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와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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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제국주의

산업화한 열강이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나눠 가졌다. 동맹 체제가 굳어지며 국지 분쟁이 전면전으로 번질 구조가 만들어졌다.

한반도

개항기

강화도 조약으로 문이 열렸다. 개화와 척사가 충돌하고 청·일·러가 조선을 두고 겨뤘다.

전쟁 9건

청일전쟁1894 – 1895
일본 vs 청

동학농민운동 진압을 명분으로 청과 일본이 동시에 조선에 파병했다. 일본은 철수를 거부하고 조선의 지배권을 걸었다.

풍도 1894평양 1894황해 해전 1894웨이하이웨이 1895

결과일본이 청을 꺾었다. 조선에 대한 청의 종주권이 끝났다.

9개월 ·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배상금 2억 냥
동학농민운동1894 – 1895
동학 농민군 vs 조선 정부·일본군

전라도 고부 군수의 수탈에 항의하며 봉기한 농민군이 동학(민중 종교)을 매개로 전국적으로 규합했다.

황토현 전투 1894우금치 전투 1894

결과농민군이 전주성까지 점령하자 조선 정부가 청에 파병을 요청했고, 톈진 조약에 따라 일본도 군대를 보내며 청일전쟁의 도화선이 됐다. 이후 일본군에 의해 우금치 등에서 농민군이 진압됐다.

1년 · 청일전쟁 발발의 직접 계기
필리핀 혁명1896 – 1898
필리핀 독립운동 세력 vs 스페인

300년 넘게 이어진 스페인의 식민 지배에 맞서 호세 리살 등의 사상적 영향을 받은 필리핀인들이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봉기 시작 1896필리핀 독립 선언 1898

결과미국-스페인 전쟁이 겹치면서 스페인은 결국 필리핀을 미국에 넘겼는데, 필리핀인들은 스페인 대신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곧이어 필리핀-미국 전쟁을 벌이게 된다.

2년 · 스페인 지배 종식, 그러나 곧바로 미국 지배로 전환
아드와 전투1896
에티오피아 vs 이탈리아

이탈리아가 조약 문구를 자기들 유리하게 해석해 보호령을 주장하자 메넬리크가 거부했다.

아드와

결과에티오피아가 이겼다. 아프리카가 유럽 군대를 정면에서 꺾은 드문 예이고, 그래서 에티오피아만 식민 지배를 면했다. 이 소식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민족운동에 크게 울렸다.

옴두르만 전투1898
영국 vs 마흐디국

수단에서 일어난 마흐디 운동이 13년간 독립을 유지하고 있었다.

옴두르만

결과다섯 시간에 수단 쪽 1만이 죽고 영국 쪽 48명이 죽었다. 기관총이 전장에서 무엇을 하는지 처음으로 분명히 보인 날이다. 처칠이 스물셋에 여기 참전했다.

스페인-미국 전쟁1898
미국 vs 에스파냐

쿠바 독립전쟁에 미국 여론이 개입을 원했고, 아바나 항의 군함 메인호 폭발이 선전포고의 구실이 됐다.

마닐라만 해전 1898.5산후안 언덕 1898.7산티아고 해전 1898.7파리 조약 1898.12

결과「멋진 작은 전쟁」은 넉 달 만에 끝났다. 미국은 필리핀·괌·푸에르토리코를 얻고 쿠바를 보호국으로 삼아 태평양 제국이 됐다. 필리핀에서는 곧 독립군과의 새 전쟁이 시작됐다.

4개월 · 미국의 해외 제국
보어전쟁1899 – 1902
영국 vs 트란스발·오라녜 자유국

트란스발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영국계 이주민이 몰렸고, 영국이 이들의 참정권을 명분으로 보어 공화국을 압박했다.

레이디스미스 1899–1900프리토리아 1900

결과영국이 남아프리카의 보어 공화국들을 병합했다.

