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티니아누스 재정복

3000
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 왼쪽 · 오른쪽 ▶
지도에 표시
주요 국가
오른쪽 게이지를 끌거나 키보드 ↑↓로 5천 년이 흐릅니다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주요 공격
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고대의 끝

서쪽에는 프랑크·서고트·동고트 왕국이 들어섰고 동쪽 로마만 제국으로 남았다. 유스티니아누스가 옛 영토를 되찾으려 했지만 역병과 재정 파탄이 뒤따랐다.

한반도

삼국의 각축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전쟁 1건

유스티니아누스 재정복535 – 554
동로마 vs 반달 왕국·동고트 왕국

유스티니아누스는 제국을 옛 경계로 되돌리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반달·동고트 왕국의 내분이 개입의 빌미가 됐다.

카르타고 533로마 공방 537–538타기나이 552

결과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를 되찾았지만 20년 전쟁과 역병으로 국력만 소진했다.

20년 · 이탈리아 인구가 급감하고 국고가 말랐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1명

유스티니아누스정치537 · 동로마 황제
482 – 565

로마법을 집대성하고 하기아 소피아를 세웠다. 옛 영토를 되찾으려다 국력을 소진했다.

  • 로마법 대전 편찬
  • 하기아 소피아 건설
  •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 재정복

그 무렵의 사건

534
유스티니아누스 법전
천 년의 로마법을 하나로 정리한 「로마법 대전」. 유럽 대륙법의 뿌리가 됐다.
황제는 법학자 트리보니아누스에게 흩어진 칙령과 학설을 정리하게 했다. 칙법전·학설휘찬·법학제요가 잇달아 완성됐고 모순된 조문은 폐기됐다. 서유럽에서는 잊혔다가 11세기 볼로냐에서 재발견되어 대학 법학의 교과서가 됐고, 나폴레옹 법전을 거쳐 한국 민법에까지 그 구조가 이어진다.
537
하기아 소피아
유스티니아누스가 5년 만에 완공했다.
5년 만에 완공된 돔이 천 년간 세계 최대였다.
538
백제가 불교를 전하다
일본 고대 국가의 틀이 이 길로 갔다.
성왕이 불상과 경전을 보냈다. 함께 간 것이 글자와 역법과 건축과 기와 기술이다. 일본 최초의 본격 사찰 아스카데라를 백제 기술자가 지었고, 호류지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다.
541
유스티니아누스 역병
역사에 기록된 첫 페스트 대유행.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하루 5천 명이 죽었다.
이집트에서 배를 타고 온 쥐와 벼룩이 옮긴 페스트는 541년 수도에 닿았다. 프로코피우스는 시신을 묻을 곳이 없어 성탑에 쌓았다고 썼고 황제도 앓았다. 지중해 인구의 4분의 1 이상이 죽었다는 추산이 있다. 유스티니아누스의 재정복이 힘을 잃고 제국의 세수가 무너진 데는 이 역병이 컸다. 800년 뒤 같은 균이 흑사병으로 돌아온다.
527
신라 법흥왕의 불교 공인
신라 법흥왕은 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불교를 나라의 공인 종교로 삼았다. 이차돈의 순교가 이를 가능케 한 계기로 전한다.
신라 왕실은 왕권 강화를 위해 불교를 받아들이려 했지만, 토착 신앙을 지지하는 귀족들의 반발이 거셌다. 젊은 신하 이차돈은 자신을 처형하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 예언했는데, 실제로 목을 베자 흰 피가 솟구치고 하늘이 어두워졌다는 설화가 전한다(527년). 이 사건을 계기로 귀족들의 반대가 누그러지며 불교가 공인됐다. 법흥왕은 이어 율령을 반포하고 관등제를 정비하는 등 신라를 고대 국가 체제로 끌어올렸다.
553
신라 진흥왕의 한강 유역 정복
신라 진흥왕은 백제와의 동맹을 깨고 한강 유역을 독차지했으며, 화랑도를 정비하고 대대적인 영토 확장을 이뤄 신라 전성기를 열었다.
진흥왕은 처음엔 백제와 손잡고 고구려로부터 한강 상류를 되찾았으나, 553년 돌연 동맹을 깨고 백제가 차지한 한강 하류까지 빼앗아 한강 유역 전체를 손에 넣었다. 이 지역은 중국과 직접 교류할 수 있는 서해 뱃길을 확보해준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는 또 청소년 수련 단체였던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정비해 유능한 인재와 장군들을 길러냈고, 대가야를 정복하는 등 사방으로 영토를 넓혀 자신이 넓힌 국경 곳곳에 순수비(비석)를 세웠다.

