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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그리스 각지에 도시국가가 섰다. 왕정이 귀족정으로, 다시 참주정과 민주정으로 갈라졌다. 인구가 늘어 흑해와 시칠리아까지 식민시를 세웠다. 같은 무렵 이탈리아에서는 로마가 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운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주 왕실이 힘을 잃자 제후들이 「왕을 받든다」는 명분으로 서로를 쳤다. 실제로는 패자 자리를 다툰 것이다.
결과170여 나라가 십여 개로 줄었다. 전쟁이 잦아지자 병법과 외교술이 발달했고, 그 혼란 속에서 공자와 제자백가가 나왔다.
왜철제 무기와 상비군, 공성탑을 갖춘 최초의 군사국가가 근동을 통째로 삼키려 했다.
결과이집트에서 페르시아만까지 하나로 묶었지만, 정복지 주민을 통째로 옮겨 심는 공포 통치가 사방에 적을 만들었다. 결국 바빌로니아·메디아 연합에 지워졌다.
왜히스기야가 조공을 끊고 이집트에 기대자 아시리아가 응징에 나섰다.
결과46개 성읍이 함락됐으나 예루살렘은 살아남았다 — 성경은 천사를, 아시리아 기록은 조공 납부를, 학자들은 역병을 든다. 히스기야 터널이 이때 판 수로다.
해당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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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 BC 700 · 북송의 도읍, 정강의 변으로 무너지다
황하 남쪽 운하가 모이는 자리. 북송의 도읍이었다가 정강의 변으로 함락됐다
황하 남쪽, 여러 운하가 모이는 평야 지대에 자리했다. 전국시대 위나라의 도읍(대량)이었던 것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도읍으로 쓰였다.
960년 북송이 들어서며 정식 수도가 됐다. 운하를 통한 물자 수송이 편리해 상업이 크게 발달했고, 「청명상하도」라는 그림에 남은 것처럼 인구 백만이 넘는 당대 세계 최대급 도시로 번성했다.
1127년 여진족의 금나라가 침입해 도성을 함락하고 휘종·흠종 두 황제를 비롯한 황족을 포로로 끌고 갔다(정강의 변). 북송은 이 사건으로 사실상 멸망했고, 남은 황족이 강남으로 내려가 임안(항저우)에서 남송을 다시 세웠다.
이후로도 도시 자체는 이어져 금·원·명·청을 거치며 지방 도시로 존속했고, 지금은 허난성 카이펑시로 남아 있다. 다만 북송 때의 화려함은 되찾지 못했다.
지도에서 보기: BC 7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사마르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