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왕의 난과 영가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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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전제군주정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제국을 넷으로 나눠 통치했고 콘스탄티누스가 다시 합쳤다. 수도가 동쪽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겨가고, 박해받던 기독교가 국교가 되어간다.

한반도

삼국의 성립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전쟁 1건

팔왕의 난과 영가의 난291 – 316
서진 황족 vs 흉노·갈

황후 가씨의 전횡에서 시작해 사마씨 황족 여덟이 서로를 쳤다. 각자 이민족 기병을 용병으로 끌어들인 것이 화근이었다.

낙양 함락 311장안 함락 316

결과황제 둘이 잇달아 포로가 되어 살해됐다. 화북이 130년간 오호십육국의 혼란에 들어갔고, 귀족들은 강남으로 피난해 동진을 세웠다.

25년 · 화북 상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2명

디오클레티아누스정치284 · 제국을 넷으로 나눠 살린 황제
AD 244 – AD 311

노예 출신 병사에서 황제가 됐다. 혼자 다스리기엔 제국이 너무 커졌다고 보고 넷으로 쪼갠 뒤, 스스로 물러나 양배추를 길렀다.

  • 사두정치 — 정제 둘, 부제 둘
  • 최고가격령으로 물가를 잡으려 함
  • 로마 황제로는 처음으로 자진 퇴위
콘스탄티누스정치313 · 로마 황제
272 – 337

기독교를 공인하고 수도를 동쪽으로 옮겼다. 제국의 무게 중심이 바뀌었다.

  •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 공인
  • 니케아 공의회 소집
  • 콘스탄티노폴리스 건설

그 무렵의 사건

300
바누아투의 사람들
한 섬에 100개가 넘는 말이 있다.
작은 섬무리에 서로 통하지 않는 언어가 100가지 넘게 산다. 인구 대비 세계에서 가장 언어가 많은 곳이다. 산과 바다가 마을을 갈라놓았고, 각 마을이 오래 따로 살았다는 뜻이다. 로이 마타의 무덤에는 마흔 명이 함께 묻혀 있었다.
300
야마토 정권
3세기 후반부터 7세기까지, 오늘날 나라·오사카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야마토 정권이 일본 열도의 여러 지역 세력을 통합하며 고대 일본 국가의 기틀을 놓았다.
이 시기 곳곳에 거대한 열쇠구멍 모양의 무덤('전방후원분')이 세워졌는데, 그 규모는 지배자의 권력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보여준다. 야마토 정권은 한반도의 백제·가야 등과 활발히 교류하며 유교·불교와 한자, 여러 선진 기술을 받아들였다. 6~7세기에는 쇼토쿠 태자가 불교를 진흥하고 중국식 관료제 요소를 도입하는 등 국가 체제를 정비했으며, 이후 다이카 개신(645년)을 거치며 천황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 고대국가 체제로 발전해 나갔다.
313
밀라노 칙령
기독교가 공인됐다. 박해받던 종교가 제국의 종교가 된다.
박해받던 종교가 공인됐고, 80년 뒤 국교가 된다.
325
니케아 공의회
콘스탄티누스가 소집한 첫 세계 공의회. 예수가 신과 「동일 본질」이라는 신조가 정해졌다.
아리우스는 아들이 아버지보다 낮다고 했고 알렉산드리아 주교들은 반대했다. 황제는 제국의 통일을 위해 300여 명의 주교를 니케아에 모아 결론을 강요했다. 여기서 나온 니케아 신조는 지금도 대부분의 교회가 외우고, 부활절 날짜도 이때 정해졌다. 종교 문제를 황제가 결정하는 선례가 함께 생겼다.
330
콘스탄티노폴리스
제국의 중심이 동쪽으로 옮겨갔다. 이 도시는 1123년을 더 버틴다.
제국의 무게 중심이 동쪽으로 옮겨갔다. 이 도시는 1,123년을 더 버틴다.
224
사산 왕조의 등장
페르시아가 400년 만에 돌아왔다.
아르다시르 1세가 파르티아를 무너뜨리고 아케메네스의 후계를 자처했다.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고 로마와 400년을 겨룬다.

교역로 4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팔왕의 난과 영가의 난

전쟁 · 291 · 황실이 서로 죽이는 사이 북쪽을 잃다

황후 가씨의 전횡에서 시작해 사마씨 황족 여덟이 서로를 쳤다. 각자 이민족 기병을 용병으로 끌어들인 것이 화근이었다. 황제 둘이 잇달아 포로가 되어 살해됐다. 화북이 130년간 오호십육국의 혼란에 들어갔고, 귀족들은 강남으로 피난해 동진을 세웠다.

【그때 그 자리】 AD 280년 서진이 삼국을 통일했다.

그런데 창업자 사마염이 죽은 뒤가 문제였다.

황제 자리를 물려받은 사마충은 지적 장애가 있었다.

백성이 굶어 죽는다는 보고에 「쌀이 없으면 고기죽을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왜 그렇게 됐나】 사마염이 위나라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했다.

위는 황족에게 힘을 주지 않았다가 사마씨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그래서 종실 스물일곱 명을 왕으로 봉하고 군대를 주었다.

그것이 반대 방향으로 터졌다.

황후 가남풍이 권력을 쥐고 태자를 죽였다. 그것을 명분으로 왕들이 움직였다.

【어떻게 흘렀나】 291년부터 306년까지 16년이다.

여덟 왕이 차례로 낙양을 차지하고 죽었다. 잡고 죽이고 다시 잡히는 일이 되풀이됐다.

그러면서 각자 병력을 끌어들였다. 흉노와 선비의 기병을 용병으로 썼다.

북쪽 유목민들이 중원의 내부 사정과 지리를 그렇게 알게 됐다.

인구가 급감했다. 낙양 일대가 여러 번 약탈당했다.

【그래서】 304년 흉노의 유연이 독립을 선포했다. 한(漢)이라 이름 붙였다 — 자기가 한나라 황실의 외손이라는 논리다.

311년 아들 유총이 낙양을 함락했다. 「영가의 난」이다.

황제 회제가 사로잡혔다. 연회에서 술 따르는 일을 시킨 뒤 죽였다.

316년 장안도 함락되고 민제가 잡혔다. 서진이 끝났다.

【남은 것】 황족과 귀족과 백성이 대거 남쪽으로 피난했다. 「의관남도(衣冠南渡)」라 부른다.

건강(지금의 난징)에서 동진이 섰다.

북쪽에는 유목 민족들이 나라를 세웠다. 130년 동안 열여섯 나라가 명멸한다 — 오호십육국이다.

이 시기가 중국사에서 가장 긴 분열기의 시작이다. 589년 수가 통일할 때까지 270년이다.

그 사이에 두 가지가 일어났다.

하나는 남쪽 개발이다. 인구가 내려가면서 양쯔강 이남이 본격적으로 농지가 됐다. 뒤에 경제 중심이 남쪽으로 옮겨 가는 출발점이다.

다른 하나는 불교의 확산이다. 혼란 속에서 급속히 퍼졌다. 북쪽 유목 왕조들이 특히 후원했다 — 한족의 유교와 달리 자기들도 낄 수 있는 종교였기 때문이다.

윈강과 룽먼 석굴이 이 시기의 것이다.

그리고 4세기에 그 불교가 고구려로 들어온다.

지도에서 보기: 2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콘스탄티누스의 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