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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제국을 넷으로 나눠 통치했고 콘스탄티누스가 다시 합쳤다. 수도가 동쪽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겨가고, 박해받던 기독교가 국교가 되어간다.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왜메소포타미아 북부와 아르메니아를 두고 두 제국이 반복해 부딪쳤다.
결과율리아누스 황제가 원정 중 전사하면서 로마는 굴욕적 강화로 다섯 속주를 넘겼다. 두 제국의 소모전은 결국 300년 뒤 아랍의 등장에 길을 열어준다.
로마와 페르시아와 함께 당대 4대 강국으로 꼽히던 나라다. 홍해 무역을 쥐었고, 로마보다 앞서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축에 든다.
기독교를 공인하고 수도를 동쪽으로 옮겼다. 제국의 무게 중심이 바뀌었다.
기독교 황실에서 자랐으나 그리스 철학에 빠져 옛 신들로 돌아가려 했다. 2년 만에 페르시아 원정 중 창에 찔려 죽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전쟁 · 337 · 황제가 사막에서 죽고 다섯 속주를 내주다
메소포타미아 북부와 아르메니아를 두고 두 제국이 반복해 부딪쳤다. 율리아누스 황제가 원정 중 전사하면서 로마는 굴욕적 강화로 다섯 속주를 넘겼다. 두 제국의 소모전은 결국 300년 뒤 아랍의 등장에 길을 열어준다.
【그때 그 자리】 4세기 사산조의 왕 샤푸르 2세는 태어나기 전에 왕이 됐다.
선왕이 죽고 왕비가 임신 중이었는데, 귀족들이 그 배 위에 왕관을 얹고 왕으로 선포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70년을 다스렸다. 역사상 가장 긴 치세 가운데 하나다.
로마는 콘스탄티누스가 죽은 뒤 그 아들들이 갈려 있었다.
【왜 그렇게 됐나】 다툰 땅은 메소포타미아 북부와 아르메니아였다.
여기에 종교가 겹쳤다.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되자, 사산조 안의 기독교인들이 적국의 편으로 의심받았다. 샤푸르 2세가 그들에게 세금을 두 배로 매기고 박해했다.
아르메니아가 301년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것도 판을 바꿨다. 두 제국 사이의 완충 왕국이 한쪽으로 기운 것이다.
【어떻게 흘렀나】 니시비스를 세 번 포위했다. 세 번 다 실패했다.
350년 포위 때는 강물을 끌어들여 성벽을 무너뜨렸는데, 그 진흙탕에 코끼리와 기병이 빠져 들어가지 못했다.
359년 아미다를 73일 만에 함락했다. 그 자리에 로마 장교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가 있었다. 살아 나와 기록을 남겼다 — 고대 후기 최고의 사료로 꼽힌다.
363년 율리아누스 황제가 대규모 원정에 나섰다. 6만이 넘는 병력으로 크테시폰 앞까지 갔다.
성을 함락하지 못했다. 보급선인 함선 1,000여 척을 스스로 불태웠다 — 되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이었는데, 결과적으로 퇴로를 없앤 셈이 됐다.
물러나는 길에 소규모 접전 중 창에 찔려 죽었다. 갑옷을 입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급히 뽑힌 요비아누스가 굴욕적인 강화를 맺었다.
국경 다섯 지역과 니시비스를 넘겼다. 세 번의 포위를 견뎌 낸 도시를 싸움 없이 내준 것이다.
주민들에게 도시를 떠날 시간만 주었다. 암미아누스가 그 장면을 적었다 — 사람들이 울면서 조상의 집을 떠났다.
【남은 것】 로마의 동방 국경이 뒤로 밀렸다. 그 선이 그 뒤 오래 유지된다.
율리아누스가 죽으며 옛 신들을 되살리려던 시도도 끝났다. 이 원정의 실패가 로마의 기독교화를 되돌릴 수 없게 만들었다는 평가가 있다.
두 제국의 소모전은 계속됐다. 300년 뒤 아랍군이 왔을 때, 둘 다 서로를 상대하느라 지쳐 있었다.
지도에서 보기: 3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콘스탄티누스의 내전 아드리아노플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