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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헬레니즘 왕국들

알렉산드로스가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죽자 부하 장군들이 제국을 나눠 가졌다. 셀레우코스·프톨레마이오스·안티고노스 왕조가 서로 싸우는 동안 서쪽에서 로마가 올라왔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1건

디아도코이 전쟁BC 322 – BC 281
알렉산드로스의 부하 장군들

알렉산드로스가 후계를 정하지 않고 죽자 「가장 강한 자에게」라는 말만 남았다. 부하들이 40년을 싸웠다.

입소스 BC 301코루페디온 BC 281

결과제국이 안티고노스·프톨레마이오스·셀레우코스의 셋으로 굳었다. 그리스 문화가 이집트에서 인더스까지 퍼진 헬레니즘 세계가 이때 만들어졌다.

41년 · 제국이 셋으로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6명

맹자사상BC 320 · 성선설과 왕도정치를 말한 유가의 2인자
BC 372 무렵 – BC 289 무렵

사람은 본디 착하다 — 그러니 임금은 힘이 아니라 어짊으로 다스려야 하고, 백성을 버린 임금은 갈아치울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

  • 성선설 — 인간 본성은 선하다
  • 왕도정치와 역성혁명의 정당화
  • 「맹자」 7편, 사서(四書)의 하나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정치BC 322 · 인도 최초의 통일 제국을 세운 사람
BC 340 무렵 – BC 297 무렵

알렉산드로스가 인더스까지 왔다 물러간 뒤의 혼란을 타고 난다 왕조를 무너뜨렸다. 조언자 카우틸리야가 통치와 첩보에 관한 책을 남겼다.

  • BC 322 마우리아 건국
  • 셀레우코스를 물리치고 코끼리 500마리와 강화
  • 아르타샤스트라 — 도덕보다 국익
유클리드과학BC 300 · 기하학 원론의 저자
생몰 미상 (BC 3세기)

공리에서 출발해 논리적으로 정리를 끌어내는 증명 방식을 세웠다. 원론은 2천 년 넘게 교과서로 쓰였다.

  • 원론 편찬
  • 공리적 증명 방법 확립
  • 19세기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출발점
장자사상BC 300 · 나비의 꿈을 꾼 도가의 자유인
BC 369 무렵 – BC 286 무렵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내 꿈을 꾸는 것인가. 우화와 역설로 세속의 기준을 뒤집었다.

  • 「장자」 내편 7편
  • 호접몽·소요유·제물론
  • 벼슬을 거부하고 자유를 택함
알렉산드로스장군BC 334 · 마케도니아 왕
BC 356 – BC 323

스무 살에 즉위해 11년 만에 인더스까지 닿았다.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32세에 죽는다.

  • 가우가멜라에서 다리우스 3세 격파
  • 이집트에 알렉산드리아 건설
  • 그리스 문화를 인더스까지 퍼뜨림
아리스토텔레스사상BC 335 · 논리학에서 생물학까지 학문의 틀을 세운 철학자
BC 384 – BC 322

플라톤의 제자이자 알렉산드로스의 스승. 관찰과 분류로 세계를 설명하려 했고, 그의 체계는 2천 년 동안 서양 학문의 표준이었다.

  • 리케이온 설립, 소요학파
  • 「형이상학」「니코마코스 윤리학」「정치학」
  • 삼단논법 — 형식논리학의 출발

그 무렵의 사건

BC 312
아피아 가도
길이 제국을 만든다.
로마 최초의 포장 간선도로. 자갈과 돌을 여러 층으로 깔아 비가 와도 군단이 하루 30km를 갔다. 이후 8만 km의 도로망이 지중해를 하나로 묶는다.
BC 300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세상의 모든 책을 한곳에 모으려 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항구에 들어오는 배의 책을 모두 필사했다. 에라토스테네스가 여기서 지구 둘레를 오차 2%로 계산했고, 유클리드가 「원론」을 썼다.
BC 300
야요이 — 벼와 쇠가 건너오다
한반도에서 논농사와 금속이 함께 건너갔다.
조몬의 채집 생활이 논농사로 바뀌었다. 벼와 청동기와 철기가 한반도를 거쳐 규슈로 들어갔다. 사람이 모이고 잉여가 생기자 다투기 시작했고, 그 위에서 야마타이 같은 나라가 선다.

교역로 1개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아피아 가도

사건 · BC 312 · 모든 길의 첫 길

로마 최초의 포장 간선도로. 자갈과 돌을 여러 층으로 깔아 비가 와도 군단이 하루 30km를 갔다. 이후 8만 km의 도로망이 지중해를 하나로 묶는다.

【그때 그 자리】 BC 312년이다. 로마가 삼니움과 싸우고 있었다.

감찰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가 길을 놓았다.

로마에서 남쪽 카푸아까지 195km다. 뒤에 브린디시까지 연장돼 총 569km가 됐다.

「비아 아피아」다.

【왜 그렇게 됐나】 군사용이었다.

군단을 빠르게 남쪽으로 보내야 했다.

그전까지 길은 흙길이었다. 비가 오면 진창이 되어 못 다녔다.

아피아 가도는 사철 다닐 수 있었다.

만드는 방법이 정교하다.

먼저 땅을 1m 넘게 판다.

바닥에 큰 돌을 깔고, 그 위에 자갈과 석회를 섞어 다지고, 다시 잔자갈을 얹은 뒤, 맨 위에 다듬은 현무암 판을 맞춰 깐다.

가운데를 볼록하게 만들어 물이 양옆으로 흐르게 했다. 배수로를 팠다.

직선으로 놓았다. 언덕은 깎고 늪은 메우고 계곡에는 다리를 놓았다.

【어떻게 흘렀나】 그 뒤 로마가 계속 지었다.

제국 전성기에 포장도로가 8만 km, 전체 도로망이 40만 km에 이르렀다.

1마일마다 이정표를 세웠다. 로마까지의 거리와 놓은 사람의 이름을 새겼다.

포룸에 「밀리아리움 아우레움(황금 이정표)」을 세웠다. 모든 거리의 기준점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여기서 왔다.

역참을 두었다. 급한 전령이 하루 300km를 갔다.

【그래서】 길이 제국을 만들었다.

군대가 빨리 움직이니 적은 병력으로 넓은 땅을 지켰다.

세금과 물자와 소식이 흘렀다.

그리고 의도하지 않은 것이 흘렀다.

사도 바울이 그 길로 로마에 갔다. 사도행전에 「아피이 광장」이 나온다.

기독교가 로마 도로망을 타고 퍼졌다.

BC 71년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이 진압된 뒤, 붙잡힌 6,000명이 아피아 가도를 따라 십자가에 매달렸다.

카푸아에서 로마까지 200km에 걸쳐서다.

【남은 것】 지금도 일부 구간에 원래의 포장돌이 남아 있다.

2,300년이 지났다.

바퀴 자국이 돌에 파여 있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는 뒤에 눈이 멀었다. 그래서 「카이쿠스(눈먼 자)」라 불렸다.

노년에 원로원에 실려 나와 피로스와의 강화에 반대하는 연설을 했다.

로마 문헌에 이름이 남은 가장 오래된 연설로 꼽힌다.

지도에서 보기: BC 323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야요이 — 벼와 쇠가 건너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