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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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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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교황과 황제가 성직자 임명권을 두고 다퉜다. 성지 회복을 내건 원정이 시작되며 유럽이 처음으로 바깥을 향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호족 연합으로 선 왕조가 과거제와 관료제로 중앙집권을 다졌다. 거란·여진과 부딪히며 북방 경계를 지켰다.
해당 없음
코르도바의 법관이자 의사이자 철학자. 그의 주석 덕에 유럽이 잊었던 아리스토텔레스를 다시 읽었다.
황제권을 세우려 이탈리아 원정을 여섯 번 했고, 십자군 원정 도중 강에서 익사했다. 산속에서 잠자며 독일을 기다린다는 전설이 됐다.
참파에 짓밟힌 뒤 나라를 되찾고 불교로 방향을 틀었다. 비문에 병원 102곳과 여관 121곳을 지었다고 적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도시 · 1158 · 소금길의 다리 하나에서 시작된 도시
이자르강 유역, 알프스 북쪽 평야에 자리했다. 도시 이름 자체가 「수도사들이 있는 곳(뮌헨)」이라는 뜻으로, 인근 수도원에서 유래한다.
1158년 바이에른 공작 하인리히 사자공이 이자르강을 건너는 다리와 그 통행세 징수권을 주교로부터 빼앗아 자신의 영지로 옮기면서 도시가 본격적으로 성장했다고 전한다 — 소금 교역로(이 다리를 지나야 했다)의 이권을 둘러싼 다툼이 도시 탄생의 계기였던 셈이다.
이후 비텔스바흐 가문이 오랫동안 이 도시를 바이에른의 수도로 다스렸으며, 19세기에는 예술·건축의 중심지로, 20세기 초에는 나치당이 처음 세를 키운 도시(1923년 뮌헨 폭동)로도 역사에 남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크게 파괴됐으나 전후 재건됐고, 지금은 독일에서 손꼽히는 경제·문화 도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