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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도시와 문자가 나타났다. 관개 농업이 잉여를 만들고 신전과 왕궁이 그것을 관리했다.
빗살무늬토기와 간석기의 시대. 아직 국가라 부를 정치체가 없다.
왜키시의 아가가 우루크에 복속을 요구했다. 길가메시는 원로회의 화친론을 물리치고 청년회의 항전론을 택했다.
결과수메르 서사시에 남은 이 장면은 기록에 나타난 가장 오래된 「의회 표결」이기도 하다. 왕이 혼자 결정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해당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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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 BC 2700 · 기록에 남은 가장 오래된 전쟁
키시의 아가가 우루크에 복속을 요구했다. 길가메시는 원로회의 화친론을 물리치고 청년회의 항전론을 택했다. 수메르 서사시에 남은 이 장면은 기록에 나타난 가장 오래된 「의회 표결」이기도 하다. 왕이 혼자 결정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때 그 자리】 BC 27세기 무렵 수메르다. 도시국가들이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사이에 늘어서 있었다.
물이 전부였다. 상류의 도시가 수로를 막으면 하류의 밭이 마른다. 경계의 밭 한 뙈기를 두고 도시가 싸웠다.
키시가 북쪽, 우루크가 남쪽에 있었다. 키시의 왕 아가가 우루크에 사절을 보내 복속을 요구했다.
【왜 그렇게 됐나】 「길가메시와 아가」라는 수메르 서사시에 그 장면이 나온다.
우루크의 왕 길가메시가 원로 회의에 물었다. 원로들이 「굽히자」고 했다.
그가 받아들이지 않고 젊은 남자들의 회의에 다시 물었다. 그들이 「싸우자」고 했다.
이 대목이 자주 인용된다. 왕이 혼자 정하지 않고 두 회의에 물었다는 것 — 「원시 민주정」의 흔적으로 읽는 학자들이 있다. 다만 문학 작품이라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어떻게 흘렀나】 아가가 군대를 이끌고 와 우루크를 포위했다.
성벽 위에서 대치했다. 길가메시의 부하 비르히투라가 성 밖으로 나갔다가 붙잡혀 매를 맞았다.
그 뒤 우루크가 문을 열고 나가 이겼다. 아가를 사로잡았다.
그런데 길가메시가 그를 풀어 주었다. 옛날 자기가 키시에 몸을 의탁했던 은혜를 갚는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문자로 남은 전쟁 가운데 가장 이른 축에 든다.
이 시기의 다른 유물도 있다. 라가시와 움마가 「구에덴나」라는 밭을 두고 150년을 싸운 기록이 남아 있고, 「독수리 비석」에는 밀집 대형으로 창을 앞세운 보병이 새겨져 있다.
그 비석이 방진(팔랑크스)을 그린 가장 오래된 그림이다. 그리스보다 2,000년 앞선다.
【남은 것】 도시국가끼리의 싸움은 몇 백 년을 갔다. 그러다 BC 24세기 사르곤이 나타나 전부를 하나로 묶는다.
물을 두고 다투다 통합으로 가는 이 흐름이, 뒷날 여러 문명에서 반복된다.
우루크의 성벽은 길가메시가 쌓았다고 전한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마지막이 그 성벽을 보라는 말로 끝난다 — 영생을 얻지 못한 왕에게 남은 것이 그것이었다.
지도에서 보기: BC 30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