3년 · 강제수용소에서 민간인이 다수 사망했다
필리핀-미국 전쟁1899 – 1902
미국 vs 필리핀 제1공화국

미국-스페인 전쟁 뒤 미국이 필리핀을 매입하자, 이미 독립을 선포했던 필리핀 혁명 세력이 이에 맞섰다.

마닐라 전투 1899발랑기가 학살 1901

결과아기날도 등 독립 지도부가 붙잡히거나 항복하며 정규전은 끝났지만, 이후로도 저항이 이어졌다. 필리핀 민간인 사망자가 수십만 명에 달했다는 추산도 있다.

3년 · 미국의 필리핀 식민 통치(1946년까지)
의화단 전쟁1899 – 1901
청·의화단 vs 8개국 연합군

기독교 선교와 외세 침탈에 분노한 산둥의 비밀결사 「의화단」이 「부청멸양」을 외치며 교회와 철도를 부수자 서태후가 이를 이용해 열강에 선전포고했다.

베이징 공사관 포위 19008개국 연합군 톈진 점령 1900베이징 함락 1900신축조약 1901

결과55일 공사관 포위 끝에 연합군이 베이징을 점령하고 서태후는 시안으로 달아났다. 청은 4억 5천만 냥의 배상금과 외국군 주둔을 받아들였고, 러시아는 만주를 점령해 러일전쟁의 씨앗이 됐다.

2년 · 배상금 4억 5천만 냥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39명

메넬리크 2세정치1896 · 유럽을 물리친 아프리카 황제
1844 – 1913

이탈리아의 침공을 아드와에서 격퇴했다. 아프리카가 유럽 군대를 정면에서 이긴 드문 예이고, 그래서 에티오피아만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

  • 1896년 아드와 승리
  • 무기를 미리 사들여 준비함
  • 아디스아바바 건설
서재필정치1896 ·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를 이끈 개화 운동가
1864 – 1951

갑신정변 실패 후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귀국해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를 조직, 자주독립과 근대 개혁을 이끄는 여론을 일으켰다.

  • 갑신정변 참여 후 미국 망명, 의사 자격 취득
  • 1896년 독립신문 창간(한글판·영문판)
  • 독립협회 조직, 독립문 건립 주도
고종정치1897 · 대한제국을 선포한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초대 황제
1852 – 1919

어린 나이에 즉위해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세력 사이에서 통치했다. 을미사변 후 아관파천을 거쳐 대한제국을 선포했으나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기고 강제 퇴위당했다.

  •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황제 즉위(칭제건원)
  • 을사늑약에 끝까지 서명 거부
  • 헤이그 특사 파견 후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
명성황후정치1895 · 일본에 의해 시해된 조선의 왕비
1851 – 1895

친러 정책으로 일본을 견제하려 하자, 조선 침탈에 방해가 된다고 본 일본 낭인들이 경복궁을 습격해 그를 시해했다(을미사변).

  • 고종의 왕비로 흥선대원군과 정치적으로 대립
  • 임오군란·갑신정변 이후 친러 노선으로 일본 견제 시도
  • 1895년 을미사변으로 일본 낭인들에게 시해됨
전봉준정치1894 · 동학농민군의 지도자
1855 – 1895

아버지가 고부군수의 수탈에 항의하다 맞아 죽었다. 키가 작아 녹두장군이라 불렸다. 우금치에서 기관총 앞에 무너졌다.

  • 1894년 고부·황토현 봉기
  • 집강소 — 농민이 직접 행정을 맡음
  • 폐정개혁 12조
  • 우금치 패전 뒤 처형
마리 퀴리과학1898 · 라듐과 폴로늄을 찾아낸 사람
1867 – 1934

헛간 실험실에서 광석을 정제해 새 원소를 분리했다. 서로 다른 두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유일한 사람.

  • 폴로늄·라듐 발견 1898
  • 노벨물리학상 1903
  • 노벨화학상 1911
막스 플랑크과학1900 · 양자를 마지못해 연 사람
1858 – 1947

흑체복사 문제를 풀려고 에너지가 최소 단위로만 오간다고 가정했다. 그렇게 양자역학이 시작됐다.

