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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히타이트·이집트 신왕국·바빌로니아가 사신과 군대를 주고받았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호메로스는 헬레네를 이유로 들지만, 흑해로 드나드는 다르다넬스 해협의 통행세가 실제 다툼거리였으리라 본다.
결과히사를리크 언덕 발굴에서 BC 1180년경 불탄 층이 나왔다. 신화가 통째로 사실은 아니어도 바탕이 된 파괴는 실재했다.
90세 넘게 살며 66년을 다스렸다. 아부심벨을 비롯해 이집트 전역에 자기 조각상을 세웠고, 선왕들의 조각에도 자기 이름을 덧새겼다.
해당 없음
전쟁 · BC 1250 · 신화인가 사실인가
호메로스는 헬레네를 이유로 들지만, 흑해로 드나드는 다르다넬스 해협의 통행세가 실제 다툼거리였으리라 본다. 히사를리크 언덕 발굴에서 BC 1180년경 불탄 층이 나왔다. 신화가 통째로 사실은 아니어도 바탕이 된 파괴는 실재했다.
【그때 그 자리】 「일리아스」는 이렇게 말한다.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 왕비 헬레네를 데려갔고, 그리스 연합군이 1,000척의 배로 쳐들어가 10년을 싸웠다.
목마를 두고 물러나는 척했다가 밤에 성을 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것을 실제 있었던 일로 여겼다. 헤로도토스도 투키디데스도 사실로 다뤘다.
【왜 그렇게 됐나】 근대 학자들은 신화로 보았다.
1870년대 하인리히 슐리만이 「일리아스」를 들고 터키 서북부 히사를리크 언덕을 팠다.
도시가 나왔다. 그것도 여러 층으로, 아홉 개가 겹쳐 있었다.
【어떻게 흘렀나】 문제는 어느 층이냐다.
슐리만이 「프리아모스의 보물」이라 부른 금붙이는 트로이 II 층에서 나왔는데, 전쟁 시기보다 1,000년 이르다. 그는 서둘러 위층을 파헤쳐 정작 관련 있는 층을 상당히 부수었다.
지금은 트로이 VI 또는 VIIa 층을 후보로 본다. BC 13~12세기다.
VIIa 층에서 화재의 흔적과 급조된 주거, 묻히지 못한 유골, 투석용 돌무더기가 나왔다. 포위와 함락의 정황이다.
그리고 히타이트 문서가 있다. 「윌루사」라는 도시와 「아히야와」라는 세력이 나온다.
윌루사가 그리스어 「일리오스」, 아히야와가 「아카이아」와 이어진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그 문서에 두 세력이 윌루사를 두고 다툰 기록이 있다.
【그래서】 지금의 통설은 이렇다. 청동기 말 이 지역에서 실제로 분쟁이 있었고, 여러 사건의 기억이 수백 년의 구전을 거치며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졌다.
헬레네가 원인이었는지는 다른 문제다. 트로이의 위치를 보면 짐작이 간다 — 다르다넬스 해협 입구다. 흑해로 드나드는 배가 반드시 지나는 곳이고, 바람과 해류 탓에 며칠씩 기다려야 했다.
통행세를 걷을 수 있는 자리였다.
【남은 것】 목마는 「일리아스」에 없다. 「오디세이아」에 짧게 언급되고 뒤의 작품들이 살을 붙였다.
공성 병기였다는 해석, 지진(포세이돈의 상징이 말이다)을 나타낸다는 해석이 있다.
슐리만이 가져간 「프리아모스의 보물」은 베를린에 있다가 2차 대전 때 사라졌고, 1993년 모스크바에 있는 것이 확인됐다. 지금도 반환 논쟁이 있다.
히사를리크는 199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지도에서 보기: BC 15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