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폰네소스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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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고전기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을 제국으로 바꿨고 스파르타가 이를 꺾었다. 도시국가들이 서로를 소모시키는 사이 북쪽 변방의 마케도니아가 그리스 전체를 장악했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1건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 – BC 404
아테네 델로스 동맹 vs 스파르타 펠로폰네소스 동맹

페르시아를 막으려 만든 델로스 동맹을 아테네가 사실상 제국으로 바꿔버렸다. 아테네의 팽창을 스파르타가 더는 견디지 못했다.

시라쿠사 원정 BC 415–413아이고스포타미 BC 405

결과27년을 싸운 끝에 아테네가 항복했다. 그리스 도시국가 체제가 스스로를 소모시켰다.

27년 · 개전 직후 역병으로 아테네 인구 3분의 1 사망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3명

묵자사상BC 430 · 겸애와 비공(非攻)을 외친 반전 사상가
BC 470 무렵 – BC 390 무렵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하라, 침략 전쟁을 하지 말라. 유가와 맞선 그의 학파는 방어 기술까지 갖춘 실천 집단이었다.

  • 겸애(兼愛) — 차별 없는 사랑
  • 비공(非攻) — 침략 전쟁 반대, 방어전 지원
  • 절용·절장 — 사치와 후장 비판
헤로도토스사상BC 440 · 「역사」를 쓴 역사학의 아버지
BC 484 무렵 – BC 425 무렵

페르시아 전쟁을 기록하며 이집트와 스키타이까지 직접 다녔다. 신화가 아니라 조사(historia)로 과거를 설명한 첫 책이다.

  • 「역사」 9권 —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기록
  • 이집트·바빌론·흑해 답사
  • 구전과 견문을 비교·검증하는 서술법
페리클레스정치BC 450 · 아테네 지도자
BC 495 – BC 429

민회를 이끌며 아테네의 전성기를 열었다. 파르테논이 그의 시대에 섰다.

  • 델로스 동맹을 아테네 제국으로
  • 파르테논 신전 건설
  • 수당제로 가난한 시민도 정치에 참여

그 무렵의 사건

BC 399
소크라테스의 죽음
아테네가 철학자에게 독배를 내렸다.
제자 플라톤이 이 재판을 기록하며 서양 철학이 문서로 남기 시작했다.
BC 390
켈트족의 확산
갈리아의 켈트 전사 브렌누스가 로마를 약탈했다. 「패자에게 화 있으라」— 알프스 북쪽 유럽은 켈트의 땅이었다.
할슈타트와 라텐 문화로 알려진 켈트족은 BC 5세기부터 갈리아·브리타니아·이베리아·아나톨리아까지 퍼졌다. BC 390년 알리아에서 로마군을 깨고 도시를 점령해 금을 받고 물러났다. 저울에 칼을 던지며 한 말이 전한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과 로마화로 대륙의 켈트 언어는 사라졌고 아일랜드·웨일스·브르타뉴에만 남았다. 드루이드와 할로윈의 뿌리가 이들이다.
BC 490
마라톤 전투
아테네 중장보병이 페르시아 상륙군을 바다로 몰아냈다. 승전 소식을 전하러 달린 이야기가 마라톤이 됐다.
다리우스 1세가 이오니아 반란을 도운 아테네를 벌하려 보낸 원정군이 마라톤 평원에 상륙했다. 밀티아데스는 스파르타의 원군을 기다리지 않고 양익을 두텁게 한 대형으로 돌격했다. 그리스군 192명, 페르시아군 6,400명이 죽었다고 헤로도토스는 적었다. 페이디피데스가 아테네까지 달려 「이겼다」고 외치고 죽었다는 전설은 후대의 것이지만 1896년 첫 올림픽 마라톤이 여기서 나왔다.
BC 500
반투의 확산
쇠와 농사를 들고 대륙 절반으로 퍼졌다.
나이지리아·카메룬 경계에서 시작한 사람들이 2,000년에 걸쳐 남쪽과 동쪽 끝까지 갔다. 얌과 바나나와 철이 함께 움직였다. 오늘 아프리카 남반부의 언어 대부분이 이 한 갈래에서 나온다.
BC 500
북미의 흙무덤
오하이오 강가에 짐승 모양의 언덕이 있다.
아데나와 호프웰이 무덤과 의례를 위해 거대한 흙둔덕을 쌓았다. 뱀 모양 둔덕은 길이가 400미터가 넘는다. 멕시코만 조개와 로키산맥 흑요석이 함께 나와, 대륙을 가로지르는 교역망이 있었음을 알려 준다.

