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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그리스 각지에 도시국가가 섰다. 왕정이 귀족정으로, 다시 참주정과 민주정으로 갈라졌다. 인구가 늘어 흑해와 시칠리아까지 식민시를 세웠다. 같은 무렵 이탈리아에서는 로마가 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운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주 왕실이 힘을 잃자 제후들이 「왕을 받든다」는 명분으로 서로를 쳤다. 실제로는 패자 자리를 다툰 것이다.
결과170여 나라가 십여 개로 줄었다. 전쟁이 잦아지자 병법과 외교술이 발달했고, 그 혼란 속에서 공자와 제자백가가 나왔다.
실존 여부조차 확실치 않다. 눈이 멀었다는 전승만 있고, 여러 음유시인의 노래가 한 이름으로 묶였을 수 있다.
남쪽 쿠시의 왕이 북쪽으로 올라가 이집트 전체를 다스렸다. 25왕조를 검은 파라오들이라 부른다. 그들은 이집트를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옛 전통을 되살렸다.
정복지를 속주로 바꾸고 주민을 강제 이주시켜 반란의 뿌리를 뽑았다. 잔혹했지만 효율적이었고, 이후 모든 제국이 이 방식을 참고했다.
해당 없음
도시 · BC 753 · 공화정과 제국의 도시
【그때 그 자리】
기원전 8세기의 이탈리아 반도는 여러 세력이 나눠 쥐고 있었다. 북쪽에 에트루리아, 남쪽 해안에 그리스 식민도시들이 있었다. 로마는 티베르강 하류의 언덕 몇 개에 불과했다. 강을 건너기 좋은 여울목이라는 것이 유일한 이점이었다.
전설은 기원전 753년 로물루스가 세웠다고 한다. 처음 250년은 왕이 다스렸고, 그중 후반은 에트루리아 출신 왕이었다.
【왜 그렇게 됐나】
기원전 509년 마지막 왕을 쫓아내고 공화정을 세웠다. 두 명의 집정관을 뽑아 1년만 맡겼다. 한 사람에게 권력이 오래 가지 않도록 만든 장치다.
로마가 커진 힘은 군대만이 아니었다. 정복한 상대를 없애지 않고 편입시켰다. 라틴 도시에는 시민권을, 다른 도시에는 동맹 지위를 줬다. 기원전 212년에는 제국 안 거의 모든 자유민에게 시민권을 줬다. 로마인이 되는 길이 열려 있었다는 점이 그리스 도시국가와 결정적으로 달랐다.
【어떻게 흘렀나】
기원전 264년부터 146년까지 카르타고와 세 차례 싸웠다. 2차 전쟁에서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어 칸나에에서 로마군을 몰살시켰지만, 로마는 병력을 계속 채워 넣어 버텼다. 마지막에 카르타고는 도시째 지워졌다.
지중해를 얻자 안이 흔들렸다. 노예가 쏟아져 들어와 자영농이 무너졌고, 군대는 국가가 아니라 장군에게 충성하게 됐다.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 실패하고 내전이 이어지다,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암살되고 기원전 27년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가 됐다. 공화정이 끝나고 제정이 시작됐다.
이후 200년이 팍스 로마나다. 로마는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가 됐고, 지중해는 로마의 호수라 불렸다.
【그래서】
395년 동서로 갈렸고 476년 서로마가 무너졌다. 동로마는 1453년까지 이어졌다.
【남은 것】
남긴 것은 셋이다. 첫째는 법이다. 계약과 소유와 재판 절차의 틀이 로마법에서 나와 유럽 대륙법의 뿌리가 됐고, 한국 민법도 그 계보 위에 있다. 둘째는 언어다. 라틴어에서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와 에스파냐어가 갈라졌고, 영어 어휘의 절반가량이 라틴 계열이다. 셋째는 기독교다. 박해하던 종교를 313년 공인하고 380년 국교로 삼으면서, 로마는 자기가 무너진 뒤에도 교회를 통해 유럽에 남았다.
수도와 도로와 콘크리트도 로마 것이다. 판테온의 돔은 1,900년 동안 무너지지 않았고,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큰 무근콘크리트 돔이다.
지도에서 보기: BC 10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올림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