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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유라시아 대부분이 한 왕조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역참으로 동서가 이어져 사람과 물자와 역병이 함께 흘렀다.
몽골과 강화한 뒤 원의 부마국이 됐다. 공민왕이 반원 개혁을 시도했지만 왕조는 이미 기울었다.
왜몽골이 세 번째로 대월을 쳤다. 앞선 두 번도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함대를 앞세웠다.
결과쩐흥다오가 강바닥에 쇠 씌운 말뚝을 박아 두고 썰물을 기다렸다. 물이 빠지자 원의 함선이 말뚝에 걸려 부서졌다. 몽골이 바다에서 크게 진 몇 안 되는 예다.
대월의 장수로 몽골의 세 차례 침입을 막았다. 1288년 바익당강 바닥에 쇠말뚝을 박아 두고 썰물에 함대를 걸리게 했다.
아나톨리아 북서부의 작은 튀르크계 공국을 세워 비잔티움 국경 지역에서 세력을 키웠다. 그의 이름을 딴 오스만 왕조는 이후 600년 넘게 이어지며 세 대륙에 걸친 제국으로 성장했다.
17년을 원나라에서 보내고 돌아와 감옥에서 구술한 「동방견문록」이 콜럼버스를 바다로 이끌었다.
국호를 대원으로 정하고 남송을 무너뜨렸다. 중국 전역이 처음으로 유목 왕조 아래 들어갔다.
아리스토텔레스를 기독교 안으로 들여왔다. 「신학대전」은 가톨릭 신학의 기둥이 됐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도시 · 1291 · 갯벌의 고을에서 아시아의 항구로
장강이 바다로 나가는 갯벌의 고을이었다. 1842년 개항 뒤 아시아의 항구가 됐다
장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하구, 원래는 작은 어촌이자 갯벌 지대였다. 1291년 원나라가 이곳에 현을 설치하면서 행정구역으로 처음 등장하지만, 오랫동안 인근 쑤저우·항저우에 비해 작은 고을에 머물렀다.
1842년 아편전쟁 패배로 청나라가 난징조약을 맺으며 이 항구가 개항됐다. 이후 영국·프랑스·미국 등이 각각 「조계(외국인 거주·행정 구역)」를 설치하면서, 상하이는 짧은 시간에 중국 최대의 국제 무역항이자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도시로 급성장했다.
조계 시기 서구식 건축과 중국 전통이 뒤섞인 독특한 도시 경관(와이탄 등)이 형성됐으며, 동시에 외국의 치외법권 아래 놓인 반(半)식민지적 성격을 둘러싼 논란도 함께 남겼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한동안 국가 통제 경제 속에 위상이 다소 가라앉았으나, 1990년대 이후 개혁개방 정책 속에서 다시 중국을 대표하는 경제·금융 중심지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