 문화가 이어졌다. 수렵과 채집으로 살았다.
그것이 몇 세대 만에 바뀌었다.
【왜 그렇게 됐나】 세 가지가 거의 동시에 나타났다.
논농사, 청동기, 철기다.
그리고 새로운 토기다. 조몬 토기보다 얇고 무늬가 단순하다.
도쿄 야요이초에서 처음 발견돼 야요이 토기라 부른다.
이것들이 한반도에서 왔다.
무문토기, 지석묘, 세형동검, 논 유적의 구조가 한반도 남부의 것과 이어진다.
규슈 북부 이타즈케와 나바타케에서 논 유적이 나왔다. 수로와 둑과 물을 대는 시설이 있다.
【어떻게 흘렀나】 사람도 함께 건너왔다.
인골이 다르다.
조몬인은 키가 작고 얼굴이 넓으며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야요이 시기 규슈 북부의 인골은 키가 크고 얼굴이 길다.
유전자 분석에서도 대륙 계통의 유입이 확인된다.
얼마나 왔는지는 논쟁이다. 소수가 와서 기술을 전했다는 견해와, 대규모 이주였다는 견해가 갈린다.
지금은 상당한 규모의 유입이 있었다고 보는 쪽이 유력하다.
지역에 따라 다르다. 규슈와 혼슈 서부는 유입이 컸고, 홋카이도와 오키나와는 조몬계가 강하게 남았다.
【그래서】 사회가 바뀌었다.
논농사는 저장이 가능하다. 잉여가 생겼다.
물을 나누고 땅을 정해야 했다. 공동 작업이 필요했다.
그리고 다투기 시작했다.
해자를 두른 마을이 나타난다. 요시노가리 유적이 대표적이다 — 이중 해자와 망루가 있다.
화살촉이 박힌 인골, 머리가 없는 인골이 나온다.
무기가 부장품이 된다.
【남은 것】 「한서 지리지」에 「낙랑 바다 가운데 왜인이 있어 나뉘어 100여 국을 이룬다」고 적혀 있다.
「후한서」에 AD 57년 왜의 노국 왕이 사신을 보내 금인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1784년 후쿠오카에서 그 금인이 실제로 발견됐다. 「한위노국왕(漢委奴國王)」이라 새겨져 있다.
3세기에 야마타이국과 히미코가 나온다.
동아시아에서 기술과 사람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다. 그 방향이 대륙에서 한반도를 거쳐 열도로 갔다.
이 시기를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가 한일 사이에서 오래 예민한 문제였다.
지도에서 보기: BC 3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아피아 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