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론타프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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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봉건 유럽과 십자군

교황과 황제가 성직자 임명권을 두고 다퉜다. 성지 회복을 내건 원정이 시작되며 유럽이 처음으로 바깥을 향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한반도

고려 전기

호족 연합으로 선 왕조가 과거제와 관료제로 중앙집권을 다졌다. 거란·여진과 부딪히며 북방 경계를 지켰다.

전쟁 2건

바이킹 시대793 – 1066
노르드인 vs 유럽 각지

인구 압력과 흘수 얕은 롱십이 결합했다. 강을 거슬러 내륙까지 들이닥칠 수 있는 배가 결정적이었다.

린디스판 약탈 793파리 포위 885스탬퍼드 브리지 1066

결과약탈로 시작해 정착과 건국으로 끝났다. 노르망디·러시아·아이슬란드가 이들의 손에서 생겼고, 북아메리카에도 콜럼버스보다 500년 먼저 닿았다.

273년 · 유럽 지도를 다시 그렸다
클론타프 전투1014
아일랜드 상급왕 vs 렌스터·바이킹 연합

브라이언 보루가 아일랜드를 하나로 묶으려 하자 렌스터와 더블린 바이킹이 연합해 맞섰다.

클론타프 1014

결과브라이언이 이겼으나 천막에서 살해됐다. 아일랜드의 바이킹 지배는 끝났지만 통일도 함께 무산됐다.

하루 · 승리와 함께 잃은 통일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6명

강감찬장군1019 · 고려 장군
948 – 1031

귀주에서 거란의 10만 대군을 거의 전멸시켰다. 이후 백 년의 평화가 왔다.

  • 흥화진에서 거란군에 타격
  • 귀주대첩 1019
  • 개경 나성 축조를 건의
무라사키 시키부예술1008 · 겐지 이야기를 쓴 사람
973 무렵 – 1014 무렵

궁정 여성으로 한자가 아니라 히라가나로 썼다. 남자들이 한문을 쓰는 동안 여성이 자기 말로 문학을 만들었다. 세계 최초의 장편소설로 꼽히기도 한다.

  • 겐지 이야기 54첩
  • 히라가나 문학
  • 같은 시기 세이 쇼나곤이 마쿠라노소시를 썼다
이븐 알하이삼과학1021 · 광학의 아버지
965 – 1040

실험으로 광학을 다시 쓰다

  • 광학의 서 저술
  • 시각이 눈으로 들어오는 빛임을 증명
  • 실험적 방법론의 선구자
이븐 시나과학1025 · 의학전범을 쓴 사람
980 – 1037

열여덟에 이미 이름난 의사였다. 그가 정리한 의학 백과가 유럽 의대에서 600년간 교과서로 쓰였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이슬람 세계에 들여온 사람이기도 하다.

  • 의학전범
  • 치유의 서
  • 전염병이 눈에 안 보이는 무엇으로 옮는다고 적었다
야로슬라프정치1036 · 루스에 법을 세운 대공
978 무렵 – 1054

키예프 루스의 전성기다. 성 소피아 성당을 짓고 도서관을 두었으며 최초의 성문법 루스카야 프라우다를 정리했다.

  • 루스카야 프라우다 — 첫 성문법
  • 키예프 성 소피아
  • 딸들을 유럽 왕가에 시집보내 유럽의 장인이라 불렸다
블라디미르 1세정치988 · 루스를 정교회로 이끈 대공
958 무렵 – 1015

여러 종교를 알아본 끝에 비잔티움의 정교회를 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선택으로 러시아가 서유럽이 아니라 콘스탄티노폴리스 쪽 문화권에 들어갔다.

