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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50년 동안 황제가 스무 명 넘게 바뀌었다. 군대가 황제를 세우고 죽였으며 은화의 은 함량이 5퍼센트 아래로 떨어졌다. 국경이 동시에 뚫렸다.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해당 없음
황건적 진압으로 이름을 얻고 헌제를 옹립해 명분을 쥐었다. 둔전제로 군량을 자급한 것이 다른 군벌과의 결정적 차이였다.
국력이 위의 5분의 1인 촉을 이끌고 다섯 번 북벌했다.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지지 않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해석이 많다.
야마타이국의 여왕으로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 친위왜왕 칭호와 거울 100장을 받았다. 나라가 어디였는지는 지금도 규슈설과 기나이설로 갈린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사건 · 220 · 후한이 끝나고 셋으로
조비가 헌제의 선양을 받아 위를 세우자 유비가 촉을, 손권이 오를 세웠다. 400년 통일이 끝나고, 이 60년의 이야기가 1,000년 뒤 「삼국지연의」가 된다.
【그때 그 자리】 AD 220년이다.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가 조비에게 자리를 넘겼다.
400년을 이어 온 한이 끝났다.
이듬해 유비가 촉에서, 그다음 해 손권이 오에서 각각 황제를 칭했다.
【왜 그렇게 됐나】 무너지는 과정이 길었다.
외척과 환관이 번갈아 권력을 쥐었다. 「당고의 화」로 지식인들이 대거 숙청됐다.
184년 황건적의 난이 터졌다. 태평도라는 종교 조직이 이끌었다.
「푸른 하늘은 이미 죽었고 누런 하늘이 서리라」는 구호였다.
조정이 진압을 지방에 맡겼다. 각지의 장수들이 군대를 갖게 됐다.
그 뒤 동탁이 낙양을 불태우고, 군웅이 할거했다.
조조가 헌제를 옆에 끼고 「천자를 받들어 신하를 호령했다」.
208년 적벽에서 밀린 뒤 남쪽을 얻지 못했다.
【어떻게 흘렀나】 셋의 성격이 달랐다.
위는 중원을 쥐었다. 인구와 생산이 압도적이었다.
「구품중정제」를 만들었다. 인물을 아홉 등급으로 나눠 관리를 뽑는 방식이다.
공정하게 하려던 것인데 곧 문벌이 독점했다. 「상품에 한문(寒門) 없고 하품에 세족(勢族) 없다」는 말이 나왔다.
촉은 가장 작았다. 인구가 위의 5분의 1도 안 됐다.
제갈량이 「출사표」를 올리고 다섯 번 북벌했다.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나갔다는 평가가 있다.
오는 강남을 개발했다. 이 시기부터 양쯔강 이남이 본격적인 농지가 된다.
배를 만들어 대만과 동남아시아로 사절을 보냈다.
【그래서】 60년 만에 끝났다.
263년 위가 촉을 멸했다.
265년 사마염이 위를 대신해 진(晉)을 세웠다.
280년 오를 멸하고 통일했다.
그런데 그 통일이 36년밖에 못 갔다. 팔왕의 난과 영가의 난으로 무너진다.
【남은 것】 인구가 크게 줄었다.
후한 말 5,600만이던 호적 인구가 삼국 시기에 800만 대로 떨어진다.
실제 사망자만은 아니고 호적에서 빠진 사람이 많았을 것으로 본다. 그래도 참상은 분명하다.
조조가 시에 적었다. 「백골이 들에 드러나고 천 리에 닭 우는 소리가 없다.」
「삼국지연의」가 14세기에 나왔다. 촉을 정통으로 그렸다.
정사와 소설이 뒤섞여 전해진다. 제갈량의 여러 계략, 관우의 오관참장, 초선은 소설의 것이다.
그래도 그 시대가 동아시아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역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