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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로마가 지중해를 장악했지만 그 부가 공화정을 무너뜨렸다. 그라쿠스 형제의 토지 개혁이 유혈로 끝나고, 군벌들이 사병을 거느리며 내전이 반복됐다.
고조선이 무너지고 한의 군현이 설치됐다. 저항 속에서 부여·옥저·동예 같은 정치체가 자라났다.
왜북방 게르만 부족이 이주해 내려오며 로마군을 연달아 깨뜨렸다. 로마가 한니발 이후 처음으로 존망을 걱정했다.
결과마리우스가 군제를 갈아엎어 이겼다 — 재산 없는 시민도 병사로 받고 국가가 장비를 댔다. 군대가 국가가 아니라 장군에게 충성하게 된 시작이다.
장군을 변호하다 궁형을 받았다. 죽는 대신 살아서 아버지가 시작한 역사를 끝냈다.
자기 군대를 이끌고 로마 시내로 진군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처음 넘었고, 이후 카이사르가 같은 길을 간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도시 · BC 100 · 서로마 말기의 도읍
이탈리아 동북부, 습지와 석호로 둘러싸여 방어에 유리한 항구 도시였다. 402년 서로마 황제 호노리우스가 밀라노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옮겼다 — 게르만족의 침입이 잦아지던 시기, 습지 지형이 기병의 접근을 어렵게 한다는 점이 고려됐다는 것이 통설이다.
476년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게르만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게 폐위된 곳도 이 도시다 — 전통적으로 「서로마 제국의 멸망」 연도로 꼽히는 사건이다.
이후로도 동고트 왕국, 나아가 비잔티움 제국의 이탈리아 총독부(엑사르카트) 소재지로 이어지며 오랫동안 이탈리아 내 정치적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모자이크 장식 교회와 영묘들이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어, 후기 로마·비잔티움 미술을 보여 주는 대표적 유적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