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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제국을 넷으로 나눠 통치했고 콘스탄티누스가 다시 합쳤다. 수도가 동쪽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겨가고, 박해받던 기독교가 국교가 되어간다.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왜황후 가씨의 전횡에서 시작해 사마씨 황족 여덟이 서로를 쳤다. 각자 이민족 기병을 용병으로 끌어들인 것이 화근이었다.
결과황제 둘이 잇달아 포로가 되어 살해됐다. 화북이 130년간 오호십육국의 혼란에 들어갔고, 귀족들은 강남으로 피난해 동진을 세웠다.
왜사두정치가 후계 문제로 무너지자 여섯 명이 황제를 자칭했다.
결과밀비우스 다리에서 이긴 뒤 기독교를 공인했고, 최종 승리로 제국을 다시 한 사람 아래 두었다. 수도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겨 제국의 무게중심을 동쪽으로 옮겼다.
기독교를 공인하고 수도를 동쪽으로 옮겼다. 제국의 무게 중심이 바뀌었다.
로마와 페르시아와 함께 당대 4대 강국으로 꼽히던 나라다. 홍해 무역을 쥐었고, 로마보다 앞서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축에 든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사건 · 313 · 기독교가 공인됐다. 박해받던 종교가 제국의 종교가 된다.
박해받던 종교가 공인됐고, 80년 뒤 국교가 된다.
【그때 그 자리】
로마는 종교에 관대한 편이었다. 정복지의 신을 받아들이고 자기 신들과 나란히 두었다.
기독교가 예외가 된 이유가 있다. 다른 신을 인정하지 않았고, 황제 숭배 의식을 거부했다. 이는 종교 문제가 아니라 충성 문제로 받아들여졌다.
박해가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64년 네로의 박해, 250년 데키우스의 박해가 있었다.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대박해가 가장 조직적이었다. 교회를 헐고 성서를 태우고 성직자를 체포했다. 배교를 증명하려면 신들에게 제사하고 증명서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도 신자가 줄지 않았다.
【왜 그렇게 됐나】
305년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물러난 뒤 사두정치가 무너지고 후계자들이 싸웠다.
312년 콘스탄티누스가 밀비우스 다리에서 막센티우스를 꺾었다.
이 전투 전에 그가 하늘에서 표시를 보고 이것으로 이기리라는 말을 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병사들의 방패에 그 표시를 그리게 했다고 한다.
진위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기독교를 정치적으로 쓰기 시작한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
당시 기독교인은 제국 인구의 10퍼센트 안팎으로 추정된다. 소수였지만 조직이 있고 도시에 몰려 있었다. 그리고 박해가 실패했다는 것이 이미 드러나 있었다.
【어떻게 흘렀나】
313년 콘스탄티누스와 동방의 리키니우스가 밀라노에서 만나 합의했다.
내용은 기독교만 특별히 우대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종교를 따를 자유를 갖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박해 때 몰수한 교회 재산을 돌려주라고 했다.
엄밀히 말하면 칙령이라는 형식의 문서가 남아 있지 않다. 리키니우스가 동방 총독들에게 보낸 서한이 전해질 뿐이다. 그래서 밀라노 합의라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 뒤 콘스탄티누스는 중립에 머물지 않았다. 성직자에게 세금과 부역을 면제하고, 교회를 짓고, 321년 일요일을 공휴일로 정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했다. 예수의 신성을 두고 교회가 갈릴 참이었다. 황제가 종교 회의를 열고 그 결론을 제국의 법으로 뒷받침했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국가가 교리 결정에 개입한 것이다.
【그래서】
380년 테오도시우스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았다. 392년에는 다른 종교의 제사를 금지했다.
박해받던 종교가 80년이 안 되어 박해할 수 있는 자리에 올랐다. 이후 이교 신전이 헐리고 올림픽 경기가 중단됐다.
【남은 것】
종교의 자유를 선언한 첫 국가 문서로 인용된다. 그런데 그 자유가 오래가지 않았다는 점도 함께 인용된다.
콘스탄티누스가 진심으로 믿었는가는 오래된 논쟁이다. 그는 죽을 때까지 최고 제사장 칭호를 유지했고 태양신의 흔적이 화폐에 남아 있다. 세례는 죽기 직전에 받았다.
의도가 무엇이었든 결과는 명확하다. 이 결정으로 유럽의 종교가 정해졌고, 그 종교가 유럽의 법과 시간과 대학과 예술의 틀이 됐다.
권력이 종교를 인정하는 순간 그 종교도 권력의 논리 안에 들어간다는 사례로 자주 읽힌다.
지도에서 보기: 3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니케아 공의회 바누아투의 사람들 야마토 정권 콘스탄티노폴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