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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유라시아 대부분이 한 왕조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역참으로 동서가 이어져 사람과 물자와 역병이 함께 흘렀다.
몽골과 강화한 뒤 원의 부마국이 됐다. 공민왕이 반원 개혁을 시도했지만 왕조는 이미 기울었다.
왜왕위 계승 분쟁에 에드워드 1세가 중재자로 개입했다가 그대로 속국으로 삼으려 했다.
결과윌리엄 월리스가 처형된 뒤 로버트 브루스가 배넉번에서 대승했다. 아브로스 선언은 「우리는 영광이나 부가 아니라 자유를 위해 싸운다」고 적었다.
아나톨리아 북서부의 작은 튀르크계 공국을 세워 비잔티움 국경 지역에서 세력을 키웠다. 그의 이름을 딴 오스만 왕조는 이후 600년 넘게 이어지며 세 대륙에 걸친 제국으로 성장했다.
대월의 장수로 몽골의 세 차례 침입을 막았다. 1288년 바익당강 바닥에 쇠말뚝을 박아 두고 썰물에 함대를 걸리게 했다.
정쟁에 밀려 피렌체에서 추방된 뒤 돌아가지 못했다. 학자만 읽는 라틴어 대신 토스카나 방언으로 써서, 그 말이 이탈리아어가 됐다.
말리 제국의 왕으로 메카 순례에 수행원 6만과 금 실은 낙타 수백 마리를 데려갔다. 카이로에 금을 너무 많이 뿌려 그 지역 금값이 10년 넘게 회복되지 않았다.
17년을 원나라에서 보내고 돌아와 감옥에서 구술한 「동방견문록」이 콜럼버스를 바다로 이끌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도시 · 1300 · 나루에서 자라 부서졌다가 다시 선 도읍
비스와강 나루에서 자라 폴란드의 도읍이 됐다. 1944년 통째로 부서졌다가 다시 세웠다
비스와강 유역의 나루터 마을에서 시작된 도시로, 13~14세기 무렵부터 마조프셰 공국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1596년 지그문트 3세가 수도를 크라쿠프에서 이곳으로 옮기면서 폴란드의 정치적 중심이 됐다 — 폴란드 영토 중앙에 가까운 위치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본다.
제2차 세계대전 중 1944년 폴란드 국내군이 일으킨 「바르샤바 봉기」가 독일군에 진압된 뒤, 히틀러의 명령으로 도시 대부분이 조직적으로 파괴됐다 — 유럽의 수도 중 이토록 계획적으로, 철저히 파괴된 사례는 드물다.
전쟁이 끝난 뒤 폴란드는 옛 그림과 사진을 참고해 구시가지를 원래 모습대로 복원했다 — 이 복원 자체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재건된 구시가지」로는 이례적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