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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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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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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주권국가 체제

베스트팔렌 조약이 종교가 아니라 주권을 국제 질서의 단위로 삼았다. 절대왕정이 상비군과 관료제로 국가를 다졌다.

한반도

양란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연달아 겪었다. 국토가 황폐해지고 명청 교체 속에서 북벌론과 실학이 함께 나왔다.

전쟁 2건

대튀르크 전쟁1683 – 1699
신성동맹 vs 오스만

오스만이 빈을 두 번째로 포위했다. 유럽 각국이 교황의 중재로 신성동맹을 맺었다.

빈 공방 1683젠타 1697

결과폴란드 기병의 돌격으로 포위가 풀렸고, 카를로비츠 조약으로 오스만이 헝가리를 잃었다. 오스만의 팽창이 여기서 멈추고 이후 200년의 후퇴가 시작된다.

16년 · 오스만 팽창의 끝
빈 공방1683
오스만 vs 신성동맹

오스만이 두 달째 성을 파고들었다. 성벽 아래로 굴을 파 화약을 터뜨리는 중이었다.

칼렌베르크 언덕 돌격

결과9월 12일 소비에스키의 기병 3천이 언덕에서 내려왔다. 오스만이 무너졌고, 이후 유럽에서 물러나기 시작한다. 이 도시가 두 번째로 포위를 견딘 날이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10명

얀 3세 소비에스키장군1683 · 빈을 구한 왕
1629 – 1696

오스만이 빈을 두 달째 포위했을 때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왕이 날개 단 기병을 이끌고 언덕에서 내려왔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병 돌격으로 꼽힌다.

  • 1683년 빈 구원
  • 날개 기병 후사르 3천
  • 오스만의 유럽 진출이 여기서 꺾였다
라이프니츠과학1684 · 수학자·철학자
1646 – 1716

뉴턴과 별개로 미적분을 완성하다

  • 미적분 독자 발견·발표 1684
  • 지금 쓰는 미적분 표기법 고안
  • 뉴턴과 우선권 논쟁
뉴턴과학1687 · 자연철학자
1643 – 1727

하늘과 땅이 같은 법칙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수식으로 보였다.

  • 만유인력과 운동 법칙
  • 「프린키피아」 1687
  • 미적분과 광학
강희제정치1690 · 삼번의 난을 평정하고 청의 전성기를 연 황제
1654 – 1722, 재위 1661 – 1722

8세에 즉위해 61년을 다스렸다. 타이완을 얻고 러시아와 국경을 정했으며 서양 선교사에게 수학을 배웠다.

  • 삼번의 난 평정(1681), 타이완 정복(1683)
  • 네르친스크 조약(1689)
  • 준가르 원정, 「강희자전」 편찬
로크사상1690 · 자유주의의 아버지, 「통치론」의 저자
1632 – 1704

정부는 생명·자유·재산을 지키기 위한 계약이고, 이를 어기면 국민은 저항할 수 있다. 미국 독립선언은 그의 문장을 거의 그대로 옮겼다.

  • 「통치론」「인간지성론」(1690)
  • 자연권·사회계약·저항권 이론
  • 「관용에 관한 편지」
표트르 대제정치1700 · 러시아 차르
1672 – 1725

직접 서유럽에서 조선술을 배워왔다. 늪지에 새 수도를 세우고 바다로 나갔다.

  • 서유럽에서 직접 기술을 배워옴
  •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설
  • 대북방전쟁 승리
오세이 투투정치1701 · 아샨티를 하나로 묶은 왕
1660?년 무렵 – 1717

흩어진 아칸족 도시들을 쿠마시를 중심으로 통합했다.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황금 의자가 지금도 왕권의 상징이다.

  • 사제 오콤포 아녜에와 함께 아샨티 동맹 결성
  • 황금 의자(시카 드와)를 나라의 영혼으로 선포
  • 금 무역로를 장악해 아샨티를 서아프리카 강국으로
보일과학1662 · 화학자
1627 – 1691

근대 화학의 문을 열다

  • 보일의 법칙 발표
  • 회의적 화학자 저술
  • 왕립학회 설립에 기여
루이 14세정치1661 · 태양왕, 절대왕정의 상징
1638 – 1715, 재위 1643 – 1715

재상 없이 직접 통치하며 72년간 프랑스를 다스렸다. 베르사유 궁전을 지어 귀족을 곁에 묶어두고 왕권을 절정으로 끌어올렸다.

  • 베르사유 궁전 건설
  • 짐이 곧 국가라는 말로 상징되는 절대왕정
  • 잦은 전쟁으로 재정을 크게 소모
아우랑제브정치1658 · 무굴 제국을 최대 영토로 넓혔지만 갈등의 씨도 뿌린 황제
1618 – 1707, 재위 1658 – 1707

형제들을 제거하고 아버지 샤 자한을 유폐시킨 뒤 제위에 올랐다. 남인도까지 정복해 무굴 제국을 최대 영토로 넓혔으나, 이슬람 정통주의 정책으로 힌두교도와의 갈등을 키워 제국 쇠퇴의 씨앗도 함께 뿌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 무굴 제국 최대 영토 달성
  • 비이슬람교도에 대한 인두세(지즈야) 부활
  • 사후 제국이 빠르게 분열되기 시작

