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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서쪽에는 프랑크·서고트·동고트 왕국이 들어섰고 동쪽 로마만 제국으로 남았다. 유스티니아누스가 옛 영토를 되찾으려 했지만 역병과 재정 파탄이 뒤따랐다.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왜유스티니아누스는 제국을 옛 경계로 되돌리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반달·동고트 왕국의 내분이 개입의 빌미가 됐다.
결과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를 되찾았지만 20년 전쟁과 역병으로 국력만 소진했다.
로마법을 집대성하고 하기아 소피아를 세웠다. 옛 영토를 되찾으려다 국력을 소진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전쟁 · 535 · 되찾았는데 지킬 수 없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제국을 옛 경계로 되돌리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반달·동고트 왕국의 내분이 개입의 빌미가 됐다.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를 되찾았지만 20년 전쟁과 역병으로 국력만 소진했다.
【그때 그 자리】 6세기 동로마다. 서로마는 60년 전에 사라졌다.
그 자리에 게르만 왕국들이 있었다 — 북아프리카의 반달, 이탈리아의 동고트, 에스파냐의 서고트다.
유스티니아누스가 「레노바티오 임페리이 — 제국의 회복」을 내걸었다. 로마 제국은 하나이며 잠시 빼앗겼을 뿐이라는 논리다.
【왜 그렇게 됐나】 명분이 있었다. 게르만 왕국 대부분이 아리우스파여서, 가톨릭 주민을 해방한다는 말이 통했다.
실무적으로는 세금이다. 북아프리카는 곡창이었고 이탈리아는 상징이었다.
먼저 동쪽 사산조와 「영구 평화」를 맺어 뒤를 막았다. 돈을 주고 산 평화다.
【어떻게 흘렀나】 533년 벨리사리우스가 1만 5천으로 북아프리카에 갔다.
반달 왕국이 몇 달 만에 무너졌다. 100년 만이었다.
535년 이탈리아로 갔다. 여기서부터 길어졌다.
동고트가 만만치 않았다. 로마시가 주인을 다섯 번 바꿨다. 토틸라라는 왕이 나타나 거의 되돌려 놓기도 했다.
20년이 걸렸다. 554년에야 끝났다.
그사이 두 가지가 겹쳤다.
540년 사산조가 「영구 평화」를 깨고 안티오키아를 함락했다. 벨리사리우스를 동쪽으로 빼야 했다.
541년 페스트가 왔다.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다. 콘스탄티노플에서 하루 수천 명이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제국 인구의 상당 부분이 사라졌다.
【그래서】 지도만 보면 성공이다. 지중해가 다시 로마의 호수가 됐다.
실제로는 달랐다. 이탈리아가 폐허가 됐다. 로마시 인구가 수십만에서 3만 이하로 떨어졌다. 수도교가 끊기고 원로원이 사라졌다.
동고트가 지켜 오던 로마의 도시 생활을, 로마를 되찾겠다는 전쟁이 부수었다.
재정이 바닥났고 발칸 국경이 비었다.
【남은 것】 유스티니아누스가 죽고 3년 뒤 롬바르드족이 이탈리아로 내려왔다. 되찾은 땅의 대부분을 곧 잃었다.
북아프리카는 한 세기 뒤 아랍에게 넘어갔다.
남은 것은 다른 쪽이다 — 「로마법 대전」이다. 흩어진 로마법을 정리한 이 법전이 유럽 대륙법의 뿌리가 됐다.
그리고 하기아 소피아다. 5년 10개월 만에 지었다.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를 이겼다」고 했다 전한다.
정복은 한 세대를 못 갔고 법과 건물은 1,500년을 갔다.
지도에서 보기: 5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