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독립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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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몽골의 세기

유라시아 대부분이 한 왕조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역참으로 동서가 이어져 사람과 물자와 역병이 함께 흘렀다.

한반도

원 간섭기

몽골과 강화한 뒤 원의 부마국이 됐다. 공민왕이 반원 개혁을 시도했지만 왕조는 이미 기울었다.

전쟁 1건

스코틀랜드 독립전쟁1296 – 1328
스코틀랜드 vs 잉글랜드

왕위 계승 분쟁에 에드워드 1세가 중재자로 개입했다가 그대로 속국으로 삼으려 했다.

스털링 브리지 1297폴커크 1298배넉번 1314

결과윌리엄 월리스가 처형된 뒤 로버트 브루스가 배넉번에서 대승했다. 아브로스 선언은 「우리는 영광이나 부가 아니라 자유를 위해 싸운다」고 적었다.

32년 · 자유를 문서로 선언하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6명

오스만 1세정치1299 · 오스만 제국의 이름이 된 초대 군주
1258 – 1326 무렵, 재위 1299 – 1326

아나톨리아 북서부의 작은 튀르크계 공국을 세워 비잔티움 국경 지역에서 세력을 키웠다. 그의 이름을 딴 오스만 왕조는 이후 600년 넘게 이어지며 세 대륙에 걸친 제국으로 성장했다.

  • 1299년 독립 공국 선포로 오스만 왕조 시작
  • 비잔티움 변경에서 성전(가지) 전사로 명성을 쌓음
  • 아들 오르한 때 부르사를 수도로 삼음
쩐흥다오장군1288 · 몽골을 세 번 막은 장수
1228 무렵 – 1300

대월의 장수로 몽골의 세 차례 침입을 막았다. 1288년 바익당강 바닥에 쇠말뚝을 박아 두고 썰물에 함대를 걸리게 했다.

  • 바익당강 — 강바닥 말뚝
  • 몽골 침입 3회 격퇴
  • 격장사 — 병사에게 부친 글
마르코 폴로탐험1275 · 쿠빌라이의 궁정을 유럽에 알린 베네치아 상인
1254 – 1324

17년을 원나라에서 보내고 돌아와 감옥에서 구술한 「동방견문록」이 콜럼버스를 바다로 이끌었다.

  • 실크로드를 거쳐 원 대도 도착(1275)
  • 쿠빌라이 칸 아래서 17년 체류
  • 「동방견문록」 구술(1298)
단테예술1320 · 지옥을 라틴어가 아닌 말로 썼다
AD 1265 – AD 1321

정쟁에 밀려 피렌체에서 추방된 뒤 돌아가지 못했다. 학자만 읽는 라틴어 대신 토스카나 방언으로 써서, 그 말이 이탈리아어가 됐다.

  • 「신곡」 — 지옥·연옥·천국 100곡
  • 속어로 쓴 것이 국어를 만듦
  • 죽을 때까지 망명 — 유골은 라벤나에
쿠빌라이 칸정치1271 · 원 세조
1215 – 1294

국호를 대원으로 정하고 남송을 무너뜨렸다. 중국 전역이 처음으로 유목 왕조 아래 들어갔다.

  • 국호를 대원으로 1271
  • 남송을 무너뜨림 1279
  • 대도(오늘의 베이징) 건설
토마스 아퀴나스사상1270 · 신앙과 이성을 하나로 엮은 스콜라 철학의 완성자
1225 – 1274

아리스토텔레스를 기독교 안으로 들여왔다. 「신학대전」은 가톨릭 신학의 기둥이 됐다.

  • 「신학대전」「대이교도대전」
  •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기독교적 수용
  • 신 존재의 다섯 가지 길

