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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제국을 넷으로 나눠 통치했고 콘스탄티누스가 다시 합쳤다. 수도가 동쪽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겨가고, 박해받던 기독교가 국교가 되어간다.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왜황후 가씨의 전횡에서 시작해 사마씨 황족 여덟이 서로를 쳤다. 각자 이민족 기병을 용병으로 끌어들인 것이 화근이었다.
결과황제 둘이 잇달아 포로가 되어 살해됐다. 화북이 130년간 오호십육국의 혼란에 들어갔고, 귀족들은 강남으로 피난해 동진을 세웠다.
노예 출신 병사에서 황제가 됐다. 혼자 다스리기엔 제국이 너무 커졌다고 보고 넷으로 쪼갠 뒤, 스스로 물러나 양배추를 길렀다.
기독교를 공인하고 수도를 동쪽으로 옮겼다. 제국의 무게 중심이 바뀌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전쟁 · 291 · 황실이 서로 죽이는 사이 북쪽을 잃다
황후 가씨의 전횡에서 시작해 사마씨 황족 여덟이 서로를 쳤다. 각자 이민족 기병을 용병으로 끌어들인 것이 화근이었다. 황제 둘이 잇달아 포로가 되어 살해됐다. 화북이 130년간 오호십육국의 혼란에 들어갔고, 귀족들은 강남으로 피난해 동진을 세웠다.
【그때 그 자리】 AD 280년 서진이 삼국을 통일했다.
그런데 창업자 사마염이 죽은 뒤가 문제였다.
황제 자리를 물려받은 사마충은 지적 장애가 있었다.
백성이 굶어 죽는다는 보고에 「쌀이 없으면 고기죽을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왜 그렇게 됐나】 사마염이 위나라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했다.
위는 황족에게 힘을 주지 않았다가 사마씨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그래서 종실 스물일곱 명을 왕으로 봉하고 군대를 주었다.
그것이 반대 방향으로 터졌다.
황후 가남풍이 권력을 쥐고 태자를 죽였다. 그것을 명분으로 왕들이 움직였다.
【어떻게 흘렀나】 291년부터 306년까지 16년이다.
여덟 왕이 차례로 낙양을 차지하고 죽었다. 잡고 죽이고 다시 잡히는 일이 되풀이됐다.
그러면서 각자 병력을 끌어들였다. 흉노와 선비의 기병을 용병으로 썼다.
북쪽 유목민들이 중원의 내부 사정과 지리를 그렇게 알게 됐다.
인구가 급감했다. 낙양 일대가 여러 번 약탈당했다.
【그래서】 304년 흉노의 유연이 독립을 선포했다. 한(漢)이라 이름 붙였다 — 자기가 한나라 황실의 외손이라는 논리다.
311년 아들 유총이 낙양을 함락했다. 「영가의 난」이다.
황제 회제가 사로잡혔다. 연회에서 술 따르는 일을 시킨 뒤 죽였다.
316년 장안도 함락되고 민제가 잡혔다. 서진이 끝났다.
【남은 것】 황족과 귀족과 백성이 대거 남쪽으로 피난했다. 「의관남도(衣冠南渡)」라 부른다.
건강(지금의 난징)에서 동진이 섰다.
북쪽에는 유목 민족들이 나라를 세웠다. 130년 동안 열여섯 나라가 명멸한다 — 오호십육국이다.
이 시기가 중국사에서 가장 긴 분열기의 시작이다. 589년 수가 통일할 때까지 270년이다.
그 사이에 두 가지가 일어났다.
하나는 남쪽 개발이다. 인구가 내려가면서 양쯔강 이남이 본격적으로 농지가 됐다. 뒤에 경제 중심이 남쪽으로 옮겨 가는 출발점이다.
다른 하나는 불교의 확산이다. 혼란 속에서 급속히 퍼졌다. 북쪽 유목 왕조들이 특히 후원했다 — 한족의 유교와 달리 자기들도 낄 수 있는 종교였기 때문이다.
윈강과 룽먼 석굴이 이 시기의 것이다.
그리고 4세기에 그 불교가 고구려로 들어온다.
지도에서 보기: 2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콘스탄티누스의 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