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마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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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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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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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서로마의 붕괴

제국이 동서로 갈라진 뒤 서쪽은 게르만 이동을 감당하지 못했다. 황제는 게르만 출신 장군의 허수아비가 됐고 속주가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한반도

삼국의 각축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전쟁 1건

서로마 멸망472 – 476
게르만 용병 (오도아케르) vs 서로마 조정

이미 군대의 대부분이 게르만 용병이었다. 이들이 요구한 이탈리아 토지 분배를 조정이 거부하자 오도아케르가 군을 돌렸다.

라벤나 476

결과마지막 황제가 폐위됐다. 지도에서 서쪽 절반의 색이 사라진다.

며칠 · 마지막 황제 폐위로 끝났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3명

조충지과학480 · 남조의 수학자
429 – 500

소수점 일곱 자리의 원주율

  • 원주율을 소수 7자리까지 계산
  • 밀률(355/113) 제시
  • 대명력 편찬
아틸라장군450 · 훈족 왕
406 – 453

갈리아까지 밀고 들어와 로마를 떨게 했다. 그가 급사하자 훈 제국은 곧 흩어졌다.

  • 동로마에서 막대한 공물을 받아냄
  • 갈리아까지 진격
  • 이탈리아 침공 직후 급사
클로비스정치496 · 프랑스를 시작한 사람
AD 466 – AD 511

열다섯에 작은 부족의 왕이 되어 갈리아를 통합했다. 다른 게르만 왕들이 아리우스파를 택할 때 홀로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 수아송·톨비아크·부이예에서 승리
  • 가톨릭 개종 — 로마계 주민을 편으로
  • 살리카 법전 편찬

그 무렵의 사건

455
반달족의 로마 약탈
카르타고에서 건너온 반달족이 2주 동안 로마를 털었다. 「반달리즘」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게르만계 반달족은 갈리아와 히스파니아를 거쳐 429년 북아프리카로 건너가 카르타고에 왕국을 세우고 지중해 해적이 됐다. 가이세리크 왕은 황제가 살해된 틈에 함대를 이끌고 테베레강을 올라왔다. 교황 레오 1세가 살인과 방화만은 막았으나 판테온의 청동 지붕과 예루살렘 신전의 보물, 황후와 공주들까지 실려 갔다. 534년 벨리사리우스가 왕국을 멸망시켰다.
512
신라, 우산국 복속
이사부가 울릉도와 독도를 아우르던 우산국을 신라에 편입시켰다. 독도가 한국사에 들어온 첫 기록이다.
flag
427
나란다 대학
승려 1만 명이 배우던 곳. 도서관이 몇 달을 탔다.
교사 2천 명과 학생 1만 명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티베트·한국·동남아시아에서 유학이 왔다. 신라의 혜초도 인도를 다녀와 왕오천축국전을 남겼다. 1197년 침입으로 불탔고 도서관이 몇 달을 탔다고 전한다.
527
신라 법흥왕의 불교 공인
신라 법흥왕은 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불교를 나라의 공인 종교로 삼았다. 이차돈의 순교가 이를 가능케 한 계기로 전한다.
신라 왕실은 왕권 강화를 위해 불교를 받아들이려 했지만, 토착 신앙을 지지하는 귀족들의 반발이 거셌다. 젊은 신하 이차돈은 자신을 처형하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 예언했는데, 실제로 목을 베자 흰 피가 솟구치고 하늘이 어두워졌다는 설화가 전한다(527년). 이 사건을 계기로 귀족들의 반대가 누그러지며 불교가 공인됐다. 법흥왕은 이어 율령을 반포하고 관등제를 정비하는 등 신라를 고대 국가 체제로 끌어올렸다.
410
로마 약탈
알라리크의 서고트족이 800년 만에 로마를 점령해 사흘 동안 약탈했다.
발칸에서 굶주리던 서고트족은 이탈리아로 내려와 세 차례 로마를 포위했고, 8월 24일 밤 살라리아 문이 열렸다. 대규모 학살은 없었지만 「영원한 도시」가 무너졌다는 충격은 제국 전체를 흔들었다. 히에로니무스는 베들레헴에서 「온 세계를 사로잡은 도시가 사로잡혔다」고 썼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사건에 답하려 「신국론」을 썼다.
534
유스티니아누스 법전
천 년의 로마법을 하나로 정리한 「로마법 대전」. 유럽 대륙법의 뿌리가 됐다.
황제는 법학자 트리보니아누스에게 흩어진 칙령과 학설을 정리하게 했다. 칙법전·학설휘찬·법학제요가 잇달아 완성됐고 모순된 조문은 폐기됐다. 서유럽에서는 잊혔다가 11세기 볼로냐에서 재발견되어 대학 법학의 교과서가 됐고, 나폴레옹 법전을 거쳐 한국 민법에까지 그 구조가 이어진다.