  • 988년 키예프 루스 세례
  • 키릴 문자와 정교회가 함께 들어옴
  • 이 선택이 천 년의 방향을 정했다

그 무렵의 사건

1019
강감찬과 귀주대첩
거란의 3차 침입 때, 강감찬은 귀주에서 거란 대군을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크게 무찔렀다.
거란은 강동 6주 반환을 요구하며 세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공했다. 세 번째 침입 때 거란 장수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개경 근처까지 진격했으나,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에 보급이 끊기고 지쳐 퇴각하게 됐다. 강감찬은 퇴각하는 거란군을 귀주에서 크게 무찔러, 살아 돌아간 병력이 수천에 불과할 정도로 궤멸시켰다(1019년). 이 승리로 거란은 이후 다시는 대규모로 고려를 침공하지 못했다.
1000
가나 제국의 번성
금과 소금을 맞바꾸며 사하라 이남 첫 대제국을 세웠다.
사하라 종단 대상들이 금과 소금을 실어 날랐다. 11세기 지리학자 알바크리는 「왕이 금덩이를 매어 둔 말을 탄다」고 적었다. 나라 이름은 실은 왕의 칭호였고, 백성은 이 땅을 와가두라 불렀다. 11세기 이후 알모라비드의 정복으로 무너졌다는 설명이 오래 정설이었지만, 최근 연구는 그 정복의 고고학 증거가 약하다고 지적한다 — 교역로가 옮겨가고 가뭄이 겹친 서서히 쇠퇴였을 가능성이 크다.
1030
촐라 왕조의 해상 원정
11세기, 남인도의 촐라 왕조가 벵골만을 건너 동남아시아의 스리위자야 왕국까지 해군을 보내 정복했다.
라자라자 1세와 그 아들 라젠드라 1세 시절 촐라는 인도양 해상무역로를 장악하는 강력한 해군력을 갖췄다. 동남아까지 원정을 보낸 것은 고대 인도 왕조로서는 이례적인 규모였다.
993
서희의 외교담판과 강동 6주
거란의 대군이 침입하자 서희는 담판을 벌여 전쟁 없이 물러가게 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강동 6주를 얻어냈다.
거란(요)의 장수 소손녕은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해 왔다. 서희는 소손녕과 담판을 벌여,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했으므로 압록강 일대도 고려 땅이 되어야 마땅하며, 거란과 국교를 맺으려면 그 사이를 가로막은 여진족 땅을 고려가 정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설득했다. 소손녕은 이를 받아들여 군대를 물렸고, 고려는 그 대가로 압록강 동쪽 강동 6주 지역을 확보해 영토를 크게 넓혔다. 말로 전쟁을 막고 오히려 영토까지 얻어낸 외교사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1050
카호키아
미시시피강 가에 인구 2만의 도시가 있었다.
북아메리카에 유럽인이 오기 전 가장 큰 도시였다. 밑변이 기자 대피라미드보다 넓은 흙 둔덕을 쌓았고, 나무 기둥을 원으로 세워 해를 관측했다. 13세기에 버려졌는데 이유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1054
동서 교회 분열
로마 교황과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서로를 파문했다.
1,000년을 함께한 교회가 갈라졌다. 지금까지 봉합되지 않았다.

교역로 3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클론타프 전투

전쟁 · 1014 · 아일랜드가 하나였던 하루

브라이언 보루가 아일랜드를 하나로 묶으려 하자 렌스터와 더블린 바이킹이 연합해 맞섰다. 브라이언이 이겼으나 천막에서 살해됐다. 아일랜드의 바이킹 지배는 끝났지만 통일도 함께 무산됐다.

【그때 그 자리】 1014년 부활절이다. 더블린 북쪽 클론타프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아일랜드에는 왕이 여럿이었다. 작은 왕국이 100개 넘게 있었고, 그 위에 「상급왕(아드리)」이 있었으나 형식적이었다.

9세기부터 바이킹이 들어와 해안에 도시를 세웠다. 더블린·워터퍼드·리머릭·코크가 그들이 만든 도시다.

아일랜드에는 그전까지 도시가 없었다.

【왜 그렇게 됐나】 브라이언 보루는 작은 왕국 출신이다.

북쪽 우이 넬 가문이 대대로 쥐던 상급왕 자리를 처음으로 빼앗았다.

1002년 상급왕이 됐다. 「아일랜드 전체의 황제」라 불렸다.

그런데 렌스터 왕국이 복종하지 않았다. 더블린의 노르드계 왕과 손잡았고, 오크니와 맨섬의 바이킹까지 불러들였다.

【어떻게 흘렀나】 하루 종일 싸웠다.

브라이언 보루는 일흔이 넘어 직접 싸우지 않고 천막에서 기도했다고 전한다.

그 전투에서 아들 무르카드도 죽었다.

이겼다. 그런데 물러나던 바이킹 브로디르가 천막을 발견하고 브라이언을 죽였다.

손자까지 죽어 후계가 끊겼다.

【그래서】 오래 「아일랜드가 바이킹을 몰아낸 전투」로 이야기됐다.

지금은 다르게 본다.

양쪽에 아일랜드인과 노르드인이 섞여 있었다. 브라이언 쪽에도 노르드계 병력이 있었고, 더블린의 노르드인 상당수는 이미 아일랜드에 정착해 기독교인이 된 지 오래였다.

「아일랜드 대 바이킹」이 아니라 아일랜드 내부의 패권 다툼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이킹은 이 전투로 물러나지 않았다. 더블린은 계속 노르드계 도시였다.

【남은 것】 브라이언이 죽자 통일이 무너졌다.

그 뒤 150년 동안 상급왕 자리를 두고 다시 다퉜다.

1169년 렌스터 왕 디아무트가 왕위를 되찾으려 잉글랜드의 노르만 기사들을 불러들였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노르만이 들어와 나가지 않았고, 잉글랜드의 아일랜드 지배가 800년 이어진다.

브라이언 보루는 아일랜드 민족주의의 상징이 됐다. 특히 19세기에 그렇다.

「오브라이언」이라는 성이 그의 후손을 뜻한다.

이 전투를 「하나였던 하루」라 부르는 이유는, 그 뒤로 아일랜드가 스스로 하나였던 적이 오래 없었기 때문이다.

지도에서 보기: 10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