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리아-미탄니 전쟁

3000
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 왼쪽 · 오른쪽 ▶
지도에 표시
주요 국가
오른쪽 게이지를 끌거나 키보드 ↑↓로 5천 년이 흐릅니다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주요 공격
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청동기 제국들

히타이트·이집트 신왕국·바빌로니아가 사신과 군대를 주고받았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1건

아시리아-미탄니 전쟁BC 1350 – BC 1300
아시리아 vs 미탄니

히타이트에 얻어맞아 약해진 미탄니를 아시리아가 동쪽에서 밀었다.

와슈칸니 함락

결과미탄니가 지워지고 아시리아가 대국의 반열에 올랐다. 이때부터 아시리아는 700년간 근동의 상수가 된다.

50년 · 대국의 교체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2명

아케나텐사상BC 1350 · 신을 하나로 줄이려 한 파라오
BC 1353 – BC 1336 재위

태양원반 아텐만을 섬기겠다며 이름과 수도를 바꿨다. 배가 나오고 턱이 긴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새기게 한 것도 파격이었다.

  • 아텐 유일 숭배 — 기록상 첫 일신교 시도
  • 아마르나로 천도, 미술 양식을 사실적으로
  • 사후 모든 것이 되돌려지고 이름이 지워짐
네페르티티정치BC 1345 · 베를린의 흉상으로 남은 아마르나의 왕비
BC 1370 무렵 – BC 1330 무렵

아케나텐과 함께 태양신 아텐을 섬겼다. 3,300년 전 흉상이 1912년 발굴되어 고대의 얼굴 가운데 가장 유명해졌다.

  • 아케나텐의 대왕비, 아텐 숭배 공동 주도
  • 네페르티티 흉상(베를린 신박물관)
  • 아케나텐 사후 공동 통치자였다는 설

그 무렵의 사건

BC 1350
아마르나 종교개혁
한 왕이 신을 하나로 줄이려 했다.
아멘호테프 4세가 태양원반 아텐만 섬기겠다며 이름을 아케나텐으로 바꾸고 수도를 옮겼다. 미술도 사실적으로 바뀌었다. 그가 죽자 모든 것이 되돌려졌고 그의 이름은 왕명록에서 지워졌다.
BC 1323
투탕카멘
아홉 살에 즉위해 열여덟에 죽은 소년 왕.
재위 중 한 일은 아버지의 개혁을 되돌린 것뿐이다. 그런데 무덤이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은 채 1922년에 발견되면서, 가장 하찮았던 파라오가 가장 유명해졌다.

교역로

해당 없음

아시리아-미탄니 전쟁

전쟁 · BC 1350 · 속국이 주인을 삼키다

히타이트에 얻어맞아 약해진 미탄니를 아시리아가 동쪽에서 밀었다. 미탄니가 지워지고 아시리아가 대국의 반열에 올랐다. 이때부터 아시리아는 700년간 근동의 상수가 된다.

【그때 그 자리】 BC 15~14세기다. 아슈르는 미탄니의 속국이었다.

티그리스 상류의 도시로, 상인의 도시였다. 아나톨리아에 무역 거점을 두고 주석과 직물을 팔았다.

미탄니가 그 위에 있었다. 아슈르의 왕은 조공을 바쳤다.

【왜 그렇게 됐나】 미탄니가 흔들린 것이 계기다.

왕위 다툼이 났고, 히타이트의 수필룰리우마 1세가 그 틈을 파고들어 수도를 쳤다.

미탄니가 히타이트의 속국으로 전락했다.

그 순간 아슈르의 아슈르우발리트 1세가 독립을 선언했다.

그리고 곧바로 이집트에 편지를 보냈다. 아마르나 문서에 남아 있다.

「형제여」라고 불렀다. 미탄니의 속국이던 나라가 대왕들과 같은 급으로 말을 건 것이다.

바빌로니아 왕이 이집트에 항의했다. 「저들은 내 신하인데 어찌 상대하느냐」는 내용이다. 이집트가 무시했다.

【어떻게 흘렀나】 아시리아가 미탄니 영토를 조금씩 먹었다.

아다드니라리 1세와 살마네세르 1세 때 결정적으로 밀었다.

살마네세르 1세가 미탄니(하니갈바트)를 완전히 병합했다고 새겼다. 주민 1만 4천 명의 눈을 멀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투쿨티니누르타 1세 때 바빌론까지 함락했다. 아시리아가 메소포타미아 전체를 처음으로 눌렀다.

【그래서】 여기서 아시리아의 방식이 굳었다.

정복지의 주민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또 다른 곳 사람을 채우는 강제 이주가 이 시기에 시작된다.

그리고 잔인함을 기록으로 남겼다. 왕의 비문에 가죽을 벗기고 말뚝에 꿰었다는 서술이 자랑처럼 적혀 있다.

겁을 주어 반란을 막는 것이 목적이었다. 실제로 그런 효과가 있었다.

【남은 것】 미탄니는 사라졌다. 그 언어(후르리어)도 후계인 우라르투어와 함께 끊겼다.

아시리아는 그 뒤 청동기 붕괴로 한 번 움츠렸다가, BC 9세기부터 다시 일어나 신아시리아 제국이 된다.

속국이 주인을 삼키는 이 과정이 오래 인용된다. 큰 나라들이 서로 싸우는 사이, 그 그늘에 있던 작은 나라가 커진다는 것이다.

600년 뒤 마케도니아가, 2,000년 뒤 프로이센이 비슷한 자리에 선다.

지도에서 보기: BC 15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