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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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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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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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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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암흑기 그리스

미케네 궁전 문명이 무너진 뒤 문자도 왕궁도 사라졌다. 작은 촌락 단위로 흩어져 살았고 이 시기의 기록은 거의 남지 않았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1건

서주의 정벌과 견융의 침입BC 1042 – BC 771
주 vs 동이·회이·견융

봉건으로 나눠 준 제후들이 점차 왕실 말을 듣지 않았다. 서쪽 견융의 압박은 계속 커졌다.

동이 정벌호경 함락 BC 771

결과유왕이 견융에게 죽고 왕실이 동쪽 낙읍으로 옮겼다. 이때부터 주 왕은 이름만 남고 춘추시대가 시작된다.

271년 · 봉건 질서의 이완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해당 없음

그 무렵의 사건

BC 814
카르타고 건설
페니키아 공주가 소가죽만 한 땅을 샀다.
티레의 디도가 망명해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 소가죽 한 장 넓이만 달라 해놓고 가죽을 실처럼 잘라 언덕을 둘렀다는. 실제로는 티레의 교역 거점이었고, 600년 뒤 로마와 지중해를 두고 세 번 싸운다.
BC 800
폴리스의 형성
성벽이 아니라 광장이 도시를 만들었다.
암흑기를 지나며 그리스 각지에 폴리스가 자리 잡았다. 아고라에서 시민이 모여 결정하는 방식이 자리 잡았고, 인구가 넘치자 지중해 곳곳에 식민시를 세웠다 — 마르세유·나폴리·이스탄불이 그렇게 생겼다.
BC 800
페니키아의 바다
알파벳을 배에 싣고 지중해를 돌았다.
레바논 해안의 도시들이 지중해 전역에 거점을 두었다. 카르타고도 그중 하나다. 이들이 퍼뜨린 22자 알파벳이 그리스로, 로마로, 그리고 지금 세계 대부분의 문자로 이어진다.
BC 800
고조선의 8조법
고조선에는 살인·상해·절도를 다스리는 8개 조항의 법이 있었다고 전한다. 오늘날에는 그중 3개 조항만 전해진다.
중국 역사서 「한서」에 남은 기록에 따르면,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고,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배상하며, 도둑질한 자는 노비로 삼되 죄를 면하려면 많은 돈을 내야 했다. 이 세 조항만으로도 고조선 사회가 생명과 사유재산을 중요하게 여겼고, 신분 제도(노비)가 이미 존재했으며, 화폐를 대신하는 물품 배상 관념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BC 776
제1회 올림피아 제전
그리스인이 같은 달력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스인이 처음으로 같은 연대를 공유했다. 이후 4년마다 열려 1,100년을 이어간다.
BC 753
로마 건국 전승
테베레 강가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됐다고 전한다.
로물루스의 건국 설화는 훗날 로마인의 자기 정체성이 됐다.

교역로

해당 없음

카르타고

도시 · BC 814 · 로마가 6일간 불태웠다

【그때 그 자리】

기원전 9세기 무렵 페니키아인이 지금의 튀니지 해안에 세운 식민도시다. 페니키아는 지중해 동안의 상업 도시들로, 알파벳을 만들어 퍼뜨린 사람들이다.

카르타고는 위치가 좋았다. 지중해가 시칠리아 부근에서 좁아지는데 그 목을 쥐고 있었다. 동서 교역이 이 앞을 지나야 했다.

이 나라는 영토가 아니라 항로로 만들어졌다. 에스파냐의 은광, 아프리카의 금과 상아, 브리튼의 주석을 잇는 무역망을 쥐었다. 통치도 왕이 아니라 상인 귀족이 뽑은 두 명의 수페테스가 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카르타고의 정치 체제를 훌륭한 예로 언급했을 정도다.

【왜 그렇게 됐나】

로마는 원래 육지 국가였다. 그런데 기원전 3세기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시칠리아로 눈을 돌리면서 카르타고와 부딪쳤다.

기원전 264년 1차 포에니 전쟁이 시작됐다. 로마는 배가 없었다. 좌초한 카르타고 배를 본떠 함대를 만들고, 배를 서로 붙여 육박전을 벌이는 까마귀라는 장치를 달았다. 자기가 잘하는 방식으로 싸울 판을 만든 것이다. 23년을 싸워 로마가 이기고 시칠리아를 얻었다.

【어떻게 흘렀나】

기원전 218년 한니발이 2차 전쟁을 일으켰다. 그는 에스파냐에서 출발해 알프스를 넘었다. 코끼리 37마리를 데려갔고 넘는 동안 병력의 절반을 잃었다.

이탈리아 안에서 15년을 싸우며 계속 이겼다. 기원전 216년 칸나에에서 그는 중앙을 일부러 뒤로 물러나게 해 로마군을 안으로 끌어들인 뒤 양옆에서 감쌌다. 하루에 로마군 5만에서 7만이 죽었다. 이 포위 전술은 지금도 사관학교에서 가르친다.

그런데 이기고도 이기지 못했다. 로마의 동맹 도시 대부분이 배신하지 않았고, 로마는 병력을 계속 채워 넣었다. 카르타고 본국은 한니발에게 충분한 지원을 보내지 않았다. 상인 귀족들이 전쟁 확대를 꺼렸다.

스키피오가 에스파냐를 친 뒤 아프리카 본토로 건너갔다. 한니발이 급히 돌아왔고 기원전 202년 자마에서 졌다.

기원전 149년 3차 전쟁이 일어났다. 이미 무장 해제된 상태였는데도 로마가 쳤다. 원로원의 카토는 무슨 연설을 하든 끝에 카르타고는 멸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고 전한다.

기원전 146년 도시가 함락됐다. 열이레 동안 불탔다. 주민 대부분이 죽거나 노예가 됐다.

【그래서】

소금을 뿌려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한데, 이 대목은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로마는 100년 뒤 같은 자리에 새 도시를 세워 아프리카 속주의 중심으로 삼았다.

【남은 것】

우리가 아는 카르타고는 거의 전부 로마 쪽 기록이다. 이 나라의 문헌은 도시와 함께 사라졌다. 어린아이를 신에게 바쳤다는 이야기도 로마와 그리스 기록에서 왔고, 고고학적 해석이 지금도 갈린다.

승자가 기록을 독점하면 진 쪽이 어떤 나라였는지 알 길이 사라진다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지중해 서쪽 절반을 600년 쥐었던 나라인데, 자기 목소리로 남긴 것이 거의 없다.

지도에서 보기: BC 10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메로에 델포이 올림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