그 무렵의 사건

1688
명예혁명
1688~89년, 잉글랜드 의회가 가톨릭 왕 제임스 2세를 몰아내고 그의 딸 메리와 사위 윌리엄을 공동 왕으로 앉혔다. 유혈 충돌 없이 이뤄졌다.
이듬해 권리장전이 제정되며 의회가 왕권 위에 있다는 원칙이 확립됐다. 절대왕정에서 입헌군주정으로 넘어가는 결정적 전환점으로 꼽힌다.
1701
아샨티 제국
1701년 오세이 투투가 세운 아샨티 제국은 금 무역으로 번영하며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 중 하나로 성장했으나, 19세기 말 영국과의 거듭된 전쟁 끝에 식민 지배 아래 놓였다.
건국자 오세이 투투는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황금 의자('황금 스툴')를 왕권의 상징으로 삼아 여러 부족을 하나의 연합체로 묶었다. 이 의자는 오늘날까지도 아샨티 왕권의 신성한 상징으로 여겨진다. 아샨티는 풍부한 금광과 노예무역으로 큰 부를 쌓았으나, 19세기 들어 이권을 노린 영국과 다섯 차례에 걸친 전쟁(영국-아샨티 전쟁)을 치렀다. 1900년 마지막 전쟁에서 패배하며 결국 영국의 보호령으로 편입됐다.
1648
베스트팔렌 조약
종교가 아니라 주권이 국제 질서의 단위가 됐다.
종교가 아니라 주권이 국제 질서의 단위가 됐다. 지금 국가 체제의 기원이다.
1725
영조의 탕평책
영조는 붕당 간 극심한 대립으로 정치가 마비되자, 당파를 가리지 않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숙종 때부터 격화된 붕당 간의 당쟁은 상대 당을 완전히 몰락시키는 환국 정치로까지 치달아 정치 기강이 크게 흔들렸다. 이 와중에 왕위에 오른 영조는 자신의 즉위 과정에서도 붕당의 다툼에 시달렸던 만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각 붕당의 인재를 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는 성균관 앞에 탕평비를 세워 이 원칙을 널리 알리고, 붕당의 뿌리인 서원을 대거 정리하며 이조 전랑의 권한도 축소했다. 영조의 탕평책으로 극단적인 당쟁은 상당히 진정되었으며, 이 흐름은 손자인 정조에게로 이어져 조선 후기 정치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1632
타지마할
아내의 무덤을 짓는 데 22년이 걸렸다.
뭄타즈 마할이 열네 번째 아이를 낳다 죽자 샤 자한이 짓기 시작했다. 흰 대리석에 페르시아와 인도와 이슬람 양식이 섞였다. 그는 말년에 아들에게 갇혀 그 무덤을 창밖으로 바라보며 죽었다.
1627
정묘호란
후금이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 정권의 친명배금 정책을 문제 삼아 조선을 침공했고, 조선은 형제 관계를 맺는 조건으로 강화했다.
광해군은 명과 후금(훗날의 청) 사이에서 실리를 좇는 중립 외교를 폈으나,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쫓겨나고 서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조선은 명을 가까이하고 후금을 배척하는 친명배금 정책으로 돌아섰다. 이를 명분 삼아 1627년 후금의 군대가 조선을 침공했다(정묘호란). 후금군은 평안도 일대를 휩쓸며 빠르게 남하했지만, 명과의 전쟁도 함께 치르고 있던 후금 입장에서 조선을 완전히 정복할 여력까지는 없었다. 결국 양측은 조선과 후금이 형제 관계를 맺는다는 조건으로 강화를 맺었다. 그러나 후금이 청으로 국호를 바꾸고 군신 관계(사대)를 요구하자 조선이 이를 거부하면서, 10년 뒤 병자호란이 다시 벌어지게 된다.

교역로 2개

희망봉 항로1500 – 1900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오간 것후추와 면직물, 그리고 나중엔 차와 아편. 지중해를 거치지 않는 길이 베네치아와 오스만을 밀어냈다.
거점리스본 · 카나리아 · 희망봉 · 모잠비크 · 고아 · 말라카
대서양 삼각무역1600 – 1850

유럽의 공산품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 유럽. 세 대륙이 하나의 경제로 묶였다.

오간 것유럽의 총기·직물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1,200만 명이 대서양을 건넜다.
거점리버풀 · 리스본 · 기니만 · 카리브 · 버지니아

필라델피아

도시 · 1682 · 독립선언과 헌법이 나온 곳

독립선언과 헌법이 여기서 나왔다

델라웨어강 유역, 미국 동부에 자리했다. 1682년 퀘이커교도 윌리엄 펜이 종교적 관용을 내세우며 이 도시를 계획적으로 세웠다 — 도시 이름 자체가 그리스어로 「형제 사랑」을 뜻한다.

18세기에는 북아메리카 영국 식민지에서 가장 큰 도시로 성장했고, 1776년 이곳에서 열린 대륙회의에서 「독립선언서」가 채택됐다.

독립전쟁이 끝난 뒤에도 1787년 헌법제정회의가 이 도시에서 열려 미국 연방헌법이 만들어졌다 — 이 때문에 필라델피아는 미국 건국의 문서적 기틀이 마련된 도시로 꼽힌다.

1790~1800년 사이에는 미국의 임시 수도 역할을 하기도 했으나, 이후 새로 건설된 워싱턴 D.C.에 그 지위를 넘겨줬다.

지도에서 보기: 165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캘커타 봄베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케이프타운 몬트리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