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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미케네 궁전 문명이 무너진 뒤 문자도 왕궁도 사라졌다. 작은 촌락 단위로 흩어져 살았고 이 시기의 기록은 거의 남지 않았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봉건으로 나눠 준 제후들이 점차 왕실 말을 듣지 않았다. 서쪽 견융의 압박은 계속 커졌다.
결과유왕이 견융에게 죽고 왕실이 동쪽 낙읍으로 옮겼다. 이때부터 주 왕은 이름만 남고 춘추시대가 시작된다.
사울을 이어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하나로 묶고 예루살렘을 도읍으로 삼았다. 시편의 상당수가 그의 것으로 전한다.
빛의 신 아후라 마즈다와 어둠의 세력이 싸우고 마지막 심판이 온다는 가르침은 유대교·기독교·이슬람의 종말론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해당 없음
사건 · BC 1000 · 중국 기록에 처음 나온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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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자리】 고조선이 언제 시작됐는지는 사료로 확정할 수 없다.
「삼국유사」가 BC 2333년 단군왕검이 세웠다고 적었다. 13세기에 쓰인 책이고, 고려가 몽골에 시달리던 때다.
고고학으로 보면 다르다. 요령 지방과 한반도 서북부에 비파형 동검 문화가 자리 잡는 것이 BC 10세기 무렵이다.
【왜 그렇게 됐나】 이름이 처음 나오는 문헌이 중국의 「관자(管子)」다. BC 7세기의 제나라 재상 관중의 이름을 붙인 책인데, 실제로는 뒤에 엮인 것으로 본다.
거기 「발조선(發朝鮮)」이 나온다. 문피(무늬 있는 짐승 가죽)를 파는 곳으로 적혀 있다.
교역 상대로 등장한 것이다. 그만큼 떨어진 곳에서 이름을 알 만한 세력이 있었다는 뜻이다.
【어떻게 흘렀나】 무엇으로 그 나라를 알아보는가.
세 가지가 함께 나오는 지역을 고조선의 범위로 본다 — 비파형 동검, 미송리형 토기, 탁자식 고인돌이다.
그 분포가 요하 동쪽에서 대동강 유역까지 걸친다.
비파형 동검은 손잡이와 몸체를 따로 만들어 조립한다. 중국식 동검은 통째로 붓는다. 만드는 방식 자체가 다른 계통이다.
고인돌은 한반도에 4만 기 넘게 있다. 세계 고인돌의 절반 가까이다. 큰 것은 덮개돌이 수십 톤이다 — 수백 명을 동원할 수 있는 권력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BC 4세기에는 중국 연나라와 맞설 만큼 컸다. 「위략」에 조선의 왕이 스스로 왕을 칭하고 연을 치려 했다는 기록이 있다.
BC 3세기 초 연의 장수 진개에게 서쪽 땅을 크게 잃었다.
BC 194년 위만이 준왕을 몰아내고 왕이 됐다. 중국에서 온 사람인지 연에 살던 조선계인지 논쟁이 있다 — 「상투를 틀고 조선 옷을 입고 왔다」는 기록이 근거로 인용된다.
위만조선이 중계 무역으로 커졌다. 남쪽 진국과 한나라 사이를 막고 직접 교역하지 못하게 했다.
그것이 BC 108년 한 무제의 침공으로 이어진다. 1년을 버티다 내분으로 무너졌다.
【남은 것】 「8조법」 가운데 세 조항이 「한서」에 전한다. 사람을 죽이면 죽이고, 상하게 하면 곡식으로 갚고, 도둑질하면 노비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 세 줄에서 읽히는 것이 있다. 사유재산이 있었고, 신분이 갈렸으며, 형벌을 국가가 집행했다.
위치를 두고는 오래된 논쟁이 있다. 요령설과 평양설, 그리고 중심이 옮겨 갔다는 이동설이다.
발굴 자료가 북한과 중국에 있어 접근이 제한된다. 그래서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지도에서 보기: BC 10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다윗의 예루살렘 노크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