힉소스 축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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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제국들

히타이트·이집트 신왕국·바빌로니아가 사신과 군대를 주고받았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1건

힉소스 축출BC 1550 – BC 1500
이집트 테베 vs 힉소스

100년의 이민족 지배를 끝내려 상이집트의 테베가 일어섰다. 힉소스가 들여온 전차를 그대로 배워서 썼다.

아바리스 함락샤루헨 공성

결과아흐모세 1세가 이집트를 재통일하고 신왕국을 열었다. 이후 이집트는 방어가 아니라 선제 공격을 국방으로 삼는다.

50년 · 신왕국의 출발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1명

아흐모세 1세장군BC 1550 · 이민족 지배를 끝낸 파라오
BC 1550 – BC 1525 재위

형이 전사한 뒤를 이어 힉소스를 몰아냈다. 적에게 배운 전차로 적을 이겼다.

  • 힉소스 축출과 이집트 재통일
  • 신왕국을 염 — 이집트 최전성기의 출발
  • 누비아까지 남진해 금광을 확보

그 무렵의 사건

BC 1550
신왕국의 시작
힉소스에게 배운 전차로 힉소스를 몰아냈다.
아흐모세 1세가 이민족 지배를 끝내고 이집트를 다시 통일했다. 이후 이집트는 방어에서 공세로 돌아서 시리아까지 진출한다. 왕들은 도굴을 피해 피라미드 대신 왕가의 계곡에 숨어 묻혔다.
BC 1600
테라 대분화
화산이 섬을 날리고 미노아를 흔들었다.
산토리니 화산이 폭발해 섬 한가운데가 사라졌다. 화산재와 쓰나미가 크레타를 덮쳤고 미노아 문명은 회복하지 못한 채 미케네에 넘어갔다. 아틀란티스 전설의 원형으로 자주 지목된다.
BC 1600
갑골문
거북 배딱지에 새긴 점괘가 한자의 조상이 됐다.
상나라 왕은 사냥·전쟁·비·왕비의 출산까지 점을 쳐 물었고, 그 문답을 뼈에 새겼다. 19세기 말 약재로 팔리던 「용골」에서 글자가 발견되면서 상나라가 전설이 아님이 증명됐다.
BC 1500
청동기가 들어오다 — 무문토기
민무늬 토기와 함께 벼농사와 청동기가 퍼졌다. 고인돌이 이때 세워진다. 잉여가 쌓이고 우두머리가 생기면서 나라의 꼴이 잡히기 시작했다.
tool
BC 1500
베다와 카스트
제사를 독점한 자가 맨 위에 섰다.
인도유럽어를 쓰는 집단이 들어와 갠지스로 퍼졌다. 제사를 독점한 브라만을 정점으로 신분이 굳어졌다. 이 질서에 근거가 없다고 본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중 둘이 부처와 마하비라다.

교역로

해당 없음

힉소스 축출

전쟁 · BC 1550 · 빼앗긴 무기로 되찾다

100년의 이민족 지배를 끝내려 상이집트의 테베가 일어섰다. 힉소스가 들여온 전차를 그대로 배워서 썼다. 아흐모세 1세가 이집트를 재통일하고 신왕국을 열었다. 이후 이집트는 방어가 아니라 선제 공격을 국방으로 삼는다.

【그때 그 자리】 BC 17~16세기다. 이집트 북부, 나일 삼각주를 힉소스가 다스렸다.

「힉소스」는 이집트어 「헤카 카수트 — 이방 땅의 통치자들」에서 왔다. 서아시아 계통이다.

수도는 아바리스였다. 남쪽 테베에 이집트인 왕조가 남아 조공을 바치며 버텼다.

【왜 그렇게 됐나】 힉소스가 가져온 것이 있었다. 말이 끄는 전차, 합성궁, 청동 무기, 그리고 더 튼튼한 성벽 축조법이다.

이집트에 없던 것들이다. 그래서 100년 넘게 밀렸다.

테베의 왕 세케넨레 타오가 먼저 일어섰다.

그 미라가 남아 있다. 머리에 도끼와 창과 곤봉에 맞은 상처가 다섯 군데 있다. 뒤에서 여러 명에게 당한 것으로 본다.

아들 카모세가 이었다. 신하들이 「지금 잘 지내고 있는데 왜 싸우느냐」며 말리자 이렇게 답했다고 비석에 적혀 있다.

「내가 어찌 아시아인과 함께 이 땅을 나눠 앉아 있겠는가.」

그도 곧 죽었다.

【어떻게 흘렀나】 어린 아흐모세 1세가 이었다. 어머니 아흐호테프가 군을 유지하며 버텼다.

자라서 북진해 아바리스를 함락했다.

그 전쟁의 기록이 왕이 아니라 병사의 무덤에 남아 있다. 「아흐모세 아들 아바나」라는 수병의 무덤 벽이다.

전투마다 자기가 벤 손을 몇 개 가져왔고, 그 대가로 금 목걸이와 노예를 받았다고 적었다.

이집트군은 잘린 손을 세어 전공을 계산했다.

함락 뒤 시나이를 건너 팔레스타인의 샤루헨까지 3년을 쫓아가 뿌리를 뽑았다.

【그래서】 신왕국이 열렸다. 18왕조다.

달라진 것이 있다. 그 뒤 이집트는 국경 안에 머물지 않았다. 위협은 미리 밖에서 친다는 쪽으로 갔다.

힉소스에게 배운 전차와 합성궁을 그대로 썼다. 100년 뒤 투트모세 3세가 그 군대로 유프라테스까지 간다.

【남은 것】 힉소스 서술은 승자가 쓴 것이라 과장이 있다.

아바리스(텔 엘다바) 발굴을 보면 그들은 이집트 신을 섬기고 이집트 문자를 쓰며 상당히 동화돼 있었다.

갑작스러운 침략이 아니라 오랜 이주 끝의 지배였다는 견해가 지금은 유력하다.

이집트가 「이방인에게 지배당한 기억」을 처음 갖게 된 사건이라는 점이 오래 남았다.

지도에서 보기: BC 20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