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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그리스 각지에 도시국가가 섰다. 왕정이 귀족정으로, 다시 참주정과 민주정으로 갈라졌다. 인구가 늘어 흑해와 시칠리아까지 식민시를 세웠다. 같은 무렵 이탈리아에서는 로마가 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운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주 왕실이 힘을 잃자 제후들이 「왕을 받든다」는 명분으로 서로를 쳤다. 실제로는 패자 자리를 다툰 것이다.
결과170여 나라가 십여 개로 줄었다. 전쟁이 잦아지자 병법과 외교술이 발달했고, 그 혼란 속에서 공자와 제자백가가 나왔다.
아테네가 부채 노예로 무너지기 직전 조정자로 뽑혔다. 부자와 빈자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했지만 내전은 막았다.
43년을 다스리며 바빌론을 당대 최대의 도시로 만들었다. 이슈타르 문과 공중정원 전설이 그의 것이다.
해당 없음
도시 · BC 590 · 서로마의 마지막 도읍 중 하나
롬바르디아의 중심. 서로마의 마지막 수도이기도 했다
포강 유역 평야, 알프스를 넘는 교역로의 요지에 자리했다. 켈트족이 세운 것을 BC 222년 로마가 정복하며 「메디올라눔」이라는 이름으로 로마 영토에 편입됐다.
3세기 말 로마 제국이 사분(四分)통치 체제로 재편되면서, 286년 서방 정제(正帝)의 거처가 로마에서 이곳으로 옮겨 왔다 — 국경 방어에 유리한 위치였기 때문이다. 이후 402년 라벤나로 다시 옮기기까지, 밀라노는 사실상 서로마 제국의 정치적 수도 역할을 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밀라노 칙령」이 반포된 곳도 이 도시다(다만 실제 조인 장소가 밀라노였는지 니코메디아 등 다른 곳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학설이 갈린다).
중세 이후로는 롬바르디아 지역의 중심 도시로 이어졌고, 여러 이탈리아 도시국가·공국의 각축장이 되기도 했다. 지금은 이탈리아 경제의 중심지로 꼽힌다.
지도에서 보기: BC 7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이스파한 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