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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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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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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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봉건 유럽과 십자군

교황과 황제가 성직자 임명권을 두고 다퉜다. 성지 회복을 내건 원정이 시작되며 유럽이 처음으로 바깥을 향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한반도

고려 전기

호족 연합으로 선 왕조가 과거제와 관료제로 중앙집권을 다졌다. 거란·여진과 부딪히며 북방 경계를 지켰다.

전쟁

해당 없음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2명

이븐 루시드사상1150 · 아리스토텔레스를 유럽에 돌려준 사람
AD 1126 – AD 1198

코르도바의 법관이자 의사이자 철학자. 그의 주석 덕에 유럽이 잊었던 아리스토텔레스를 다시 읽었다.

  • 아리스토텔레스 전집 주석 — 라틴어로 번역돼 유럽으로
  • 이성과 신앙은 충돌하지 않는다고 주장
  • 말년에 이단으로 몰려 저작이 불태워짐
수리야바르만 2세정치1120 · 앙코르 와트를 지은 왕
1113 – 1150 재위

물을 다스려 일어선 나라의 절정이었다. 해자 한 변이 1.5킬로미터인 사원을 자기 무덤으로 지었다. 돌 500만 톤을 40킬로미터 밖에서 수로로 실어 왔다.

  • 앙코르 와트
  • 회랑 800미터에 새긴 힌두 신화
  • 크메르 최대 판도

그 무렵의 사건

1135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승려 묘청은 개경의 지덕이 다했다며 서경(평양)으로 수도를 옮기자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됐다.
이자겸의 난 이후 혼란한 정국에서, 묘청은 풍수지리를 내세워 개경 대신 서경으로 천도하면 나라가 다시 융성하고 금나라를 정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개경의 문벌 귀족들(김부식 등)이 이 주장에 강하게 반대해 천도가 무산되자, 묘청은 서경에서 '대위국'을 세우고 반란을 일으켰다(1135년). 김부식이 이끄는 관군이 1년 만에 반란을 진압했다. 이 사건은 자주적 대외 노선과 사대적 노선, 서경 세력과 개경 세력 사이의 대립을 보여준 사건으로 자주 거론된다.
1126
이자겸의 난
고려 왕실과 겹사돈을 맺어 최고 권력을 누리던 외척 이자겸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됐다.
이자겸은 두 딸을 예종과 인종에게 각각 시집보내며 왕실의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이라는 이중의 위치로 권력을 독점했다. 인종이 그의 권력을 견제하려 하자, 이자겸은 척준경과 손잡고 반란을 일으켜 궁궐을 불태우기까지 했다(1126년). 그러나 이자겸과 척준경 사이에 틈이 벌어지면서 결국 척준경이 이자겸을 배신해 제거했고, 반란은 진압됐다. 이 사건은 고려 중기 문벌 귀족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며 곧이어 벌어질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의 배경이 됐다.
1150
앙코르 문명
저수지와 수로로 백만 명을 먹인 동남아시아 최대의 도시 문명이었다.
802년 자야바르만 2세가 스스로를 「전 우주의 지배자」로 선포하며 시작됐다. 거대한 저수지(바라이)와 수로망으로 논에 물을 대 인구를 지탱했다 — 최근 레이더 측량으로 앙코르와트 주변에 근대 이전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2세기 수리야바르만 2세가 힌두 사원으로 앙코르와트를 세웠고, 훗날 불교 사원으로 바뀌었다. 왜 무너졌는지는 여러 설이 겹친다 — 수리 시설 과부하설, 아유타야와의 거듭된 전쟁설, 상좌부 불교로 옮아가며 신왕 이념이 힘을 잃었다는 설, 나이테 연구로 밝혀진 극단적 가뭄과 폭우의 반복이라는 기후설이 나란히 있다. 1431년 아유타야에 함락된 뒤 도읍을 남쪽으로 옮겼지만, 앙코르와트 자체는 승려들이 계속 관리해 완전히 버려진 적은 없다.
1113
앙코르의 물길
사람이 판 저수지 하나가 길이 8킬로미터였다.
우기에 넘치고 건기에 마르는 땅을 저수지와 수로로 다스렸다. 1년에 두세 번 벼를 거뒀고 그 잉여가 사원을 지었다. 도시 면적이 1,000제곱킬로미터로 산업화 이전 세계 최대였다는 평가가 있다. 15세기에 가뭄과 폭우가 번갈아 오며 그 수로가 무너졌다.
1107
윤관의 여진 정벌과 동북 9성
여진족이 세력을 키워 국경을 위협하자, 윤관은 특수 부대 별무반을 창설해 이들을 정벌하고 동북 9성을 쌓았다.
여진족과의 첫 전투에서 고려의 기존 군대가 기병 중심인 여진족에 고전하자, 윤관은 기병·보병·승병을 아우르는 특수 부대 별무반을 조직해 재정비했다. 이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족을 북방으로 몰아낸 뒤, 그 자리에 9개의 성(동북 9성)을 쌓아 새 영토로 편입했다(1107년). 그러나 이 지역을 지키는 데 드는 비용과 여진의 거센 반환 요구 등을 고려해, 고려는 몇 년 뒤 이 땅을 여진에게 돌려주고 철수했다.
1180
베냉 왕국
오늘날 나이지리아 남부에 있던 베냉 왕국은 정교한 청동 조각과 궁정 예술로 이름 높았으나, 1897년 영국의 무력 원정으로 왕궁이 약탈당하고 멸망했다.
12세기 무렵 세워진 이 왕국은 오바(왕)를 중심으로 고도로 조직된 궁정 문화를 발전시켰으며, 특히 왕실 조상과 역대 오바를 기리는 정교한 청동·상아 조각('베냉 브론즈')으로 유명했다. 1897년 영국은 무역 분쟁을 구실로 대규모 원정군을 보내 왕궁을 불태우고 수천 점의 청동 조각을 약탈해 유럽 박물관으로 실어갔다. 이 유물들은 오늘날까지도 나이지리아 반환 요구와 유럽 박물관들의 소장 문제를 둘러싼 국제적 논쟁의 중심에 있다.