그 무렵의 사건

1300
짐바브웨의 번성과 쇠퇴
모르타르 없이 돌만 쌓아 사하라 이남 최대의 석조 도시를 세웠다.
쇼나족이 세운 도시로, 중국 도자기와 페르시아 유리구슬이 나올 만큼 먼 곳과 교역했다. 20세기 초 백인 식민 당국은 「아프리카인이 이런 걸 지었을 리 없다」며 페니키아인이나 아랍인의 것이라 주장했다 — 1929년 고고학자 캐턴톰프슨의 발굴로 완전한 아프리카 기원임이 확인됐다. 왜 1450년 무렵 버려졌는지는 아직도 논쟁 중이다 — 교역로가 해안으로 옮겨갔다는 설, 삼림 파괴와 지력 소진이라는 설, 소빙하기 가뭄이라는 설이 나란히 있다.
1291
스위스 연방 성립
1291년, 알프스 산속 세 계곡 공동체(우리·슈비츠·운터발덴)가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에 맞서 서로 돕기로 서약하며 스위스 연방의 첫 씨앗을 뿌렸다.
이후 여러 산악 공동체와 도시들이 하나둘 이 동맹에 합류하며 서서히 몸집을 키웠고, 지형적 이점을 살린 저항으로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사실상의 독립을 지켜냈다. 오랜 중립 전통은 이후 국제 외교와 금융의 중심지로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1280
폴리네시아의 항해
나침반 없이 태평양을 건넜다.
별의 위치, 물결이 섬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결, 새가 날아가는 방향을 읽었다. 하와이에서 뉴질랜드까지 태평양 전역에 같은 계통의 사람들이 퍼졌다. 유럽이 대양으로 나가기 수백 년 전이다.
1324
말리 제국의 전성기
14세기, 서아프리카의 말리 제국은 황금과 소금 무역으로 번영을 누리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손꼽히는 부유하고 강력한 제국으로 성장했다.
황제 만사 무사가 1324년 메카 순례길에 어마어마한 금을 뿌리듯 쓴 일화는 오늘날까지도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개인의 사례로 회자된다. 그가 지나간 카이로 등지에서는 이 대량의 금 유입으로 물가가 한동안 폭등했을 정도였다. 제국의 중심지 팀북투는 이슬람 학문의 중심지로도 이름을 떨쳐, 서아프리카 곳곳에서 학자와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이후 내부 계승 다툼과 외부 세력의 압박으로 15~16세기에 걸쳐 서서히 쇠퇴했다.
1251
팔만대장경
고려는 몽골의 침입을 부처의 힘으로 물리치길 기원하며 16년에 걸쳐 8만 장이 넘는 목판에 불경 전체를 새긴 팔만대장경을 완성했다.
거란의 침입 때도 대장경을 만들어 위기를 넘긴 전례가 있었는데, 그 초조대장경은 몽골 침입 때 불타 없어졌다.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몽골에 항전하던 고려 조정은, 온 나라의 정성을 모아 부처의 가피를 구한다는 뜻에서 다시 대장경 조판 사업을 벌였다. 8만여 장에 이르는 목판에 새긴 5천만 자가 넘는 글자는 오탈자가 거의 없을 만큼 정교해, 오늘날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대장경 판본 중 하나로 꼽히며 경남 합천 해인사에 보관돼 있다.
1347
흑사병
3년 만에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노동력이 귀해지며 농노제가 흔들린다.
노동력이 귀해져 농노제가 흔들리고 임금이 올랐다. 중세 질서가 여기서 금이 간다.

교역로 3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스코틀랜드 독립전쟁

전쟁 · 1296 · 왕이 없어서 시작된 전쟁

왕위 계승 분쟁에 에드워드 1세가 중재자로 개입했다가 그대로 속국으로 삼으려 했다. 윌리엄 월리스가 처형된 뒤 로버트 브루스가 배넉번에서 대승했다. 아브로스 선언은 「우리는 영광이나 부가 아니라 자유를 위해 싸운다」고 적었다.

【그때 그 자리】 1286년 스코틀랜드 왕 알렉산더 3세가 밤에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후계자가 세 살 손녀 마르가레트뿐이었는데, 그마저 1290년에 죽었다.

왕위 주장자가 열세 명 나왔다. 내전 직전이었다.

스코틀랜드 귀족들이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1세에게 중재를 청했다.

【왜 그렇게 됐나】 에드워드가 조건을 걸었다. 자기를 스코틀랜드의 상급 군주로 인정하라는 것이다.

받아들여졌다. 그가 존 발리올을 왕으로 정했다.

그리고 실제로 상급 군주 노릇을 했다. 스코틀랜드 법정의 판결을 자기에게 항소하게 하고, 프랑스와의 전쟁에 군대를 내라 요구했다.

1296년 스코틀랜드가 거부하고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다. 「올드 얼라이언스」다.

에드워드가 쳐들어왔다. 베릭을 학살하고, 발리올을 폐위하고, 스코틀랜드 왕의 대관식에 쓰던 「운명의 돌」을 웨스트민스터로 가져갔다.

【어떻게 흘렀나】 1297년 윌리엄 월리스가 일어섰다.

귀족이 아니라 하급 지주 출신이다.

스털링 브리지에서 이겼다. 좁은 다리로 잉글랜드군이 절반쯤 건넜을 때 쳤다. 다리 위에서 대열이 늘어져 서로 도울 수 없었다.

이듬해 폴커크에서 졌다. 잉글랜드의 장궁 때문이었다.

스코틀랜드 창병 방진(실트론)이 화살에 무너졌다. 창은 길지만 화살을 막지 못했다.

월리스가 도망 다니다 1305년 붙잡혔다. 런던에서 반역죄로 재판받았다.

「나는 잉글랜드 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적이 없으므로 반역자가 아니다」라 답했다고 전한다.

목매달고 내려 배를 가르고 사지를 찢는 형에 처해졌다.

【그래서】 로버트 브루스가 이어받았다.

1314년 배넉번에서 잉글랜드군을 깼다. 병력이 세 배 차이였다.

늪지대로 유인하고, 기병이 움직이지 못하게 구덩이를 파 두었다.

1320년 「아브로스 선언」을 교황에게 보냈다.

「우리가 싸우는 것은 영광이나 부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유를 위해서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목숨과 함께가 아니면 결코 내놓지 않을 그 자유 말이다.」

1328년 잉글랜드가 독립을 인정했다.

【남은 것】 그 뒤에도 여러 번 부딪쳤다.

1603년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을 겸하게 됐다. 정복이 아니라 상속으로 합쳐졌다.

1707년 두 의회가 합쳐 그레이트브리튼이 됐다.

「운명의 돌」은 1996년에야 스코틀랜드로 돌아갔다. 700년 만이다.

2014년 독립 주민투표가 있었다. 55 대 45로 부결됐다.

아브로스 선언의 그 문장은 지금도 인용된다.

지도에서 보기: 1279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바익당강 전투 여몽연합군 일본원정 겐코의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