  • 양자 가설 발표 1900
  • 노벨물리학상 1918
  • 양자역학 탄생의 출발점
프로이트과학1900 · 무의식을 발견한 정신분석의 창시자
1856 – 1939

꿈은 억압된 소원의 실현이고 사람은 스스로 모르는 힘에 이끌린다. 그의 이론은 심리학과 문학, 일상의 말까지 바꿨다.

  • 「꿈의 해석」(1900)
  • 무의식·억압·오이디푸스 콤플렉스
  • 나치를 피해 런던 망명(1938)
라마 5세정치1890 · 식민지가 되지 않은 왕
1853 – 1910

노예제를 없애고 관료제와 학교와 철도를 들였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땅 일부를 내주며 균형을 잡았다. 동남아시아에서 식민지가 되지 않은 유일한 나라다.

  • 노예제 폐지
  • 근대 행정과 교육
  • 영·프 사이에서 완충국으로 살아남음
세실 로즈정치1890 · 아프리카 남부를 영국 제국에 편입한 다이아몬드 왕
1853 – 1902

드비어스로 다이아몬드를 독점하고 케이프 식민지 총리가 됐으며 자기 이름을 딴 로디지아를 만들었다. 「할 수만 있다면 별도 병합하겠다」고 했다.

  • 드비어스 설립, 킴벌리 다이아몬드 독점(1888)
  • 영국남아프리카회사 — 로디지아 식민화
  • 로즈 장학금 창설
라이트 형제과학1903 · 인류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한 자전거 기술자 형제
윌버 1867 – 1912 · 오빌 1871 – 1948

1903년 12월 17일 키티호크 모래언덕에서 12초, 36m. 자전거 가게를 하던 두 형제가 하늘을 열었다.

  • 풍동 실험으로 날개 설계(1901)
  • 플라이어호 첫 동력 비행(1903)
  • 유럽 시범 비행으로 항공 시대 개막(1908)
테슬라과학1888 · 교류 전기 시스템을 만든 발명가
1856 – 1943

에디슨의 직류에 맞서 교류 모터와 송전을 만들어 오늘의 전력망을 결정했다. 무선 전력의 꿈을 좇다 가난하게 죽었다.

  • 교류 유도 전동기와 다상 시스템(1888)
  • 웨스팅하우스와 나이아가라 수력발전(1895)
  • 테슬라 코일, 무선 송전 실험
아인슈타인과학1905 · 특허청 서기의 기적의 해
1879 – 1955

넉 달 사이 논문 네 편으로 물리학을 바꿨다. 1919년 일식 관측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 기적의 해 1905 — 논문 네 편
  • 일반상대성이론 1915
  • 1919년 일식 관측으로 검증
파스퇴르과학1885 · 자연발생설을 무너뜨린 사람
1822 – 1895

백조목 플라스크로 미생물이 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증명했다. 최초로 광견병 백신을 사람에게 썼다.

  • 자연발생설 반박 실험
  • 저온살균법 개발
  • 광견병 백신 인체 첫 시행 1885
이토 히로부미정치1885 · 일본 헌법을 만들고 조선 통감이 된 첫 총리
1841 – 1909

조슈의 하급 무사에서 4번 총리가 됐다. 대일본제국 헌법을 기초했고, 을사늑약을 강요한 뒤 하얼빈에서 안중근에게 저격당했다.

  • 초대 내각총리대신(1885)
  • 메이지 헌법 기초(1889)
  • 초대 한국 통감(1905), 하얼빈에서 피살
김옥균정치1884 · 갑신정변을 일으킨 사람
1851 – 1894

위에서 빠르게 바꾸려 했다. 일본의 힘을 빌린 것이 화근이었다. 사흘 만에 끝났고 10년 뒤 상하이에서 암살됐다.