교역로 3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사건 · 1135 · 승려 묘청은 개경의 지덕이 다했다며 서경(평양)으로 수도를 옮기자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됐다.

이자겸의 난 이후 혼란한 정국에서, 묘청은 풍수지리를 내세워 개경 대신 서경으로 천도하면 나라가 다시 융성하고 금나라를 정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개경의 문벌 귀족들(김부식 등)이 이 주장에 강하게 반대해 천도가 무산되자, 묘청은 서경에서 '대위국'을 세우고 반란을 일으켰다(1135년). 김부식이 이끄는 관군이 1년 만에 반란을 진압했다. 이 사건은 자주적 대외 노선과 사대적 노선, 서경 세력과 개경 세력 사이의 대립을 보여준 사건으로 자주 거론된다.

이자겸의 난으로 어수선해진 정국에서, 승려 묘청은 개경 대신 서경(평양)으로 수도를 옮기자고 주장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반란을 일으켰다.

묘청은 풍수지리에 따라 개경의 지덕(땅의 기운)이 이미 다했으며, 서경으로 천도하면 나라의 기운이 다시 융성해지고 주변 36개국이 조공을 바쳐올 것이라 주장했다. 그는 금나라 정벌과 황제를 칭하며 독자 연호를 쓰자는 자주적인 주장도 함께 내세웠다.

이 주장은 서경 세력의 지지를 받았지만, 김부식을 비롯한 개경의 문벌 귀족들은 현실성이 없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결국 천도 계획이 무산되자, 묘청은 1135년 서경에서 나라 이름을 '대위국'이라 선포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인종의 명을 받은 김부식이 관군을 이끌고 진압에 나서, 1년여 만에 반란을 완전히 진압했다. 이 사건은 자주적 노선(서경파)과 사대적·현실적 노선(개경파) 사이의 대립, 그리고 무신에 대한 문신 우위 체제가 굳어지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으로, 후대 역사가 신채호는 이를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이라 평하기도 했다.

지도에서 보기: 11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이자겸의 난 앙코르 문명 앙코르의 물길 윤관의 여진 정벌과 동북 9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