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히타이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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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청동기 제국들

히타이트·이집트 신왕국·바빌로니아가 사신과 군대를 주고받았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2건

아시리아-미탄니 전쟁BC 1350 – BC 1300
아시리아 vs 미탄니

히타이트에 얻어맞아 약해진 미탄니를 아시리아가 동쪽에서 밀었다.

와슈칸니 함락

결과미탄니가 지워지고 아시리아가 대국의 반열에 올랐다. 이때부터 아시리아는 700년간 근동의 상수가 된다.

50년 · 대국의 교체
이집트-히타이트 전쟁BC 1300 – BC 1259
이집트 vs 히타이트

시리아의 카데시와 아무루를 두고 청동기 두 최강국이 부딪쳤다. 이 지역이 지중해 교역로의 길목이었다.

카데시 BC 1274

결과무승부로 끝나 세계 최초의 평화조약을 맺었다. 양쪽 기록이 모두 남은 최초의 전쟁이며, 서로 자기가 이겼다고 적었다.

전차 5,000대 · 청동기 최대 규모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1명

람세스 2세정치BC 1274 · 자기 이름을 가장 많이 새긴 파라오
BC 1303 – BC 1213

90세 넘게 살며 66년을 다스렸다. 아부심벨을 비롯해 이집트 전역에 자기 조각상을 세웠고, 선왕들의 조각에도 자기 이름을 덧새겼다.

  • 카데시 전투를 대승으로 선전
  • 세계 최초의 평화조약 체결 BC 1259
  • 아부심벨 신전 건립

그 무렵의 사건

BC 1323
투탕카멘
아홉 살에 즉위해 열여덟에 죽은 소년 왕.
재위 중 한 일은 아버지의 개혁을 되돌린 것뿐이다. 그런데 무덤이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은 채 1922년에 발견되면서, 가장 하찮았던 파라오가 가장 유명해졌다.
BC 1274
카데시 전투
전차 5,000대가 부딪친 청동기 최대의 전투.
람세스 2세와 히타이트 무와탈리 2세가 시리아를 두고 붙었다. 람세스는 신전마다 대승이라 새겼지만, 히타이트 기록과 대조하면 무승부에 가까웠다. 양쪽 기록이 다 남은 최초의 전투다.
BC 1259
최초의 평화조약
이집트와 히타이트가 문서로 전쟁을 끝냈다.
카데시 이후 16년, 두 제국이 상호 불가침과 범죄인 인도를 약속했다. 이집트어판과 히타이트어판이 모두 남아 있고 내용이 일치한다. 복제본이 유엔 본부에 걸려 있다.
BC 1350
아마르나 종교개혁
한 왕이 신을 하나로 줄이려 했다.
아멘호테프 4세가 태양원반 아텐만 섬기겠다며 이름을 아케나텐으로 바꾸고 수도를 옮겼다. 미술도 사실적으로 바뀌었다. 그가 죽자 모든 것이 되돌려졌고 그의 이름은 왕명록에서 지워졌다.

교역로

해당 없음

이집트-히타이트 전쟁

전쟁 · BC 1300 · 가장 오래된 평화 조약

시리아의 카데시와 아무루를 두고 청동기 두 최강국이 부딪쳤다. 이 지역이 지중해 교역로의 길목이었다. 무승부로 끝나 세계 최초의 평화조약을 맺었다. 양쪽 기록이 모두 남은 최초의 전쟁이며, 서로 자기가 이겼다고 적었다.

【그때 그 자리】 BC 13세기다. 두 제국이 시리아를 두고 부딪쳤다.

이집트는 람세스 2세, 히타이트는 무와탈리 2세 때다.

핵심은 카데시였다. 오론테스강가의 도시로, 시리아를 남북으로 가르는 지점이다.

【왜 그렇게 됐나】 BC 1274년 람세스 2세가 4개 사단, 2만 명을 이끌고 북상했다.

도중에 유목민 둘을 잡았다. 그들이 「히타이트군은 멀리 알레포에 있다」고 했다.

거짓이었다. 히타이트가 일부러 보낸 자들이었다.

람세스가 안심하고 아문 사단만 데리고 앞서 갔다. 나머지 세 사단은 뒤에 늘어져 있었다.

【어떻게 흘렀나】 히타이트 전차대가 도시 뒤에 숨어 있다가, 두 번째 사단의 옆구리를 쳤다.

이집트 진영이 무너졌다. 람세스가 포위됐다.

그가 직접 전차를 몰고 싸웠고, 마침 도착한 부대가 뒤에서 히타이트 전차대를 쳤다.

전차 5천~6천 대가 부딪친 싸움이다. 고대 최대 규모의 전차전으로 꼽힌다.

결판이 나지 않았다. 양쪽 다 물러났다.

【그래서】 람세스가 이집트로 돌아가 대승이라 새겼다.

아부심벨과 카르나크 등 신전 다섯 곳 벽에 같은 내용을 새겼다. 자기가 홀로 적을 무찔렀다는 서사시 형식이다.

그런데 히타이트 쪽 기록도 남아 있다. 하투샤에서 나온 점토판에는 히타이트가 이겼다고 적혀 있다.

양쪽 기록을 대조할 수 있는 드문 사례다. 실제로는 무승부에 가깝고, 카데시는 히타이트가 계속 쥐었다.

「승전 기록을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를 말할 때 늘 인용되는 사건이다.

【남은 것】 16년 뒤 BC 1258년 조약을 맺었다.

두 판본이 다 남아 있다. 이집트 신전 벽의 상형문자본과, 하투샤에서 나온 아카드어 점토판이다.

내용이 서로를 침공하지 않고, 제3자가 공격하면 돕고, 도망친 자를 돌려보내되 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 망명자 인도 조항이 들어 있는 가장 오래된 조약으로 꼽힌다.

지금 뉴욕 유엔 본부에 그 사본이 걸려 있다.

두 제국이 화해한 이유는 서로 지쳤기 때문만이 아니다. 동쪽에서 아시리아가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조약을 맺고 70년쯤 뒤, 두 나라 모두 청동기 붕괴에 휩쓸린다. 히타이트는 아예 사라진다.

지도에서 보기: BC 15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