  • 1884년 갑신정변 — 3일 천하
  • 신분제 폐지·조세 개혁을 내건 14개조
  • 1894년 상하이에서 홍종우에게 피살
신채호사상1908 · 역사를 무기로 삼은 사람
1880 – 1936

역사는 나와 남의 싸움이라고 썼다. 을지문덕전을 써서, 우리에게도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일 자체가 힘이 된다고 봤다.

  • 조선상고사·독사신론
  • 묘청의 난을 조선 역사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이라 평함
  • 뤼순 감옥에서 옥사
안중근장군1909 · 대한의군 참모중장
1879 – 1910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재판에서 동양평화론을 남겼다.

  • 대한의군 참모중장
  • 하얼빈 의거 1909
  • 옥중에서 「동양평화론」 집필
니체사상1883 ·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철학자
1844 – 1900

기독교 도덕을 「노예의 도덕」이라 불렀고 위버멘시와 영원회귀를 말했다. 44세에 광기에 빠졌고 그의 책은 20세기 사상을 뒤흔들었다.

  • 「비극의 탄생」(1872)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
  • 「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코흐과학1882 · 세균학자
1843 – 1910

결핵균과 콜레라균을 찾다

  • 결핵균 발견 1882
  • 코흐의 공리 확립
  • 노벨생리의학상 1905
에밀리아노 사파타장군1911 · 땅과 자유
1879 – 1919

남부 농민들을 이끌고 빼앗긴 공유지를 되찾으려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약속은 미뤄졌고 그는 끝내 타협하지 않았다. 매복에 걸려 죽었다.

  • 아얄라 강령 — 땅은 일구는 사람에게
  •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
러더퍼드과학1911 · 물리학자
1871 – 1937

원자핵을 발견하다

  • 금박 실험으로 원자핵 발견 1911
  • 새 원자모형 제시
  • 최초의 인공 핵변환
피에르 퀴리과학1880 · 물리학자
1859 – 1906

압전 효과를 발견하다

  • 압전 효과 발견 1880
  • 마리 퀴리와 방사능 공동연구
  •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사망
베게너과학1912 · 기상학자·지질학자
1880 – 1930

대륙이 움직인다고 말한 사람

  • 대륙이동설 제창 1912
  • 판게아 개념 제시
  • 사후 판구조론으로 입증됨
쑨원정치1912 · 청을 무너뜨린 중국 혁명의 아버지
1866 – 1925

삼민주의를 내걸고 열 번 봉기해 열 번 실패했지만 신해혁명으로 2천 년 제정을 끝냈다. 국민당과 공산당 모두 그를 국부로 받든다.

  • 흥중회·동맹회 조직, 삼민주의
  • 중화민국 임시대총통(1912)
  • 국공합작(1924)
안창호정치1913 · 흥사단을 세운 사람
1878 – 1938

당장 싸우는 것보다 사람을 기르는 것이 먼저라고 봤다. 미국에서 동포를 조직하고 학교를 세웠다.

  • 신민회·대성학교
  • 1913년 흥사단 창립
  • 무실역행 — 참되게 힘써 행하라
보어과학1913 · 원자에 계단을 놓은 사람
1885 – 1962

전자가 정해진 궤도만 돈다는 원자모형으로 양자역학의 문을 열었다.

  • 보어의 원자모형 1913
  • 코펜하겐 해석 주도
  • 아인슈타인과의 반세기 논쟁
에디슨과학1879 · 전구와 축음기를 만든 발명왕
1847 – 1931

1,093건의 특허. 멘로파크 연구소에서 발명을 산업으로 만들었고, 뉴욕에 세계 최초의 발전소를 세워 밤을 밝혔다.

  • 축음기(1877), 실용 백열전구(1879)
  • 멘로파크 연구소 — 조직적 발명
  • 펄스트리트 발전소(1882), 영화 카메라
헨리 포드사회1913 · 컨베이어 벨트로 자동차를 대중의 것으로 만든 기업가
1863 – 1947

모델 T를 조립라인에서 93분에 한 대씩 만들어 값을 세 배 낮췄다. 노동자에게 하루 5달러를 주어 자기 차를 사게 했다.

