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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아라비아에서 일어난 새 종교가 100년 만에 이베리아부터 인더스까지를 하나의 정치권으로 묶었다. 사산조는 사라지고 동로마는 영토의 절반을 잃었다.
신라가 당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통일했고 북쪽에는 발해가 섰다. 신라 말 호족이 일어나며 후삼국으로 갈라진다.
해당 없음
당의 강제 이주지에서 무리를 이끌고 동쪽으로 빠져나갔다. 천문령에서 추격군을 꺾고 동모산에 나라를 세웠다.
후궁에서 시작해 황후가 되고 끝내 스스로 황제가 됐다. 나라 이름까지 주(周)로 바꿨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외손자이자 4대 칼리파 알리의 아들. 우마이야 칼리파 야지드 1세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저항하다 카르발라에서 소수의 지지자와 함께 전멸했다.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약속을 어긴 당을 다시 몰아냈다. 죽어서 용이 되어 바다를 지키겠다며 동해에 묻혔다.
당나라에 유학해 화엄 사상을 배우고 돌아와 신라에 화엄종을 열었다. 부석사를 비롯한 여러 사찰을 세우며 불교 대중화에 힘썼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사건 · 698 · 고구려 유민과 말갈이 만주에 세운 나라. 스스로 고구려를 잇는다고 밝혔다.
고구려 유민이 만주에 세운 나라. 스스로 고구려를 잇는다고 밝혔다.
【그때 그 자리】
668년 고구려가 무너진 뒤 만주는 당의 지배 아래 놓였다. 당은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두고 고구려 유민 2만 8천 호를 중국 안쪽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요서의 영주는 그렇게 옮겨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과 거란인이 섞여 살았다.
이들은 살던 곳에서 뽑혀 온 처지였고 당의 지방관은 이들을 거칠게 다뤘다.
【왜 그렇게 됐나】
696년 거란인 이진충이 영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당의 통제가 잠깐 풀린 그 틈에 고구려 장수 출신 걸걸중상과 아들 대조영, 말갈 추장 걸사비우가 무리를 이끌고 동쪽으로 빠져나갔다.
당이 추격군을 보냈다. 걸사비우가 죽고 걸걸중상도 도중에 죽었다. 대조영이 남은 무리를 이끌고 천문령에서 당군을 맞아 이겼다. 쫓기던 집단이 추격자를 꺾은 순간이었다.
【어떻게 흘렀나】
698년 대조영은 동모산에 성을 쌓고 나라를 세웠다. 처음 이름은 진국이었고 713년 당이 대조영을 발해군왕에 봉하면서 발해가 됐다.
2대 무왕은 당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732년 장문휴를 보내 산둥반도의 등주를 바다 건너 공격했다. 당의 본토를 친 것이다. 3대 문왕은 방향을 바꿔 당의 제도와 문물을 받아들이고 수도를 상경용천부로 옮겼다. 9세기 선왕 때 영토가 가장 넓어져 당은 발해를 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 해동성국이라 불렀다.
【그래서】
한반도 남쪽에 신라, 북쪽 만주에 발해가 나란히 선 200년이 남북국시대다. 발해는 일본에 34번 사신을 보냈는데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스스로를 고려국왕이라 칭하고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았다고 적었다. 일본 측 기록에도 남아 있다.
926년 거란에 멸망했다. 마지막 왕 대인선이 항복했고 세자 대광현이 수만 명을 이끌고 고려로 왔다. 왕건은 이들을 받아들이고 대광현에게 왕씨 성을 줬다.
【남은 것】
발해를 누구의 역사로 볼 것인가는 지금도 갈린다. 한국은 고구려 계승국으로, 중국은 당의 지방정권인 말갈족 국가로, 러시아는 연해주 원주민의 국가로 본다. 지배층 다수가 고구려계였다는 점, 스스로 고려를 칭한 국서, 온돌과 굴식돌방무덤 같은 유적이 한국 학계의 근거다. 유적 대부분이 중국과 러시아 땅에 있어 한국 연구자가 발굴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 논쟁의 현실적 조건이다.
지도에서 보기: 6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스리위자야의 번성 신문왕의 왕권 강화 신라의 삼국통일 스리위자야 우마이야 칼리파국 성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