교역로 4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유스티니아누스 재정복

전쟁 · 535 · 되찾았는데 지킬 수 없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제국을 옛 경계로 되돌리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반달·동고트 왕국의 내분이 개입의 빌미가 됐다.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를 되찾았지만 20년 전쟁과 역병으로 국력만 소진했다.

【그때 그 자리】 6세기 동로마다. 서로마는 60년 전에 사라졌다.

그 자리에 게르만 왕국들이 있었다 — 북아프리카의 반달, 이탈리아의 동고트, 에스파냐의 서고트다.

유스티니아누스가 「레노바티오 임페리이 — 제국의 회복」을 내걸었다. 로마 제국은 하나이며 잠시 빼앗겼을 뿐이라는 논리다.

【왜 그렇게 됐나】 명분이 있었다. 게르만 왕국 대부분이 아리우스파여서, 가톨릭 주민을 해방한다는 말이 통했다.

실무적으로는 세금이다. 북아프리카는 곡창이었고 이탈리아는 상징이었다.

먼저 동쪽 사산조와 「영구 평화」를 맺어 뒤를 막았다. 돈을 주고 산 평화다.

【어떻게 흘렀나】 533년 벨리사리우스가 1만 5천으로 북아프리카에 갔다.

반달 왕국이 몇 달 만에 무너졌다. 100년 만이었다.

535년 이탈리아로 갔다. 여기서부터 길어졌다.

동고트가 만만치 않았다. 로마시가 주인을 다섯 번 바꿨다. 토틸라라는 왕이 나타나 거의 되돌려 놓기도 했다.

20년이 걸렸다. 554년에야 끝났다.

그사이 두 가지가 겹쳤다.

540년 사산조가 「영구 평화」를 깨고 안티오키아를 함락했다. 벨리사리우스를 동쪽으로 빼야 했다.

541년 페스트가 왔다.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다. 콘스탄티노플에서 하루 수천 명이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제국 인구의 상당 부분이 사라졌다.

【그래서】 지도만 보면 성공이다. 지중해가 다시 로마의 호수가 됐다.

실제로는 달랐다. 이탈리아가 폐허가 됐다. 로마시 인구가 수십만에서 3만 이하로 떨어졌다. 수도교가 끊기고 원로원이 사라졌다.

동고트가 지켜 오던 로마의 도시 생활을, 로마를 되찾겠다는 전쟁이 부수었다.

재정이 바닥났고 발칸 국경이 비었다.

【남은 것】 유스티니아누스가 죽고 3년 뒤 롬바르드족이 이탈리아로 내려왔다. 되찾은 땅의 대부분을 곧 잃었다.

북아프리카는 한 세기 뒤 아랍에게 넘어갔다.

남은 것은 다른 쪽이다 — 「로마법 대전」이다. 흩어진 로마법을 정리한 이 법전이 유럽 대륙법의 뿌리가 됐다.

그리고 하기아 소피아다. 5년 10개월 만에 지었다.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를 이겼다」고 했다 전한다.

정복은 한 세대를 못 갔고 법과 건물은 1,500년을 갔다.

지도에서 보기: 5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