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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히타이트·이집트 신왕국·바빌로니아가 사신과 군대를 주고받았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100년의 이민족 지배를 끝내려 상이집트의 테베가 일어섰다. 힉소스가 들여온 전차를 그대로 배워서 썼다.
결과아흐모세 1세가 이집트를 재통일하고 신왕국을 열었다. 이후 이집트는 방어가 아니라 선제 공격을 국방으로 삼는다.
형이 전사한 뒤를 이어 힉소스를 몰아냈다. 적에게 배운 전차로 적을 이겼다.
해당 없음
전쟁 · BC 1550 · 빼앗긴 무기로 되찾다
100년의 이민족 지배를 끝내려 상이집트의 테베가 일어섰다. 힉소스가 들여온 전차를 그대로 배워서 썼다. 아흐모세 1세가 이집트를 재통일하고 신왕국을 열었다. 이후 이집트는 방어가 아니라 선제 공격을 국방으로 삼는다.
【그때 그 자리】 BC 17~16세기다. 이집트 북부, 나일 삼각주를 힉소스가 다스렸다.
「힉소스」는 이집트어 「헤카 카수트 — 이방 땅의 통치자들」에서 왔다. 서아시아 계통이다.
수도는 아바리스였다. 남쪽 테베에 이집트인 왕조가 남아 조공을 바치며 버텼다.
【왜 그렇게 됐나】 힉소스가 가져온 것이 있었다. 말이 끄는 전차, 합성궁, 청동 무기, 그리고 더 튼튼한 성벽 축조법이다.
이집트에 없던 것들이다. 그래서 100년 넘게 밀렸다.
테베의 왕 세케넨레 타오가 먼저 일어섰다.
그 미라가 남아 있다. 머리에 도끼와 창과 곤봉에 맞은 상처가 다섯 군데 있다. 뒤에서 여러 명에게 당한 것으로 본다.
아들 카모세가 이었다. 신하들이 「지금 잘 지내고 있는데 왜 싸우느냐」며 말리자 이렇게 답했다고 비석에 적혀 있다.
「내가 어찌 아시아인과 함께 이 땅을 나눠 앉아 있겠는가.」
그도 곧 죽었다.
【어떻게 흘렀나】 어린 아흐모세 1세가 이었다. 어머니 아흐호테프가 군을 유지하며 버텼다.
자라서 북진해 아바리스를 함락했다.
그 전쟁의 기록이 왕이 아니라 병사의 무덤에 남아 있다. 「아흐모세 아들 아바나」라는 수병의 무덤 벽이다.
전투마다 자기가 벤 손을 몇 개 가져왔고, 그 대가로 금 목걸이와 노예를 받았다고 적었다.
이집트군은 잘린 손을 세어 전공을 계산했다.
함락 뒤 시나이를 건너 팔레스타인의 샤루헨까지 3년을 쫓아가 뿌리를 뽑았다.
【그래서】 신왕국이 열렸다. 18왕조다.
달라진 것이 있다. 그 뒤 이집트는 국경 안에 머물지 않았다. 위협은 미리 밖에서 친다는 쪽으로 갔다.
힉소스에게 배운 전차와 합성궁을 그대로 썼다. 100년 뒤 투트모세 3세가 그 군대로 유프라테스까지 간다.
【남은 것】 힉소스 서술은 승자가 쓴 것이라 과장이 있다.
아바리스(텔 엘다바) 발굴을 보면 그들은 이집트 신을 섬기고 이집트 문자를 쓰며 상당히 동화돼 있었다.
갑작스러운 침략이 아니라 오랜 이주 끝의 지배였다는 견해가 지금은 유력하다.
이집트가 「이방인에게 지배당한 기억」을 처음 갖게 된 사건이라는 점이 오래 남았다.
지도에서 보기: BC 20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