교역로 4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서로마 멸망

전쟁 · 472 · 아무도 끝났다고 느끼지 못한 해

이미 군대의 대부분이 게르만 용병이었다. 이들이 요구한 이탈리아 토지 분배를 조정이 거부하자 오도아케르가 군을 돌렸다. 마지막 황제가 폐위됐다. 지도에서 서쪽 절반의 색이 사라진다.

【그때 그 자리】 476년 9월 4일이다. 게르만 용병대장 오도아케르가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했다.

그 황제는 열여섯 살이었다. 아버지 오레스테스가 세운 허수아비였다.

이름이 공교롭다. 로마의 건국자와 첫 황제의 이름을 함께 가졌다. 「아우구스툴루스」는 「꼬마 아우구스투스」라는 조롱조의 별명이다.

【왜 그렇게 됐나】 이미 오래전에 실질이 없었다.

5세기 서로마 황제들은 대부분 장군이 세우고 장군이 죽였다. 마지막 50년 동안 아홉 명이 바뀌었다.

군대는 대부분 게르만 용병이었다. 그들이 이탈리아 땅의 3분의 1을 요구했는데 오레스테스가 거절했다.

오도아케르가 그 요구를 들어주겠다며 병사들의 지지를 얻었다.

【어떻게 흘렀나】 오도아케르가 한 일이 흥미롭다.

스스로 황제를 칭하지 않았다. 대신 황제의 휘장을 콘스탄티노플로 보냈다.

그리고 동로마 황제 제논에게 전했다. 「서쪽에는 따로 황제가 필요 없습니다. 폐하 한 분이면 됩니다. 저를 이탈리아 총독으로 임명해 주십시오.」

제국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로 합쳐진 것이라는 형식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이것은 왕조 교체 정도로 보였다. 원로원이 그대로 있었고, 집정관이 계속 임명됐고, 세금이 걷혔다.

「476년에 로마가 멸망했다」는 서술은 훨씬 뒤에 만들어졌다. 6세기 역사가들이 정리한 것이다.

【그래서】 그 뒤 13년 만에 동고트의 테오도리쿠스가 와서 오도아케르를 죽였다.

연회에서 화해하기로 한 자리에서 직접 베었다.

테오도리쿠스가 33년 동안 이탈리아를 다스렸다. 로마 제도를 그대로 두고 원로원을 유지했다.

이 시기가 오히려 안정적이었다는 평가가 있다.

【남은 것】 진짜 파괴는 그다음이다.

유스티니아누스가 「로마 회복」을 내걸고 쳐들어왔다. 20년 전쟁으로 이탈리아가 폐허가 됐다.

로마시 인구가 수십만에서 3만 이하로 떨어졌다. 수도교가 끊기고 원로원이 사라졌다.

로마를 되찾겠다는 전쟁이 로마의 도시 생활을 끝냈다.

동쪽은 계속됐다. 스스로를 「로마인」이라 부르며 1453년까지 977년을 더 갔다.

「비잔티움 제국」이라는 이름은 16세기 서유럽 학자가 붙인 것이다. 그들 자신은 한 번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지도에서 보기: 4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클로비스의 갈리아 통일 훈족의 침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