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대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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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문명의 새벽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도시와 문자가 나타났다. 관개 농업이 잉여를 만들고 신전과 왕궁이 그것을 관리했다.

한반도

선사

빗살무늬토기와 간석기의 시대. 아직 국가라 부를 정치체가 없다.

전쟁

해당 없음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1명

쿠푸정치BC 2570 · 가장 큰 무덤을 남긴 파라오
BC 2589 – BC 2566 재위

대피라미드를 지었다. 그런데 정작 그의 초상은 7cm짜리 상아 조각 하나뿐이다 — 가장 큰 건축과 가장 작은 초상.

  • 기자 대피라미드 — 230만 개의 돌
  • 급료 받는 노동자를 조직해 20년에 완성
  • 헤로도토스는 폭군이라 적었으나 근거는 없다

그 무렵의 사건

BC 2560
기자 대피라미드
230만 개의 돌, 20년, 오차 몇 cm.
노예가 아니라 급료를 받는 노동자들이 지었다는 것이 인부 마을 발굴로 밝혀졌다. 밑변 230m의 네 변 길이 차이가 20cm 이내다. 4,000년 가까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BC 2600
모헨조다로
왕궁도 신전도 없는 계획도시.
격자로 구획된 도로, 집집마다 우물과 화장실, 도시 전체를 도는 하수도. 그런데 거대 무덤도 왕의 조각상도 없다. 누가 어떻게 다스렸는지 아직 아무도 모르고, 인더스 문자는 지금도 해독되지 않았다.
BC 2600
인더스 문명이 서다
왕궁도 거대한 무덤도 없는 계획도시.
모헨조다로와 하라파에 바둑판 거리와 상하수도를 갖춘 도시가 섰다. 벽돌 크기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같다. 그런데 왕을 새긴 조각도, 거대한 무덤도 없다. 문자는 아직 해독되지 않아 이들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BC 2500
카랄
아메리카 최초의 도시가 이집트와 같은 시기에 섰다.
페루 해안의 카랄에는 여섯 개의 피라미드형 기단과 원형 광장이 있다. 놀랍게도 무기와 성벽의 흔적이 없다. 목화를 길러 어망과 바꾸는 교역이 도시를 먹여 살렸다.
BC 2500
쿠시와 누비아
수단에 이집트보다 많은 피라미드가 있다.
나일강 상류의 쿠시는 이집트에 금과 상아를 대다가 결국 이집트를 정복했다. 25왕조가 그것이다. 메로에에 피라미드 200기가 넘게 남았는데 이집트 것보다 작고 가파르다. 자체 문자인 메로에 문자는 아직 해독되지 않았다.

교역로

해당 없음

기자 대피라미드

사건 · BC 2560 · 230만 개의 돌, 20년, 오차 몇 cm.

노예가 아니라 급료를 받는 노동자들이 지었다는 것이 인부 마을 발굴로 밝혀졌다. 밑변 230m의 네 변 길이 차이가 20cm 이내다. 4,000년 가까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그때 그 자리】

기원전 27세기 이집트는 이미 500년 넘게 통일 왕국이었다. 나일강이 해마다 같은 때 범람해 기름진 흙을 남겼다. 범람 시기를 알려면 하늘을 봐야 했고, 물이 빠진 뒤 땅의 경계를 다시 그으려면 측량이 필요했다. 천문학과 기하학이 여기서 자랐다.

범람기에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 서너 달 동안 놀리는 노동력이 해마다 생겼다.

파라오는 신이자 왕이었다. 죽으면 다시 산다고 믿었으므로, 그 몸과 물건을 지킬 집이 필요했다.

【왜 그렇게 됐나】

피라미드는 갑자기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마스타바라는 납작한 무덤이었고, 조세르 왕 때 이를 여섯 단으로 쌓은 계단식 피라미드가 나왔다. 스네프루 왕 때 각도를 잘못 잡아 중간에 기울기를 바꾼 굴절 피라미드가 있고, 그 실패를 고쳐 붉은 피라미드를 완성했다.

그의 아들 쿠푸가 기원전 2560년 무렵 기자에 세운 것이 대피라미드다. 앞선 시행착오가 쌓인 결과물이다.

【어떻게 흘렀나】

규모가 이렇다. 원래 높이 146.6미터, 밑변 230미터, 돌덩이 230만 개, 무게 평균 2.5톤이다. 4천 년 가까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공 구조물이었다. 1311년 링컨 대성당이 나올 때까지였다.

정밀도가 더 놀랍다. 밑변 네 변의 길이 차이가 20센티미터 이내이고, 네 면이 정확히 동서남북을 향한다. 오차가 0.05도 안팎이다. 나침반 없이 별을 보고 맞춘 것으로 추정된다.

누가 지었는가에 대해서는 오래된 오해가 있다. 헤로도토스가 노예 10만이 동원됐다고 적었고 그 이미지가 오래 갔다. 20세기 말 피라미드 옆에서 건설 노동자의 마을과 무덤이 발굴되면서 다르게 밝혀졌다. 노동자들은 빵과 맥주와 고기를 배급받았고, 부러진 뼈를 치료받은 흔적이 있으며, 자기 무덤을 피라미드 곁에 썼다. 노예가 아니라 조직된 노동자였다는 것이 지금의 통설이다.

돌을 어떻게 올렸는지는 아직 결론이 없다. 직선 경사로, 나선 경사로, 내부 경사로 등 여러 가설이 있다.

【그래서】

고왕국은 피라미드를 짓다 지쳤다는 설명이 있다. 이후 파라오들은 규모를 줄였고, 신왕국에 와서는 아예 계곡에 숨긴 무덤으로 바꿨다. 눈에 띄는 무덤은 반드시 도굴됐기 때문이다.

대피라미드도 이미 고대에 털렸다. 지금 안에 남은 것은 거의 없다.

【남은 것】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유일하게 남았다. 나머지는 다 사라졌다.

겉을 덮었던 흰 석회암 판은 중세에 카이로의 건물 자재로 뜯겨 갔다. 지금 보이는 계단 모양은 속살이다. 원래는 매끈하고 하얗게 빛났다.

클레오파트라가 이 피라미드를 봤을 때, 그와 피라미드 사이의 시간이 그와 우리 사이의 시간보다 길었다. 2,500년과 2,000년이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에게도 이미 아주 오래된 유적이었다.

지도에서 보기: BC 30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모헨조다로 인더스 문명이 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