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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고 속주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왜라인강 너머를 속주로 만들려 했다. 20년간 착실히 진행되던 계획이었다.
결과아르미니우스가 로마군 3개 군단 2만을 숲에서 전멸시켰다. 아우구스투스는 「바루스여, 내 군단을 돌려다오」라 외쳤고 로마는 라인강에서 멈췄다 — 유럽이 라틴권과 게르만권으로 갈린 자리다.
트로이의 아이네이아스가 로마의 조상이 된다는 이야기로 아우구스투스의 새 질서에 신화를 입혔다. 단테는 그를 저승길 안내자로 삼았다.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의 로마 평화가 여기서 시작된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300년의 마지막 통치자. 로마의 힘을 빌려 왕국을 지키려 했으나 악티움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도시 · BC 15 · 지중해로 나가던 카탈루냐의 항구
이베리아반도 동북부, 지중해에 면한 항구 도시다. BC 1세기 로마의 식민시로 세워졌으며, 이후 서고트·이슬람 지배를 거쳐 801년 카롤루스 대제의 아들 루도비쿠스가 이곳을 되찾으며 프랑크 왕국의 변경백령(스페인 변경백)으로 편입됐다.
이 지역을 다스리던 백작 가문이 점차 독립성을 키워 카탈루냐 지역의 중심 세력이 됐고, 1137년 아라곤 왕가와의 혼인동맹으로 아라곤 연합왕국의 일부가 되면서도 독자적인 자치와 상업적 번영을 유지했다.
중세 내내 지중해 교역으로 번성했으며, 1492년 이후 대서양 항로가 중요해지면서 한동안 상대적으로 위상이 낮아졌으나, 근대 이후 산업화를 거치며 스페인에서 손꼽히는 대도시로 다시 성장했다. 지금도 카탈루냐 지역의 정체성과 자치·독립 논의의 중심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