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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해양 민족의 이동과 함께 여러 왕국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봉건으로 나눠 준 제후들이 점차 왕실 말을 듣지 않았다. 서쪽 견융의 압박은 계속 커졌다.
결과유왕이 견융에게 죽고 왕실이 동쪽 낙읍으로 옮겼다. 이때부터 주 왕은 이름만 남고 춘추시대가 시작된다.
해당 없음
해당 없음
전쟁 · BC 1042 · 봉화로 장난친 왕
봉건으로 나눠 준 제후들이 점차 왕실 말을 듣지 않았다. 서쪽 견융의 압박은 계속 커졌다. 유왕이 견융에게 죽고 왕실이 동쪽 낙읍으로 옮겼다. 이때부터 주 왕은 이름만 남고 춘추시대가 시작된다.
【그때 그 자리】 BC 11세기다. 주(周)가 상(商)을 무너뜨렸다.
무왕이 목야에서 이겼다. 상의 마지막 왕 주(紂)가 스스로 불에 뛰어들었다.
주가 내건 논리가 「천명(天命)」이다. 하늘이 덕 있는 자에게 명을 준다는 것이다.
덕을 잃으면 명이 옮겨 간다. 왕조 교체를 정당화하는 논리인데, 동시에 왕을 구속하는 논리이기도 했다.
【왜 그렇게 됐나】 땅이 너무 넓었다. 직접 다스릴 수 없었다.
봉건을 했다. 왕실 친척과 공신에게 땅을 나눠 주고 제후로 삼았다.
제후는 왕에게 조공하고 군대를 내며, 자기 땅은 자기가 다스렸다.
혈연으로 묶었다. 종법(宗法)이다. 큰아들이 대를 잇고 나머지는 갈라져 나가되, 뿌리를 함께 모신다.
처음 몇 대는 작동했다. 성왕과 강왕 때가 전성기다.
그리고 동이·회이·견융을 계속 쳤다. 밖으로 나가는 원정이 제후들을 묶어 두는 방법이기도 했다.
【어떻게 흘렀나】 세대가 지나며 혈연이 멀어졌다.
제후에게 왕은 조상이 같은 먼 친척일 뿐이 됐다. 자기 땅에 대한 권리는 대대로 굳어졌다.
여왕(厲王) 때 백성이 들고일어나 왕을 쫓아냈다. 14년 동안 왕 없이 대신들이 다스렸다 — 「공화(共和)」다.
BC 841년이 그 시작인데, 중국사에서 연대가 확실한 첫 해다.
「공화국」이라는 말이 여기서 왔다.
【그래서】 마지막이 유왕(幽王)이다.
총애하던 포사가 웃지 않았다. 봉화를 올리자 제후들이 군대를 끌고 달려왔고, 헛걸음한 것을 보고 포사가 웃었다.
왕이 그것을 되풀이했다. 진짜 견융이 쳐들어왔을 때 아무도 오지 않았다.
BC 771년 호경이 함락되고 왕이 죽었다.
이야기 자체는 뒤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봉화 체계가 그때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실제 원인은 유왕이 태자를 폐하고 포사의 아들을 세운 것이다. 폐위된 태자의 외가인 신후가 견융을 끌어들였다.
【남은 것】 다음 해 수도를 동쪽 낙읍으로 옮겼다. 동주다.
왕실의 권위가 사라졌다. 이름만 남고 제후들이 실권을 쥐었다.
춘추시대가 여기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공자가 나온다 — 그가 되돌리려 한 것이 바로 이 서주의 질서였다.
지도에서 보기: BC 15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목야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