교역로 1개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펠로폰네소스 전쟁

전쟁 · BC 431 · 아테네 델로스 동맹 vs 스파르타 펠로폰네소스 동맹

페르시아를 막으려 만든 델로스 동맹을 아테네가 사실상 제국으로 바꿔버렸다. 아테네의 팽창을 스파르타가 더는 견디지 못했다. 27년을 싸운 끝에 아테네가 항복했다. 그리스 도시국가 체제가 스스로를 소모시켰다.

【그때 그 자리】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뒤 아테네는 다시 쳐들어올 것에 대비해 델로스 동맹을 만들었다. 회원 도시가 돈이나 배를 내고 아테네가 함대를 운영하는 구조였다.

그런데 위협이 사라진 뒤에도 동맹이 유지됐다. 기원전 454년 아테네가 동맹 금고를 델로스섬에서 아테네로 옮겼다. 그 돈으로 파르테논을 지었다. 탈퇴하려는 도시는 무력으로 막았다. 동맹이 제국이 된 것이다.

스파르타는 육군 국가로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이끌었다. 두 체제는 성격이 정반대였다. 아테네는 바다와 상업과 민주정, 스파르타는 육지와 농업과 과두정이었다.

【왜 그렇게 됐나】

투키디데스는 전쟁의 진짜 원인을 한 줄로 적었다. 아테네의 힘이 커지고 그것이 스파르타에 두려움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지금도 인용된다. 기존 강대국이 신흥 강대국의 부상에 두려움을 느낄 때 전쟁이 일어나기 쉽다는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여기서 나왔다.

【어떻게 흘렀나】

기원전 431년 시작됐다. 27년을 갔다.

페리클레스의 전략은 이랬다. 육지에서는 스파르타를 이길 수 없으니 성 안으로 들어가 버티고, 바다에서 공격한다. 아테네는 긴 성벽으로 항구까지 이어져 있어 배로 식량을 들일 수 있었다.

전략은 옳았는데 변수가 왔다. 기원전 430년 역병이 돌았다. 사람이 성 안에 빽빽이 모여 있어 더 빨리 퍼졌다. 인구의 4분의 1이 죽었고 페리클레스도 죽었다.

지도자를 잃은 아테네 민주정이 흔들렸다. 민회가 그때그때 여론에 휩쓸렸다. 기원전 415년 알키비아데스의 선동으로 시칠리아 원정을 결정했다. 전쟁과 직접 상관없는 곳에 함대와 병력을 보낸 것이다. 전멸했다. 배 200척과 병사 4만을 잃었다.

기원전 405년 아이고스포타미에서 함대가 마저 무너졌다. 스파르타는 페르시아에서 돈을 받아 함대를 만들었다. 그리스를 지키려 싸웠던 상대에게 돈을 빌린 것이다.

기원전 404년 아테네가 항복했다. 성벽이 헐리고 함대가 넘어갔다.

【그래서】

이긴 스파르타도 오래가지 못했다. 기원전 371년 테베에 패했다. 그리스 전체가 소모돼, 기원전 338년 북쪽의 마케데니아 필리포스 2세에게 한꺼번에 넘어갔다. 폴리스의 시대가 끝났다.

【남은 것】

투키디데스가 남긴 기록이 정치사의 고전이 됐다. 그는 아테네 장군이었다가 패전으로 추방된 사람이다. 신의 개입 없이 사람의 이해와 두려움으로 사건을 설명했다.

그가 옮긴 멜로스 대화가 특히 유명하다. 중립을 지키려는 작은 섬 멜로스에 아테네가 항복을 요구하며 말한다.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자는 당해야 할 것을 당한다. 멜로스는 거부했고 남자는 모두 죽고 여자와 아이는 노예가 됐다.

민주정이 스스로 무너질 수 있다는 사례로도 오래 인용된다. 아테네를 무너뜨린 결정들은 모두 시민이 투표로 정한 것이었다.

지도에서 보기: BC 5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코린토스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