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 로마-사산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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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전제군주정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제국을 넷으로 나눠 통치했고 콘스탄티누스가 다시 합쳤다. 수도가 동쪽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겨가고, 박해받던 기독교가 국교가 되어간다.

한반도

삼국의 각축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전쟁 1건

4세기 로마-사산 전쟁337 – 363
로마 vs 사산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북부와 아르메니아를 두고 두 제국이 반복해 부딪쳤다.

니시비스 공방 350아미다 359크테시폰 원정 363

결과율리아누스 황제가 원정 중 전사하면서 로마는 굴욕적 강화로 다섯 속주를 넘겼다. 두 제국의 소모전은 결국 300년 뒤 아랍의 등장에 길을 열어준다.

26년 · 소모전의 시작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3명

에자나정치330 · 악숨을 기독교 나라로 만든 왕
320 무렵 – 360 무렵

로마와 페르시아와 함께 당대 4대 강국으로 꼽히던 나라다. 홍해 무역을 쥐었고, 로마보다 앞서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축에 든다.

  • 기독교 공인
  • 자체 화폐를 찍은 아프리카 최초의 나라
  • 오벨리스크 — 한 덩이 돌로 24미터
콘스탄티누스정치313 · 로마 황제
272 – 337

기독교를 공인하고 수도를 동쪽으로 옮겼다. 제국의 무게 중심이 바뀌었다.

  •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 공인
  • 니케아 공의회 소집
  • 콘스탄티노폴리스 건설
율리아누스정치361 · 시계를 되돌리려 한 황제
AD 331 – AD 363

기독교 황실에서 자랐으나 그리스 철학에 빠져 옛 신들로 돌아가려 했다. 2년 만에 페르시아 원정 중 창에 찔려 죽었다.

  • 이교 부흥 시도 — 실패로 끝남
  • 기독교인의 교직을 금함
  • 마지막 말 「갈릴리인이여, 그대가 이겼다」는 후대의 각색

그 무렵의 사건

330
콘스탄티노폴리스
제국의 중심이 동쪽으로 옮겨갔다. 이 도시는 1123년을 더 버틴다.
제국의 무게 중심이 동쪽으로 옮겨갔다. 이 도시는 1,123년을 더 버틴다.
325
니케아 공의회
콘스탄티누스가 소집한 첫 세계 공의회. 예수가 신과 「동일 본질」이라는 신조가 정해졌다.
아리우스는 아들이 아버지보다 낮다고 했고 알렉산드리아 주교들은 반대했다. 황제는 제국의 통일을 위해 300여 명의 주교를 니케아에 모아 결론을 강요했다. 여기서 나온 니케아 신조는 지금도 대부분의 교회가 외우고, 부활절 날짜도 이때 정해졌다. 종교 문제를 황제가 결정하는 선례가 함께 생겼다.
313
밀라노 칙령
기독교가 공인됐다. 박해받던 종교가 제국의 종교가 된다.
박해받던 종교가 공인됐고, 80년 뒤 국교가 된다.
372
고구려 불교 수용
소수림왕이 불교를 받아들이고 태학을 세웠다.
왕권 강화의 이념이 들어왔다. 백제·신라가 뒤이어 받아들인다.
372
소수림왕의 체제 정비
고구려 소수림왕은 불교를 받아들이고 율령을 반포하며 태학을 세워, 이전보다 훨씬 체계적인 국가 체제를 갖췄다.
직전 고국원왕이 백제와의 전투에서 전사하는 위기를 겪은 뒤 왕위에 오른 소수림왕은, 372년 중국 전진에서 불교를 들여와 왕실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사상적 기반으로 삼고, 국가 최고 교육기관인 태학을 세워 인재를 길렀으며, 나라를 다스리는 법 체계인 율령을 반포해 왕권 아래 통치 질서를 확립했다. 이 정비를 바탕으로 다음 대인 광개토대왕·장수왕 때 고구려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300
바누아투의 사람들
한 섬에 100개가 넘는 말이 있다.
작은 섬무리에 서로 통하지 않는 언어가 100가지 넘게 산다. 인구 대비 세계에서 가장 언어가 많은 곳이다. 산과 바다가 마을을 갈라놓았고, 각 마을이 오래 따로 살았다는 뜻이다. 로이 마타의 무덤에는 마흔 명이 함께 묻혀 있었다.

교역로 4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4세기 로마-사산 전쟁

전쟁 · 337 · 황제가 사막에서 죽고 다섯 속주를 내주다

메소포타미아 북부와 아르메니아를 두고 두 제국이 반복해 부딪쳤다. 율리아누스 황제가 원정 중 전사하면서 로마는 굴욕적 강화로 다섯 속주를 넘겼다. 두 제국의 소모전은 결국 300년 뒤 아랍의 등장에 길을 열어준다.

【그때 그 자리】 4세기 사산조의 왕 샤푸르 2세는 태어나기 전에 왕이 됐다.

선왕이 죽고 왕비가 임신 중이었는데, 귀족들이 그 배 위에 왕관을 얹고 왕으로 선포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70년을 다스렸다. 역사상 가장 긴 치세 가운데 하나다.

로마는 콘스탄티누스가 죽은 뒤 그 아들들이 갈려 있었다.

【왜 그렇게 됐나】 다툰 땅은 메소포타미아 북부와 아르메니아였다.

여기에 종교가 겹쳤다.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되자, 사산조 안의 기독교인들이 적국의 편으로 의심받았다. 샤푸르 2세가 그들에게 세금을 두 배로 매기고 박해했다.

아르메니아가 301년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것도 판을 바꿨다. 두 제국 사이의 완충 왕국이 한쪽으로 기운 것이다.

【어떻게 흘렀나】 니시비스를 세 번 포위했다. 세 번 다 실패했다.

350년 포위 때는 강물을 끌어들여 성벽을 무너뜨렸는데, 그 진흙탕에 코끼리와 기병이 빠져 들어가지 못했다.

359년 아미다를 73일 만에 함락했다. 그 자리에 로마 장교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가 있었다. 살아 나와 기록을 남겼다 — 고대 후기 최고의 사료로 꼽힌다.

363년 율리아누스 황제가 대규모 원정에 나섰다. 6만이 넘는 병력으로 크테시폰 앞까지 갔다.

성을 함락하지 못했다. 보급선인 함선 1,000여 척을 스스로 불태웠다 — 되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이었는데, 결과적으로 퇴로를 없앤 셈이 됐다.

물러나는 길에 소규모 접전 중 창에 찔려 죽었다. 갑옷을 입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급히 뽑힌 요비아누스가 굴욕적인 강화를 맺었다.

국경 다섯 지역과 니시비스를 넘겼다. 세 번의 포위를 견뎌 낸 도시를 싸움 없이 내준 것이다.

주민들에게 도시를 떠날 시간만 주었다. 암미아누스가 그 장면을 적었다 — 사람들이 울면서 조상의 집을 떠났다.

【남은 것】 로마의 동방 국경이 뒤로 밀렸다. 그 선이 그 뒤 오래 유지된다.

율리아누스가 죽으며 옛 신들을 되살리려던 시도도 끝났다. 이 원정의 실패가 로마의 기독교화를 되돌릴 수 없게 만들었다는 평가가 있다.

두 제국의 소모전은 계속됐다. 300년 뒤 아랍군이 왔을 때, 둘 다 서로를 상대하느라 지쳐 있었다.

지도에서 보기: 3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콘스탄티누스의 내전 아드리아노플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