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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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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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흑사병 이후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지자 노동력이 귀해지고 농노제가 흔들렸다. 몽골 질서가 무너진 자리에 오스만과 명이 들어섰다.

한반도

원 간섭기

몽골과 강화한 뒤 원의 부마국이 됐다. 공민왕이 반원 개혁을 시도했지만 왕조는 이미 기울었다.

전쟁 2건

백년전쟁1337 – 1453
잉글랜드 vs 프랑스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한 잉글랜드 왕과, 대륙에 남은 잉글랜드 영지를 거두려는 프랑스 왕이 부딪혔다. 플랑드르의 모직 이권도 걸려 있었다.

크레시 1346푸아티에 1356아쟁쿠르 1415오를레앙 1429카스티용 1453

결과116년 만에 프랑스가 대륙에서 잉글랜드를 몰아냈다. 양국 모두 국민 의식이 생겨났다.

116년 · 흑사병과 겹쳐 양국 인구가 크게 줄었다
홍건적의 난과 명의 건국1351 – 1368
홍건적·주원장 vs 원

기근과 황하 범람, 그리고 원의 가혹한 부역이 겹쳤다. 백련교 신앙이 봉기를 조직했다.

파양호 1363대도 함락 1368

결과주원장이 원을 북쪽으로 몰아내고 명을 세웠다.

17년 · 원 조정이 북으로 쫓겨났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4명

이븐 바투타탐험1350 · 30년을 걸어 12만 km를 간 사람
AD 1304 – AD 1369

메카 순례로 시작해 인도·중국·아프리카까지 돌았다. 마르코 폴로보다 세 배 멀리 갔다.

  • 아프리카·중동·인도·중국·이베리아를 순회
  • 델리 술탄국의 법관으로 일함
  • 「리흘라」 — 14세기 세계의 목격담
가자 마다정치1350 · 섬들을 하나로 묶겠다 한 재상
? – 1364

마자파힛의 재상으로 군도를 통일하기 전에는 향신료를 먹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지금 인도네시아가 국가 이념의 뿌리로 그를 든다.

  • 팔라파 맹세
  • 자바에서 말라카까지
  • 지금 인도네시아 대학과 화폐에 이름이 남았다
주원장정치1368 · 거지 승려에서 명나라를 세운 홍무제
1328 – 1398, 재위 1368 – 1398

홍건적의 난에서 몸을 일으켜 몽골을 북으로 내쫓았다. 재상제를 없애고 공신 수만 명을 숙청해 황제 독재의 틀을 만들었다.

  • 명 건국, 원을 초원으로 축출(1368)
  • 호유용·남옥 옥사로 공신 대숙청
  • 이갑제·어린도책 — 농촌 통제 체제
만사 무사정치1324 · 금을 뿌리며 순례한 왕
1280 무렵 – 1337 무렵

말리 제국의 왕으로 메카 순례에 수행원 6만과 금 실은 낙타 수백 마리를 데려갔다. 카이로에 금을 너무 많이 뿌려 그 지역 금값이 10년 넘게 회복되지 않았다.

  • 1324년 메카 순례
  • 팀북투에 학자와 건축가를 데려옴
  • 1375년 카탈루냐 지도에 금덩이를 든 모습으로 그려짐

그 무렵의 사건

1350
아유타야
프랑스 사절이 파리만큼 크다고 적었다.
강 세 줄기가 만나는 섬에 세운 도시로 400년을 갔다. 중국·일본·페르시아·포르투갈 상인이 각자의 구역에 살았다. 1767년 미얀마의 침공으로 불타 사람들이 남쪽으로 내려가 방콕을 세운다.
1347
흑사병
3년 만에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노동력이 귀해지며 농노제가 흔들린다.
노동력이 귀해져 농노제가 흔들리고 임금이 올랐다. 중세 질서가 여기서 금이 간다.
1356
공민왕의 반원 개혁
고려 공민왕은 원나라의 간섭이 약해진 틈을 타 친원 세력을 몰아내고 빼앗겼던 영토를 되찾는 등 자주적인 개혁을 펼쳤다.
그는 원나라 연호 사용을 중단하고, 원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기철 등 친원 권문세족을 숙청했다. 원이 함경도 일대에 설치했던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공격해 100년 만에 그 땅을 되찾았고, 몽골식 풍습(변발·호복)도 금지했다. 신진 사대부를 등용해 권문세족을 견제하려 했으나, 개혁을 뒷받침하던 승려 신돈이 실각하고 공민왕 자신도 시해당하면서 개혁은 완결되지 못한 채 끝났다. 그럼에도 그의 개혁은 이후 신진 사대부가 성장해 조선 건국으로 이어지는 흐름의 중요한 발판이 됐다.
1356
한자동맹
뤼베크를 중심으로 북유럽 상업 도시들이 맺은 동맹. 발트해와 북해 무역을 200년간 지배했다.
청어·모피·밀랍·곡물을 실은 코그선이 노브고로드에서 런던까지 오갔다. 도시들은 공동 창고와 특권을 지켰고 필요하면 함대를 모아 덴마크 왕과 싸워 이겼다. 1356년 뤼베크에서 첫 총회가 열려 동맹이 제도로 자리 잡았다. 영토 국가가 커지고 대서양 무역이 열리면서 쇠퇴했으나, 오늘의 독일 항공사 이름에 그 자취가 남았다.
1324
말리 제국의 전성기
14세기, 서아프리카의 말리 제국은 황금과 소금 무역으로 번영을 누리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손꼽히는 부유하고 강력한 제국으로 성장했다.
황제 만사 무사가 1324년 메카 순례길에 어마어마한 금을 뿌리듯 쓴 일화는 오늘날까지도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개인의 사례로 회자된다. 그가 지나간 카이로 등지에서는 이 대량의 금 유입으로 물가가 한동안 폭등했을 정도였다. 제국의 중심지 팀북투는 이슬람 학문의 중심지로도 이름을 떨쳐, 서아프리카 곳곳에서 학자와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이후 내부 계승 다툼과 외부 세력의 압박으로 15~16세기에 걸쳐 서서히 쇠퇴했다.
1377
직지심체요절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심체요절」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이다.
정식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로, 불교 선종의 가르침을 정리한 책이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됐는데, 이는 독일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1450년대)보다 70여 년 앞선 것이다. 상하 두 권 중 하권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전해지는데, 19세기 말 조선에 근무하던 프랑스인 콜랭 드 플랑시가 수집해 프랑스로 가져간 뒤 오랫동안 존재조차 잊혔다가, 1972년 재불 학자 박병선 박사가 이를 찾아내 세계에 알렸다.

