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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제국을 넷으로 나눠 통치했고 콘스탄티누스가 다시 합쳤다. 수도가 동쪽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겨가고, 박해받던 기독교가 국교가 되어간다.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왜황후 가씨의 전횡에서 시작해 사마씨 황족 여덟이 서로를 쳤다. 각자 이민족 기병을 용병으로 끌어들인 것이 화근이었다.
결과황제 둘이 잇달아 포로가 되어 살해됐다. 화북이 130년간 오호십육국의 혼란에 들어갔고, 귀족들은 강남으로 피난해 동진을 세웠다.
기독교를 공인하고 수도를 동쪽으로 옮겼다. 제국의 무게 중심이 바뀌었다.
노예 출신 병사에서 황제가 됐다. 혼자 다스리기엔 제국이 너무 커졌다고 보고 넷으로 쪼갠 뒤, 스스로 물러나 양배추를 길렀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사건 · 300 · 머리 없는 무덤
작은 섬무리에 서로 통하지 않는 언어가 100가지 넘게 산다. 인구 대비 세계에서 가장 언어가 많은 곳이다. 산과 바다가 마을을 갈라놓았고, 각 마을이 오래 따로 살았다는 뜻이다. 로이 마타의 무덤에는 마흔 명이 함께 묻혀 있었다.
【그때 그 자리】 AD 300년 무렵으로 적혀 있으나, 사람이 들어온 것은 그보다 훨씬 이르다.
BC 1000년 무렵 라피타 사람들이 바누아투에 닿았다.
태평양 서남쪽, 80개가 넘는 섬으로 된 곳이다.
【왜 그렇게 됐나】 2004년 에파테섬 테오우마에서 공동묘지가 발굴됐다.
불도저가 흙을 밀다 토기 조각이 나오며 알려졌다.
3,000년 전 라피타 시기의 것이다.
68기 이상의 무덤이 나왔다.
그 가운데 다수가 머리가 없었다.
【어떻게 흘렀나】 우연이 아니다.
묻은 뒤 살이 썩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파서 두개골만 꺼낸 것으로 본다.
그리고 다른 곳에 안치했다.
한 무덤에서는 목이 없는 유골의 가슴 위에 두개골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다른 사람의 머리를 얹어 준 것이다.
조상의 머리를 집이나 사당에 모시는 관습이 태평양 여러 곳에 있었다.
그 뿌리를 3,000년 전에서 확인한 셈이다.
토기가 함께 나왔다. 사람 얼굴 무늬가 새겨진 라피타 항아리다.
그 안에 뼈를 담은 것도 있었다.
동위원소 분석 결과, 묻힌 사람 가운데 그 섬에서 자라지 않은 이가 여럿이었다.
1세대 이주민이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유전자 연구가 뒤에 나왔다.
초기 라피타인은 파푸아 계통이 거의 섞이지 않은 아시아 계통이었다.
그런데 지금 바누아투 사람들은 파푸아 계통이 압도적이다.
즉 처음 온 사람들이 정착한 뒤, 나중에 근처 뉴기니 쪽에서 대규모 이주가 있었다는 것이다.
언어는 오스트로네시아 계통이 남았다.
사람은 바뀌고 말은 남은 경우다.
【남은 것】 바누아투는 인구 30만에 언어가 130개가 넘는다.
1인당 언어 수로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나라다.
섬이 갈려 있고 골짜기마다 따로 살았기 때문이다.
1980년 독립했다. 그전까지 영국과 프랑스가 함께 다스리는 특이한 형태였다 — 「콘도미니엄」이라 불렸고, 두 나라의 법과 경찰과 학교가 따로 있었다.
지금 해수면 상승으로 마을을 옮기고 있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