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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히타이트·이집트 신왕국·바빌로니아가 사신과 군대를 주고받았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히타이트에 얻어맞아 약해진 미탄니를 아시리아가 동쪽에서 밀었다.
결과미탄니가 지워지고 아시리아가 대국의 반열에 올랐다. 이때부터 아시리아는 700년간 근동의 상수가 된다.
태양원반 아텐만을 섬기겠다며 이름과 수도를 바꿨다. 배가 나오고 턱이 긴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새기게 한 것도 파격이었다.
아케나텐과 함께 태양신 아텐을 섬겼다. 3,300년 전 흉상이 1912년 발굴되어 고대의 얼굴 가운데 가장 유명해졌다.
해당 없음
전쟁 · BC 1350 · 속국이 주인을 삼키다
히타이트에 얻어맞아 약해진 미탄니를 아시리아가 동쪽에서 밀었다. 미탄니가 지워지고 아시리아가 대국의 반열에 올랐다. 이때부터 아시리아는 700년간 근동의 상수가 된다.
【그때 그 자리】 BC 15~14세기다. 아슈르는 미탄니의 속국이었다.
티그리스 상류의 도시로, 상인의 도시였다. 아나톨리아에 무역 거점을 두고 주석과 직물을 팔았다.
미탄니가 그 위에 있었다. 아슈르의 왕은 조공을 바쳤다.
【왜 그렇게 됐나】 미탄니가 흔들린 것이 계기다.
왕위 다툼이 났고, 히타이트의 수필룰리우마 1세가 그 틈을 파고들어 수도를 쳤다.
미탄니가 히타이트의 속국으로 전락했다.
그 순간 아슈르의 아슈르우발리트 1세가 독립을 선언했다.
그리고 곧바로 이집트에 편지를 보냈다. 아마르나 문서에 남아 있다.
「형제여」라고 불렀다. 미탄니의 속국이던 나라가 대왕들과 같은 급으로 말을 건 것이다.
바빌로니아 왕이 이집트에 항의했다. 「저들은 내 신하인데 어찌 상대하느냐」는 내용이다. 이집트가 무시했다.
【어떻게 흘렀나】 아시리아가 미탄니 영토를 조금씩 먹었다.
아다드니라리 1세와 살마네세르 1세 때 결정적으로 밀었다.
살마네세르 1세가 미탄니(하니갈바트)를 완전히 병합했다고 새겼다. 주민 1만 4천 명의 눈을 멀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투쿨티니누르타 1세 때 바빌론까지 함락했다. 아시리아가 메소포타미아 전체를 처음으로 눌렀다.
【그래서】 여기서 아시리아의 방식이 굳었다.
정복지의 주민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또 다른 곳 사람을 채우는 강제 이주가 이 시기에 시작된다.
그리고 잔인함을 기록으로 남겼다. 왕의 비문에 가죽을 벗기고 말뚝에 꿰었다는 서술이 자랑처럼 적혀 있다.
겁을 주어 반란을 막는 것이 목적이었다. 실제로 그런 효과가 있었다.
【남은 것】 미탄니는 사라졌다. 그 언어(후르리어)도 후계인 우라르투어와 함께 끊겼다.
아시리아는 그 뒤 청동기 붕괴로 한 번 움츠렸다가, BC 9세기부터 다시 일어나 신아시리아 제국이 된다.
속국이 주인을 삼키는 이 과정이 오래 인용된다. 큰 나라들이 서로 싸우는 사이, 그 그늘에 있던 작은 나라가 커진다는 것이다.
600년 뒤 마케도니아가, 2,000년 뒤 프로이센이 비슷한 자리에 선다.
지도에서 보기: BC 15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