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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로마가 지중해를 장악했지만 그 부가 공화정을 무너뜨렸다. 그라쿠스 형제의 토지 개혁이 유혈로 끝나고, 군벌들이 사병을 거느리며 내전이 반복됐다.
고조선이 무너지고 한의 군현이 설치됐다. 저항 속에서 부여·옥저·동예 같은 정치체가 자라났다.
왜북방 게르만 부족이 이주해 내려오며 로마군을 연달아 깨뜨렸다. 로마가 한니발 이후 처음으로 존망을 걱정했다.
결과마리우스가 군제를 갈아엎어 이겼다 — 재산 없는 시민도 병사로 받고 국가가 장비를 댔다. 군대가 국가가 아니라 장군에게 충성하게 된 시작이다.
장군을 변호하다 궁형을 받았다. 죽는 대신 살아서 아버지가 시작한 역사를 끝냈다.
자기 군대를 이끌고 로마 시내로 진군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처음 넘었고, 이후 카이사르가 같은 길을 간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도시 · BC 100 · 십자가를 새긴 첫 화폐
악숨 왕국의 도읍
【그때 그 자리】 AD 100년 무렵이다. 지금의 에티오피아 북부와 에리트레아에 악숨 왕국이 섰다.
홍해에 면해 있었다. 아둘리스라는 항구를 통해 로마·아라비아·인도와 교역했다.
상아와 코뿔소 뿔과 향료와 금과 노예가 나갔고, 직물과 유리와 금속이 들어왔다.
【왜 그렇게 됐나】 3세기 페르시아 학자 마니가 세계의 4대 강국을 꼽았다.
로마·페르시아·중국, 그리고 악숨이다.
화폐를 찍었다. 금·은·동 세 가지다.
아프리카에서 이집트를 빼고 자체 금화를 발행한 첫 나라다.
금화에는 그리스어를, 동화에는 게에즈어를 새겼다. 밖에 쓸 것과 안에 쓸 것을 나눈 것이다.
【어떻게 흘렀나】 「스텔라이」라 부르는 거대한 화강암 오벨리스크를 세웠다.
왕의 무덤 표지다.
가장 큰 것이 33m다. 세우다 넘어진 채 남아 있다 — 무게가 500톤이 넘는다.
한 덩어리 돌로 사람이 세운 것 가운데 손꼽히는 크기다.
표면에 창문과 문을 새겼다. 여러 층짜리 건물을 돌에 새긴 것이다.
1937년 무솔리니가 그중 하나를 로마로 실어 갔다. 2005년에 돌려받아 다시 세웠다.
【그래서】 4세기에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왕 에자나 때다. 화폐가 그것을 보여 준다 — 초승달과 원반이 십자가로 바뀐다.
십자가를 새긴 세계 최초의 화폐로 꼽힌다. 로마보다 앞선다.
아르메니아가 301년, 로마가 380년에 국교로 삼았다. 악숨은 그 사이다.
그리고 이슬람과의 관계가 특이하다.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박해받을 때, 신자 일부를 악숨으로 피난 보냈다.
「그곳에 누구도 억압하지 않는 왕이 있다」고 했다고 전한다.
악숨 왕이 그들을 보호하고 넘겨 달라는 요구를 거절했다.
그래서 이슬람 세계가 에티오피아를 오래 예외로 두었다는 서술이 있다.
【남은 것】 7세기부터 쇠퇴했다.
이슬람이 홍해 교역로를 장악하며 고립됐다.
그리고 삼림 벌채로 토양이 고갈됐다는 연구가 있다.
왕국은 남쪽으로 물러나 이어졌다.
에티오피아 정교회가 1,700년을 이어 왔다.
언약궤가 악숨의 시온 성모 성당에 있다고 믿는다. 수호 사제 한 사람만 볼 수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가 기독교를 유럽에서 받았다」는 통념이 깨지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