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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아라비아에서 일어난 새 종교가 100년 만에 이베리아부터 인더스까지를 하나의 정치권으로 묶었다. 사산조는 사라지고 동로마는 영토의 절반을 잃었다.
신라가 당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통일했고 북쪽에는 발해가 섰다. 신라 말 호족이 일어나며 후삼국으로 갈라진다.
왜당이 백제와 고구려 땅에 도호부를 두고 신라까지 지배하려 하자, 신라가 약속이 깨졌다고 판단했다.
결과신라가 매소성·기벌포에서 당군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확보했다.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약속을 어긴 당을 다시 몰아냈다. 죽어서 용이 되어 바다를 지키겠다며 동해에 묻혔다.
당나라에 유학해 화엄 사상을 배우고 돌아와 신라에 화엄종을 열었다. 부석사를 비롯한 여러 사찰을 세우며 불교 대중화에 힘썼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외손자이자 4대 칼리파 알리의 아들. 우마이야 칼리파 야지드 1세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저항하다 카르발라에서 소수의 지지자와 함께 전멸했다.
당으로 가던 길에 해골물을 마시고 돌아섰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깨달음이다. 이후 시장과 마을을 돌며 글 모르는 사람에게 불교를 전했다.
후궁에서 시작해 황후가 되고 끝내 스스로 황제가 됐다. 나라 이름까지 주(周)로 바꿨다.
가야 왕족의 후손으로 신라군을 이끌어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렸다.
황산벌에서 5천으로 신라 5만을 맞았다. 네 번 이기고 다섯 번째에 무너졌다. 떠나기 전 자기 가족을 죽였다고 전한다.
딸이 죽은 대야성 함락 뒤 고구려와 일본을 거쳐 당으로 갔다. 진골로서 처음 왕이 됐다.
당의 강제 이주지에서 무리를 이끌고 동쪽으로 빠져나갔다. 천문령에서 추격군을 꺾고 동모산에 나라를 세웠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사건 · 676 · 당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확보했다. 한반도가 처음으로 하나의 정치권이 됐다.
한반도가 처음으로 하나의 정치권이 됐다. 다만 고구려 땅 대부분을 잃었다.
【그때 그 자리】
642년의 신라는 벼랑이었다. 백제 의자왕이 대야성을 함락시켰고 성주 김품석과 그 아내가 죽었다. 그 아내가 김춘추의 딸이었다. 신라는 서쪽으로 40여 성을 잃고 낙동강 동쪽에 갇혔다.
이때 동아시아 전체가 하나의 판이었다. 중국은 589년 수가 통일한 뒤 618년 당으로 넘어가 있었다. 수는 고구려를 네 번 쳤다가 망했고 당 태종도 645년 안시성에서 물러났다. 고구려는 중국이 통일될 때마다 반드시 부딪히는 상대였다.
【왜 그렇게 됐나】
김춘추는 먼저 고구려로 갔다. 연개소문은 죽령 이북 땅을 내놓으라 했고 김춘추는 억류됐다가 겨우 빠져나왔다. 일본에도 갔지만 소득이 없었다. 남은 곳은 당뿐이었다.
648년 당에서 맺은 약속은 명확했다. 백제와 고구려를 함께 치고 평양 이남은 신라가 갖는다. 당은 고구려를 정면에서 못 이겼으니 배후를 열 길이 필요했고 신라는 살아남을 힘이 필요했다. 두 나라의 필요가 맞아떨어졌다.
【어떻게 흘렀나】
660년 소정방의 13만 군이 금강으로 들어오고 김유신이 황산벌을 넘었다. 계백의 5천이 네 번 이기고 다섯 번째에 무너졌다. 사비성이 열흘 만에 떨어졌다.
668년 고구려가 무너졌다. 연개소문이 죽은 뒤 세 아들이 갈라졌고 맏이 남생이 당으로 넘어가 길잡이를 했다. 밖의 힘보다 안의 분열이 먼저였다.
그리고 당이 약속을 어겼다.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 고구려 땅에 안동도호부를 두고 신라 땅에까지 계림대도독부를 설치했다. 셋 다 삼키려 한 것이다. 문무왕은 백제와 고구려 유민을 받아들여 당과 싸웠다. 675년 매소성에서 육군을, 676년 기벌포에서 수군을 깼다. 당은 안동도호부를 요동으로 물렸다.
【그래서】
한반도에 하나의 나라가 섰다. 다만 대동강 이남이었다. 고구려의 만주 땅은 들어오지 못했고, 30년 뒤 그 자리에서 발해가 선다.
【남은 것】
외세를 끌어들인 통일이라는 비판은 조선 후기부터 있었고 지금도 있다. 반대로 당을 몰아낸 7년의 전쟁을 함께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 전쟁 뒤 한반도의 말과 제도가 하나로 묶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삼국의 말이 섞여 오늘의 한국어가 됐고 그 바탕은 통일신라 경주의 말이다.
지도에서 보기: 6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스리위자야 신문왕의 왕권 강화 우마이야 칼리파국 성립 발해 건국 스리위자야의 번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