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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교황과 황제가 성직자 임명권을 두고 다퉜다. 성지 회복을 내건 원정이 시작되며 유럽이 처음으로 바깥을 향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호족 연합으로 선 왕조가 과거제와 관료제로 중앙집권을 다졌다. 거란·여진과 부딪히며 북방 경계를 지켰다.
왜인구 압력과 흘수 얕은 롱십이 결합했다. 강을 거슬러 내륙까지 들이닥칠 수 있는 배가 결정적이었다.
결과약탈로 시작해 정착과 건국으로 끝났다. 노르망디·러시아·아이슬란드가 이들의 손에서 생겼고, 북아메리카에도 콜럼버스보다 500년 먼저 닿았다.
왜브라이언 보루가 아일랜드를 하나로 묶으려 하자 렌스터와 더블린 바이킹이 연합해 맞섰다.
결과브라이언이 이겼으나 천막에서 살해됐다. 아일랜드의 바이킹 지배는 끝났지만 통일도 함께 무산됐다.
귀주에서 거란의 10만 대군을 거의 전멸시켰다. 이후 백 년의 평화가 왔다.
궁정 여성으로 한자가 아니라 히라가나로 썼다. 남자들이 한문을 쓰는 동안 여성이 자기 말로 문학을 만들었다. 세계 최초의 장편소설로 꼽히기도 한다.
실험으로 광학을 다시 쓰다
열여덟에 이미 이름난 의사였다. 그가 정리한 의학 백과가 유럽 의대에서 600년간 교과서로 쓰였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이슬람 세계에 들여온 사람이기도 하다.
키예프 루스의 전성기다. 성 소피아 성당을 짓고 도서관을 두었으며 최초의 성문법 루스카야 프라우다를 정리했다.
여러 종교를 알아본 끝에 비잔티움의 정교회를 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선택으로 러시아가 서유럽이 아니라 콘스탄티노폴리스 쪽 문화권에 들어갔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전쟁 · 1014 · 아일랜드가 하나였던 하루
브라이언 보루가 아일랜드를 하나로 묶으려 하자 렌스터와 더블린 바이킹이 연합해 맞섰다. 브라이언이 이겼으나 천막에서 살해됐다. 아일랜드의 바이킹 지배는 끝났지만 통일도 함께 무산됐다.
【그때 그 자리】 1014년 부활절이다. 더블린 북쪽 클론타프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아일랜드에는 왕이 여럿이었다. 작은 왕국이 100개 넘게 있었고, 그 위에 「상급왕(아드리)」이 있었으나 형식적이었다.
9세기부터 바이킹이 들어와 해안에 도시를 세웠다. 더블린·워터퍼드·리머릭·코크가 그들이 만든 도시다.
아일랜드에는 그전까지 도시가 없었다.
【왜 그렇게 됐나】 브라이언 보루는 작은 왕국 출신이다.
북쪽 우이 넬 가문이 대대로 쥐던 상급왕 자리를 처음으로 빼앗았다.
1002년 상급왕이 됐다. 「아일랜드 전체의 황제」라 불렸다.
그런데 렌스터 왕국이 복종하지 않았다. 더블린의 노르드계 왕과 손잡았고, 오크니와 맨섬의 바이킹까지 불러들였다.
【어떻게 흘렀나】 하루 종일 싸웠다.
브라이언 보루는 일흔이 넘어 직접 싸우지 않고 천막에서 기도했다고 전한다.
그 전투에서 아들 무르카드도 죽었다.
이겼다. 그런데 물러나던 바이킹 브로디르가 천막을 발견하고 브라이언을 죽였다.
손자까지 죽어 후계가 끊겼다.
【그래서】 오래 「아일랜드가 바이킹을 몰아낸 전투」로 이야기됐다.
지금은 다르게 본다.
양쪽에 아일랜드인과 노르드인이 섞여 있었다. 브라이언 쪽에도 노르드계 병력이 있었고, 더블린의 노르드인 상당수는 이미 아일랜드에 정착해 기독교인이 된 지 오래였다.
「아일랜드 대 바이킹」이 아니라 아일랜드 내부의 패권 다툼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이킹은 이 전투로 물러나지 않았다. 더블린은 계속 노르드계 도시였다.
【남은 것】 브라이언이 죽자 통일이 무너졌다.
그 뒤 150년 동안 상급왕 자리를 두고 다시 다퉜다.
1169년 렌스터 왕 디아무트가 왕위를 되찾으려 잉글랜드의 노르만 기사들을 불러들였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노르만이 들어와 나가지 않았고, 잉글랜드의 아일랜드 지배가 800년 이어진다.
브라이언 보루는 아일랜드 민족주의의 상징이 됐다. 특히 19세기에 그렇다.
「오브라이언」이라는 성이 그의 후손을 뜻한다.
이 전투를 「하나였던 하루」라 부르는 이유는, 그 뒤로 아일랜드가 스스로 하나였던 적이 오래 없었기 때문이다.
지도에서 보기: 10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