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지도에 표시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틀린 데나 빠진 데를 알려주시면 확인하고 고칩니다.
이 브라우저에만 저장됩니다. 서버로 아무것도 보내지 않습니다.
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유라시아 대부분이 한 왕조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역참으로 동서가 이어져 사람과 물자와 역병이 함께 흘렀다.
몽골과 강화한 뒤 원의 부마국이 됐다. 공민왕이 반원 개혁을 시도했지만 왕조는 이미 기울었다.
왜부족을 통일한 칭기즈 칸에게 유목 연합체를 유지할 전리품과 목초지가 필요했다. 호라즘이 사신단을 처형한 것이 서방 원정의 방아쇠가 됐다.
결과73년에 걸쳐 태평양에서 동유럽까지 이어지는 역사상 최대의 육상 제국이 만들어졌다.
왜쿠빌라이가 일본에 조공을 요구했으나 가마쿠라 막부가 거부했다. 고려는 함선과 병력을 대야 했다.
결과두 차례 모두 태풍으로 궤멸했다. 일본에서는 이를 '신풍'이라 불렀다.
17년을 원나라에서 보내고 돌아와 감옥에서 구술한 「동방견문록」이 콜럼버스를 바다로 이끌었다.
국호를 대원으로 정하고 남송을 무너뜨렸다. 중국 전역이 처음으로 유목 왕조 아래 들어갔다.
아리스토텔레스를 기독교 안으로 들여왔다. 「신학대전」은 가톨릭 신학의 기둥이 됐다.
대월의 장수로 몽골의 세 차례 침입을 막았다. 1288년 바익당강 바닥에 쇠말뚝을 박아 두고 썰물에 함대를 걸리게 했다.
아나톨리아 북서부의 작은 튀르크계 공국을 세워 비잔티움 국경 지역에서 세력을 키웠다. 그의 이름을 딴 오스만 왕조는 이후 600년 넘게 이어지며 세 대륙에 걸친 제국으로 성장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전쟁 · 1274 · 원·고려 연합 vs 가마쿠라 막부
쿠빌라이가 일본에 조공을 요구했으나 가마쿠라 막부가 거부했다. 고려는 함선과 병력을 대야 했다. 두 차례 모두 태풍으로 궤멸했다. 일본에서는 이를 '신풍'이라 불렀다.
【그때 그 자리】
1259년 고려가 몽골과 강화했다. 30년 전쟁이 끝났다.
1271년 쿠빌라이가 국호를 원으로 정하고 1279년 남송을 없앴다. 동아시아 대부분이 그의 손에 들어왔다.
남은 것이 일본이었다.
쿠빌라이는 여러 차례 사신을 보내 조공을 요구했다. 가마쿠라 막부의 집권 호조 도키무네는 답하지 않았다. 사신을 처형하기도 했다.
【왜 그렇게 됐나】
원정의 이유로 몇 가지가 꼽힌다.
일본이 남송과 교역하고 있어 남송을 고립시키려는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쿠빌라이 자신의 정통성 문제도 있었다. 칭기즈 칸의 후손으로서 정복 실적이 필요했다.
고려에게는 재앙이었다. 배를 만들고 군량을 대고 병사를 내야 했다. 30년 전쟁으로 이미 국토가 황폐한 상태였다.
【어떻게 흘렀나】
1274년 1차 원정. 몽골과 한족 병력 2만 5천에 고려군 8천, 배 900척이었다.
쓰시마와 이키를 점령하고 하카타만에 상륙했다. 일본 무사들은 일대일로 이름을 대고 싸우는 방식에 익숙했는데, 몽골군은 집단 전술과 화약 무기를 썼다. 철포라 불린 폭발물이 쓰였다.
첫날 일본군이 밀렸다. 그런데 그날 밤 연합군이 배로 돌아갔고, 폭풍우가 몰아쳐 함대가 크게 부서졌다.
1281년 2차 원정. 규모가 훨씬 컸다. 고려에서 출발한 동로군 4만과 남송 지역에서 출발한 강남군 10만이다. 배가 4천 척이 넘었다.
이번에는 일본이 준비돼 있었다. 하카타만 해안에 20킬로미터의 석축 방벽을 쌓아 두었다. 상륙이 막혔다.
두 함대의 합류도 늦어졌다. 배에서 두 달 가까이 지내며 역병이 돌았다.
8월 태풍이 왔다. 함대가 궤멸했다. 10만 명 이상이 죽거나 붙잡혔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일본은 이를 신의 바람, 가미카제라 불렀다. 신이 나라를 지킨다는 관념이 여기서 굳었다.
이 관념이 20세기에 다시 불려 나왔다. 태평양전쟁 말기 자살 공격 부대의 이름이 됐다.
승리했지만 막부는 흔들렸다. 방어 전쟁이라 나눠 줄 전리품이 없었다. 목숨 걸고 싸운 무사들에게 보상하지 못했다. 이 불만이 쌓여 1333년 가마쿠라 막부가 무너진다.
【남은 것】
고려의 피해가 컸다. 두 차례 원정에 배와 군량과 병력을 대느라 국력이 소모됐다. 제주도에 목마장이 설치돼 말을 길렀다.
침몰선 발굴이 이어지고 있다. 다카시마 해저에서 원의 함선과 유물이 나왔다. 배 일부가 하천용 평저선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급히 만드느라 바다에 맞지 않는 배가 섞였다는 것이다. 고려사에도 무리한 조선 명령에 대한 기록이 있다.
태풍만이 원인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준비 부족과 지휘 분열과 방벽이 함께 작용했다.
신이 지켜 준다는 이야기가 700년 뒤 어떻게 쓰였는지를 보면, 한 사건을 무엇으로 기억하느냐가 얼마나 멀리 가는지 알 수 있다.
지도에서 보기: 12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바익당강 전투 스코틀랜드 독립전쟁 키예프 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