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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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미케네 궁전 문명이 무너진 뒤 문자도 왕궁도 사라졌다. 작은 촌락 단위로 흩어져 살았고 이 시기의 기록은 거의 남지 않았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봉건으로 나눠 준 제후들이 점차 왕실 말을 듣지 않았다. 서쪽 견융의 압박은 계속 커졌다.
결과유왕이 견융에게 죽고 왕실이 동쪽 낙읍으로 옮겼다. 이때부터 주 왕은 이름만 남고 춘추시대가 시작된다.
해당 없음
해당 없음
사건 · BC 900 · 1,500년의 멈춤
라피타 토기를 만들던 사람들이 피지와 통가와 사모아에 닿은 뒤, 다음 섬으로 가기까지 1,500년이 걸렸다. 그 사이에 폴리네시아의 말과 사회가 여기서 따로 자란다. 왜 멈췄는지는 바람과 해류 때문으로 본다.
【그때 그 자리】 BC 900년 무렵이다. 라피타 사람들이 통가와 사모아에 닿았다.
비스마르크 제도를 떠난 지 400년 만이다. 3,500km를 건넜다.
그리고 멈췄다.
【왜 그렇게 됐나】 그 앞이 어려웠다.
사모아에서 동쪽으로 가면 다음 섬까지 거리가 확 늘어난다.
그리고 무역풍이 정면에서 온다.
쿡 제도와 소시에테 제도까지 2,000km 넘게 빈 바다다.
1,500년 동안 그 선을 넘지 못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토기 만들기를 그만두었다. 라피타 토기가 사라진다.
왜 그랬는지 모른다. 좋은 점토가 없었다는 설명, 나무와 조개 그릇으로 충분했다는 설명이 있다.
【어떻게 흘렀나】 그 사이 문화가 갈라졌다.
피지·통가·사모아에서 각자의 사회가 만들어졌다.
「폴리네시아 조어」가 이 시기에 형성됐다고 본다. 뒤에 하와이어·마오리어·타히티어로 갈리는 뿌리다.
통가에 「랑기」라는 계단식 무덤이 세워졌다. 산호석을 다듬어 쌓았다.
「하아몽아 아 마우이」라는 삼석문이 있다. 기둥 둘에 가로 돌을 얹은 것으로, 무게가 40톤이 넘는다.
하지와 동지의 해 뜨는 방향과 맞는다는 분석이 있다.
13세기에 통가가 바다를 통해 넓은 영향권을 만들었다. 「투이통가 제국」이라 부른다.
피지와 사모아까지 조공과 혼인으로 이었다.
【그래서】 AD 1000년 무렵 다시 움직였다.
왜 다시 시작했는지가 물음이다.
배와 항해술이 나아졌다는 설명, 인구 압력이라는 설명이 있다.
그리고 기후가 거론된다. 엘니뇨가 잦아지며 서풍이 부는 기간이 늘었다는 연구가 있다.
역풍으로 가지 않고 순풍을 타고 동쪽으로 갈 수 있는 시기가 생겼다는 것이다.
쿡 제도와 소시에테 제도를 거쳐 하와이·라파누이·아오테아로아로 갔다.
몇 백 년 만에 태평양 전체를 채웠다.
【남은 것】 「카바」라는 음료 문화가 이 지역에 남았다.
후추과 식물의 뿌리를 갈아 물에 우려 마신다. 의례와 회의에서 순서를 정해 돌린다.
지금도 피지와 통가와 바누아투에서 중요한 자리에 쓰인다.
통가는 태평양에서 유럽의 식민지가 되지 않은 유일한 나라다. 보호령이었으나 왕조가 이어졌다.
지금도 왕이 있다.
지도에서 보기: BC 10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쿠시의 부상 차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