  • 모델 T 출시(1908)
  • 이동식 조립라인(1913)
  • 일당 5달러 — 대량생산·대량소비
빅토리아 여왕정치1877 ·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63년을 다스린 여왕
1819 – 1901, 재위 1837 – 1901

18세에 즉위해 산업혁명과 제국 팽창의 시대를 살았다. 인도 여제가 됐고 유럽 왕실의 할머니가 됐다.

  • 인도 여제 즉위(1877)
  • 앨버트 공과 결혼, 9자녀
  • 즉위 50·60주년 기념식 — 제국의 절정
시팅불장군1876 · 리틀빅혼에서 커스터를 물리친 라코타족 지도자
1831 무렵 – 1890

라코타족을 비롯한 여러 부족을 규합해 미군에 맞섰다. 1876년 리틀빅혼 전투에서 커스터 중령의 기병대를 전멸시켰으나, 결국 1890년 체포 과정에서 사살됐다.

  • 리틀빅혼 전투 승리 1876
  • 캐나다로 망명했다가 귀순
  • 운디드니 학살 두 주 전 사살됨
레닌정치1917 · 볼셰비키 지도자
1870 – 1924

제국을 무너뜨리고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를 세웠다.

  • 10월 혁명 1917
  • 소비에트 정권 수립
  • 신경제정책(NEP)
유관순정치1919 · 독립운동가
1902 – 1920

열일곱에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를 이끌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숨졌다.

  • 3·1운동에 참여
  • 아우내 장터 만세 시위 주도
  •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
김구정치1919 · 임시정부 주석
1876 – 1949

3·1운동 뒤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를 이끌었다. 광복군을 조직했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 한인애국단 조직
  • 한국광복군 창설
윌슨정치1919 · 14개조와 국제연맹을 제안한 미국 대통령
1856 – 1924

민족자결을 말해 3·1운동에 불을 붙였다. 국제연맹을 만들었으나 정작 미국 상원이 가입을 거부했다.

  • 1차대전 참전(1917)
  • 14개조 평화 원칙, 민족자결(1918)
  • 파리 강화회의, 국제연맹 창설, 노벨 평화상
김좌진장군1920 ·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독립군 지휘관
1889 – 1930

북로군정서를 이끌고 청산리 일대에서 일본군과 맞서 독립군 최대의 승리를 거뒀다. 이후 만주에서 무장 투쟁을 이어가다 암살당했다.

  • 북로군정서 총사령관
  • 1920년 청산리 대첩 승리 주도
  • 만주에서 활동 중 1930년 피살
홍범도장군1920 ·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평민 출신 독립군 지휘관
1868 – 1943

포수 출신으로 대한독립군을 조직해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다. 훗날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해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 대한독립군 사령관
  • 1920년 봉오동 전투 승리 주도
  • 1937년 소련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비스마르크정치1871 · 프로이센 재상
1815 – 1898

세 번의 전쟁으로 독일을 통일했다. 이후 20년간 유럽의 균형을 관리했다.

  • 세 차례 전쟁으로 독일 통일
  • 세계 최초의 사회보험
  • 동맹 체제로 유럽 균형 관리
무솔리니정치1922 · 파시즘을 발명한 이탈리아의 두체
1883 – 1945

「로마 진군」으로 권력을 잡은 첫 파시스트 독재자. 히틀러의 본보기이자 나중엔 그의 꼭두각시가 됐고, 파르티잔에게 처형돼 거꾸로 매달렸다.

