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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라틴 유럽·비잔틴·이슬람이 지중해를 나눠 가졌다. 카롤루스의 제국은 곧 쪼개졌고 바이킹과 마자르가 유럽을 휘저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당이 무너지고 송이 섰다.
호족 연합으로 선 왕조가 과거제와 관료제로 중앙집권을 다졌다. 거란·여진과 부딪히며 북방 경계를 지켰다.
왜인구 압력과 흘수 얕은 롱십이 결합했다. 강을 거슬러 내륙까지 들이닥칠 수 있는 배가 결정적이었다.
결과약탈로 시작해 정착과 건국으로 끝났다. 노르망디·러시아·아이슬란드가 이들의 손에서 생겼고, 북아메리카에도 콜럼버스보다 500년 먼저 닿았다.
여러 종교를 알아본 끝에 비잔티움의 정교회를 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선택으로 러시아가 서유럽이 아니라 콘스탄티노폴리스 쪽 문화권에 들어갔다.
궁정 여성으로 한자가 아니라 히라가나로 썼다. 남자들이 한문을 쓰는 동안 여성이 자기 말로 문학을 만들었다. 세계 최초의 장편소설로 꼽히기도 한다.
마자르의 약탈을 끝내고 황제 대관을 받았다. 주교를 제후로 삼아 세속 귀족을 견제한 방식이 이후 제국의 특징이 된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도시 · 988 · 바이킹이 검은 웅덩이 옆에 세운 정착지
아일랜드 동부, 리피강 하구에 자리했다. 도시 이름 자체가 아일랜드어 「검은 웅덩이(dubh linn)」에서 왔는데, 강의 한 지점이 이렇게 불렸던 것에서 유래한다.
841년 무렵 바이킹(노르드인)이 이곳에 겨울 진지를 세운 것을 도시의 실질적 시작으로 본다 — 이전에도 켈트족의 소규모 정착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본격적인 도시로 성장한 것은 바이킹 정착 이후다.
이후 바이킹계 지배층과 아일랜드 토착 세력 사이에 지배권이 여러 차례 오갔고, 1170년 무렵 잉글랜드(앵글로-노르만)의 침입을 받으며 이후 오랫동안 잉글랜드·영국의 아일랜드 지배 거점 역할을 했다.
1922년 아일랜드 자유국이 수립되며 독립 아일랜드의 수도가 됐고, 지금까지 그 지위를 이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