교역로 3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아유타야

사건 · 1350 · 417년을 간 항구 왕국

강 세 줄기가 만나는 섬에 세운 도시로 400년을 갔다. 중국·일본·페르시아·포르투갈 상인이 각자의 구역에 살았다. 1767년 미얀마의 침공으로 불타 사람들이 남쪽으로 내려가 방콕을 세운다.

【그때 그 자리】 1350년이다. 지금의 태국 중부, 세 강이 만나는 자리다.

우통 왕이 아유타야를 세웠다.

이름이 인도 서사시 「라마야나」의 도시 아요디아에서 왔다.

섬처럼 강에 둘러싸인 곳이라 방어에 유리했다.

【왜 그렇게 됐나】 바다와 이어졌다.

차오프라야강을 따라 100km쯤 내려가면 바다다.

배가 강을 거슬러 도시까지 왔다.

동서 교역의 중간에 있었다. 인도양과 남중국해가 만나는 자리다.

17세기에 인구가 100만에 이르렀다는 추정이 있다. 당시 런던이나 파리보다 컸다.

외국인 거주 구역이 따로 있었다. 포르투갈·네덜란드·일본·중국·페르시아 사람들이 살았다.

일본인 마을에 야마다 나가마사라는 사람이 있었다. 용병대를 이끌다 왕의 신임을 얻어 지방 태수까지 올랐다.

그리스인 콘스탄틴 파울콘은 재상 자리까지 갔다.

【어떻게 흘렀나】 프랑스와 외교가 있었다.

1686년 나라이 왕이 루이 14세에게 사절을 보냈다. 베르사유에서 접견했다.

그 장면을 그린 그림이 남아 있다.

프랑스가 왕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려 했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1688년 반발이 터졌다. 「시암 혁명」이라 부른다.

프랑스군이 쫓겨났고 파울콘이 처형됐다.

그 뒤 시암이 유럽과 거리를 두었다.

이 경험이 19세기에 다시 쓰인다 — 열강을 하나에 몰아주지 않고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방식이다.

【그래서】 1767년 버마(콘바웅 왕조)가 함락했다.

14개월을 포위했다.

도시가 불탔다. 불상의 금을 벗기려 태웠고, 왕실 문서와 문학이 대부분 사라졌다.

주민 수만 명이 끌려갔다.

그래서 태국 고전 문학의 상당수가 이 시기 이전 것으로 전하지 않는다.

417년 만이다.

【남은 것】 탁신이 곧 나라를 되찾았다. 수도를 톤부리로 옮겼고, 다시 방콕으로 옮겼다.

지금 태국 왕실이 그 뒤를 잇는다. 방콕의 공식 이름 첫 부분이 「크룽텝 마하나콘」인데, 그 안에 「아유타야」가 들어 있다.

유적이 남아 있다. 목이 잘린 불상이 줄지어 있다.

보리수 뿌리에 감긴 불상 머리가 유명하다. 함락 때 떨어진 것이 나무에 자라 들어간 것으로 본다.

1991년 세계유산이 됐다.

태국과 미얀마 사이에서 이 전쟁의 기억이 지금도 예민하다.

지도에서 보기: 13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흑사병 공민왕의 반원 개혁 한자동맹 말리 제국의 전성기 직지심체요절 위화도 회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