  • 로마 진군, 총리 취임(1922)
  • 에티오피아 침공(1935), 추축 동맹
  • 1943년 실각, 1945년 처형

그 무렵의 사건

1896
아도와 전투
1896년, 에티오피아군이 아도와에서 이탈리아군을 크게 무찔러, 아프리카 국가가 유럽 열강의 식민 지배 시도를 군사적으로 물리친 보기 드문 사례를 남겼다.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를 보호령으로 삼으려 했으나 메넬리크 2세 황제가 이를 거부하고 대규모 병력을 모아 맞섰다. 유럽 원정군을 상대로 아프리카군이 거둔 이 승리로 에티오피아는 20세기 초까지 아프리카에서 몇 안 되는 독립국 지위를 지켜냈다.
1896
아관파천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겨 약 1년간 그곳에서 국정을 이끌었다.
을미사변으로 왕비가 일본 낭인들에게 시해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고종은 자신의 안전마저 위협받는다고 느꼈다. 1896년 2월, 고종은 비밀리에 궁궐을 빠져나와 세자와 함께 서울 정동의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다(아관파천). 이 조치로 친일 내각은 무너지고 친러 성향의 새 내각이 들어섰으며, 단발령 등 개혁 조치 일부가 철회되었다. 그러나 국왕이 다른 나라 공사관에 머무는 상황은 조선의 자주성에 큰 타격을 주었고, 이 기간 동안 러시아를 비롯한 열강들은 각종 이권을 조선으로부터 얻어냈다.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고종은 1897년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했고, 곧이어 대한제국을 선포해 자주독립국임을 대내외에 다시 천명했다.
1896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서재필 등이 세운 독립협회는 독립문을 세우고 만민공동회를 열어, 자주독립과 근대적 개혁을 요구하는 민중 운동을 이끌었다.
미국에서 돌아온 서재필은 1896년 독립신문을 창간해 자주독립과 근대 개혁을 알리는 한편, 같은 해 독립협회를 조직했다. 독립협회는 중국 사신을 맞던 영은문 자리에 자주독립의 상징으로 독립문을 세우고, 누구나 참여해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만민공동회를 열어 열강의 이권 침탈에 반대하고 의회 설립 등 근대적 개혁을 요구했다. 만민공동회는 관료와 백성이 함께 참여하는 관민공동회로 확대되어 헌의 6조를 결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독립협회의 활동이 왕권을 위협한다고 여긴 고종과 보수 세력의 탄압으로, 독립협회는 1898년 강제 해산되었다. 짧은 활동 기간이었지만 근대적 시민 의식과 자주독립 의식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킨 점에서 큰 의의를 남겼다.
1895
을미사변
1895년 10월, 일본 낭인들이 경복궁에 난입해 명성황후를 시해했다.
청일전쟁 승리 이후 조선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러시아 견제로 흔들리자,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가 주도해 벌인 사건으로 국제적 규탄을 받았다. 이 사건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으로 이어졌다.
1897
대한제국 선포
러시아 공사관에서 환궁한 고종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스스로 황제라 칭하며, 자주독립국임을 대내외에 선포했다.
아관파천으로 실추된 국가의 위신을 회복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자, 고종은 1897년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한 뒤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올리고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꾸었다(칭제건원). 이는 더 이상 청이나 다른 나라에 사대하지 않는 자주독립국임을 대내외에 선언하는 상징적인 조치였다. 대한제국은 광무개혁이라 불리는 근대화 정책을 추진해 상공업 진흥과 근대적 토지 조사(양전·지계 발급), 군사력 강화 등을 꾀했다. 그러나 황제권 강화에 치중한 나머지 개혁의 폭이 제한적이었고, 이미 심화되던 열강의 이권 침탈과 일본의 압박을 근본적으로 막아내지는 못했다.
1894
갑오개혁
동학농민운동을 계기로 개혁 논의가 본격화된 가운데, 김홍집 내각은 신분제 폐지 등 조선 사회를 근대적으로 바꾸는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동학농민운동으로 개혁의 필요성이 커진 상황에서, 일본의 강한 개입 아래 김홍집을 중심으로 한 군국기무처가 설치되어 개혁을 주도했다. 과거제를 폐지하고 능력 중심으로 관리를 뽑는 새 인사 제도를 도입했으며, 양반과 상민의 구분을 없애고 노비제와 신분 차별을 법적으로 폐지했다. 조혼을 금지하고 과부의 재가를 허용하는 등 사회 풍속도 개혁 대상에 포함되었다. 재정 업무를 탁지아문으로 일원화하고 도량형을 통일하는 등 근대적 국가 운영 체계도 갖춰나갔다. 이 개혁은 조선 사회의 오랜 신분 질서를 법적으로 허무는 획기적인 조치였지만, 일본의 조선 침탈 의도와 맞물려 추진되었다는 근본적인 한계도 함께 지녔다.

