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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제국을 넷으로 나눠 통치했고 콘스탄티누스가 다시 합쳤다. 수도가 동쪽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겨가고, 박해받던 기독교가 국교가 되어간다.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해당 없음
로마와 페르시아와 함께 당대 4대 강국으로 꼽히던 나라다. 홍해 무역을 쥐었고, 로마보다 앞서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축에 든다.
기독교를 공인하고 수도를 동쪽으로 옮겼다. 제국의 무게 중심이 바뀌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사건 · 330 · 제국의 중심이 동쪽으로 옮겨 가다
제국의 무게 중심이 동쪽으로 옮겨갔다. 이 도시는 1,123년을 더 버틴다.
【그때 그 자리】 AD 330년 5월 11일이다. 콘스탄티누스가 새 수도를 봉헌했다.
보스포루스 해협 유럽 쪽 끝의 비잔티온이라는 그리스 식민시 자리다.
「노바 로마(새 로마)」라 불렀는데, 곧 창건자의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왜 그렇게 됐나】 로마는 이미 수도로서 불편했다.
국경이 라인·도나우와 유프라테스에 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멀었다.
3세기의 위기 때 황제들이 밀라노나 니코메디아에 머물렀다.
그리고 경제 중심이 동쪽이었다. 이집트의 곡물과 시리아의 교역이 그쪽에 있었다.
위치가 특별했다.
삼면이 바다다. 육지로 이어진 쪽만 성벽을 쌓으면 된다.
골든 혼이라는 천연 항구가 있다. 쇠사슬로 입구를 막을 수 있었다.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길목이라 통행하는 배에서 세금을 걷었다.
【어떻게 흘렀나】 6년 만에 지었다.
제국 전역에서 조각과 기둥을 가져와 세웠다.
델포이의 「뱀 기둥」을 가져왔다. BC 479년 페르시아를 물리친 그리스 도시들이 세운 것이다. 지금도 이스탄불에 남아 있다.
원로원을 만들고 곡물 무상 배급을 시행했다. 로마의 제도를 옮겨 온 것이다.
그런데 다른 점이 있었다.
이교 신전을 거의 짓지 않았다. 처음부터 기독교 도시로 설계됐다.
【그래서】 5세기에 테오도시우스 성벽이 세워졌다.
삼중 구조다. 해자, 낮은 외벽, 그리고 높이 12m의 내벽이다.
탑이 96개 있었다.
이 성벽이 1,000년을 버텼다.
아바르·아랍·불가르·러시아가 차례로 포위했다가 물러났다.
674~678년과 717~718년 아랍의 대규모 포위를 막아 냈다. 「그리스의 불」이라는 화염 무기를 썼다.
그것이 이슬람의 유럽 진출을 동쪽에서 막았다는 평가가 있다.
【남은 것】 1204년 4차 십자군이 그 성을 함락했다. 같은 기독교인이었다.
사흘을 약탈했다. 청동상을 녹여 동전을 만들었고, 성 소피아의 제단을 부수었다.
회복하지 못했다.
1453년 오스만의 메흐메트 2세가 함락했다. 대포로 성벽을 부수었다.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가 성벽에서 죽었다.
1,123년 만이다. 처음 이름과 마지막 황제 이름이 같은 콘스탄티누스였다.
지금 이스탄불이다. 그 성벽의 상당 부분이 아직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