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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교황과 황제가 성직자 임명권을 두고 다퉜다. 성지 회복을 내건 원정이 시작되며 유럽이 처음으로 바깥을 향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호족 연합으로 선 왕조가 과거제와 관료제로 중앙집권을 다졌다. 거란·여진과 부딪히며 북방 경계를 지켰다.
해당 없음
코르도바의 법관이자 의사이자 철학자. 그의 주석 덕에 유럽이 잊었던 아리스토텔레스를 다시 읽었다.
물을 다스려 일어선 나라의 절정이었다. 해자 한 변이 1.5킬로미터인 사원을 자기 무덤으로 지었다. 돌 500만 톤을 40킬로미터 밖에서 수로로 실어 왔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사건 · 1135 · 승려 묘청은 개경의 지덕이 다했다며 서경(평양)으로 수도를 옮기자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됐다.
이자겸의 난 이후 혼란한 정국에서, 묘청은 풍수지리를 내세워 개경 대신 서경으로 천도하면 나라가 다시 융성하고 금나라를 정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개경의 문벌 귀족들(김부식 등)이 이 주장에 강하게 반대해 천도가 무산되자, 묘청은 서경에서 '대위국'을 세우고 반란을 일으켰다(1135년). 김부식이 이끄는 관군이 1년 만에 반란을 진압했다. 이 사건은 자주적 대외 노선과 사대적 노선, 서경 세력과 개경 세력 사이의 대립을 보여준 사건으로 자주 거론된다.
이자겸의 난으로 어수선해진 정국에서, 승려 묘청은 개경 대신 서경(평양)으로 수도를 옮기자고 주장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반란을 일으켰다.
묘청은 풍수지리에 따라 개경의 지덕(땅의 기운)이 이미 다했으며, 서경으로 천도하면 나라의 기운이 다시 융성해지고 주변 36개국이 조공을 바쳐올 것이라 주장했다. 그는 금나라 정벌과 황제를 칭하며 독자 연호를 쓰자는 자주적인 주장도 함께 내세웠다.
이 주장은 서경 세력의 지지를 받았지만, 김부식을 비롯한 개경의 문벌 귀족들은 현실성이 없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결국 천도 계획이 무산되자, 묘청은 1135년 서경에서 나라 이름을 '대위국'이라 선포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인종의 명을 받은 김부식이 관군을 이끌고 진압에 나서, 1년여 만에 반란을 완전히 진압했다. 이 사건은 자주적 노선(서경파)과 사대적·현실적 노선(개경파) 사이의 대립, 그리고 무신에 대한 문신 우위 체제가 굳어지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으로, 후대 역사가 신채호는 이를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이라 평하기도 했다.
지도에서 보기: 11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이자겸의 난 앙코르 문명 앙코르의 물길 윤관의 여진 정벌과 동북 9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