교역로 1개

희망봉 항로1500 – 1900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오간 것후추와 면직물, 그리고 나중엔 차와 아편. 지중해를 거치지 않는 길이 베네치아와 오스만을 밀어냈다.
거점리스본 · 카나리아 · 희망봉 · 모잠비크 · 고아 · 말라카

아드와 전투

전쟁 · 1896 · 아프리카가 유럽을 이긴 날

이탈리아가 조약 문구를 자기들 유리하게 해석해 보호령을 주장하자 메넬리크가 거부했다. 에티오피아가 이겼다. 아프리카가 유럽 군대를 정면에서 꺾은 드문 예이고, 그래서 에티오피아만 식민 지배를 면했다. 이 소식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민족운동에 크게 울렸다.

【그때 그 자리】 1896년 3월 1일이다. 에티오피아 북부 아드와다.

그 무렵 아프리카는 거의 다 나뉘어 있었다. 1884년 베를린 회의로 유럽 열강이 대륙을 갈랐다.

이탈리아는 뒤늦게 뛰어들었다. 에리트레아를 차지하고 에티오피아를 노렸다.

【왜 그렇게 됐나】 1889년 우찰레 조약을 맺었다.

그런데 조약문의 암하라어본과 이탈리아어본이 달랐다.

17조가 문제였다. 암하라어본은 「에티오피아가 대외 문제에서 이탈리아를 통할 수 있다」이고, 이탈리아어본은 「통해야 한다」였다.

이탈리아가 그것을 근거로 보호국을 선포하고 열강에 통보했다.

메넬리크 2세가 조약을 파기했다.

그리고 무기를 샀다. 프랑스와 러시아에서 소총 수만 정과 포를 들여왔다. 이탈리아가 준 것도 있었다.

동시에 지방 세력들을 결집시켰다. 오래 갈려 있던 지역 영주들이 이번에는 함께 왔다.

황후 타이투 베툴이 강경론을 이끌었다.

【어떻게 흘렀나】 이탈리아군 1만 8천이 진격했다.

에티오피아군은 10만 이상이었다. 이탈리아는 그 규모를 몰랐다.

그리고 지도가 잘못돼 있었다. 세 부대가 밤에 각각 다른 봉우리로 향했는데, 이름이 같은 산이 두 개 있었다.

새벽에 부대들이 서로 떨어져 고립됐다.

에티오피아군이 하나씩 포위해 쳤다.

하루 만에 끝났다. 이탈리아군 6천이 죽고 4천이 포로가 됐다.

유럽 군대가 아프리카에서 당한 가장 큰 패배다.

【그래서】 이탈리아가 독립을 인정했다.

총리 크리스피가 사임했다. 로마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에티오피아가 아프리카에서 식민지가 되지 않은 나라로 남았다. 라이베리아와 함께 둘뿐이다.

【남은 것】 이 승리가 널리 알려졌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카리브해의 지식인들에게 상징이 됐다. 범아프리카주의의 근거가 됐다.

「에티오피아」라는 이름이 자유의 다른 이름으로 쓰였다.

아프리카연합 본부가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것이 이 역사와 이어져 있다.

1935년 무솔리니가 다시 쳐들어왔다. 이번에는 독가스를 썼고 국제연맹이 막지 못했다.

5년 점령됐다가 1941년 해방됐다. 식민지로 편입된 적은 없다는 것이 에티오피아의 서술이다.

3월 1일이 지금도 국경일이다.

지도에서 보기: 188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필리핀 혁명 청일전쟁 동학농민운동 옴두르만 전투 스페인-미국 전쟁 보어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