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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도시와 문자가 나타났다. 관개 농업이 잉여를 만들고 신전과 왕궁이 그것을 관리했다.
빗살무늬토기와 간석기의 시대. 아직 국가라 부를 정치체가 없다.
해당 없음
해당 없음
해당 없음
사건 · BC 2600 · 왕도 신전도 없는 도시
모헨조다로와 하라파에 바둑판 거리와 상하수도를 갖춘 도시가 섰다. 벽돌 크기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같다. 그런데 왕을 새긴 조각도, 거대한 무덤도 없다. 문자는 아직 해독되지 않아 이들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때 그 자리】 BC 2600년 무렵이다. 인더스강 유역에 도시들이 섰다.
면적으로는 같은 시기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합친 것보다 넓다. 유적이 1,000곳 넘게 확인됐다.
가장 큰 것이 모헨조다로와 하라파다. 각각 인구 4만까지로 추정한다.
【왜 그렇게 됐나】 도시 계획이 놀랍다.
격자로 구획했다. 큰길이 남북과 동서로 나 있고 그 사이를 작은 길이 잇는다.
벽돌 크기가 통일돼 있다. 1:2:4 비율이다. 수백 km 떨어진 도시에서도 같은 규격이 나온다.
도량형도 통일됐다. 추의 무게가 정확한 배수를 이룬다.
그리고 상수도와 하수도가 있었다.
집집마다 우물과 욕실이 있었고, 오수가 벽돌로 만든 하수구로 흘러 큰 배수로로 모였다.
덮개가 있어 냄새를 막았고, 점검을 위한 구멍이 있었다.
이 정도의 위생 시설이 다시 나타나는 것은 로마 시대다.
【어떻게 흘렀나】 없는 것이 더 흥미롭다.
왕궁이 없다. 거대한 신전이 없다. 왕의 무덤도 없다.
다른 문명이라면 가장 크게 지었을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무기도 드물다. 성벽은 있는데 방어용인지 홍수 대비용인지 논쟁이 있다.
집의 크기 차이가 크지 않다. 계급 차가 뚜렷하지 않다는 뜻으로 읽힌다.
모헨조다로에서 가장 큰 공공 건물은 「대목욕장」이다. 방수 처리한 물탱크로, 의례에 쓰인 것으로 본다.
【그래서】 문자가 있다.
도장(인장)에 새겨진 부호가 4,000점 넘게 나왔다. 그런데 해독되지 않았다.
이유가 있다. 남은 글이 너무 짧다 — 평균 다섯 글자다. 그리고 이중 언어 비문이 없다.
로제타석 같은 것이 없으면 풀 수 없다.
문자인지 아닌지를 두고도 논쟁이 있다.
인장이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발견된다. 배로 교역했다는 증거다. 수메르 기록의 「멜루하」가 인더스로 추정된다.
【남은 것】 BC 1900년 무렵부터 도시가 비었다.
오래 아리아인의 침입으로 설명됐다. 지금은 부정된다.
기후가 원인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몬순이 약해지고 사라스바티강으로 추정되는 물길이 말랐다.
사람들이 동쪽 갠지스 쪽으로 흩어졌다.
왕이 없어 보이는 문명이 700년을 갔다는 사실이, 국가의 조건을 다시 묻게 한다.
지도에서 보기: BC 30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모헨조다로 기자 대피라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