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민족의 침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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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청동기의 붕괴

해양 민족의 이동과 함께 여러 왕국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2건

트로이 전쟁BC 1250 – BC 1180
미케네 연합 vs 트로이

호메로스는 헬레네를 이유로 들지만, 흑해로 드나드는 다르다넬스 해협의 통행세가 실제 다툼거리였으리라 본다.

트로이 공방

결과히사를리크 언덕 발굴에서 BC 1180년경 불탄 층이 나왔다. 신화가 통째로 사실은 아니어도 바탕이 된 파괴는 실재했다.

전설과 지층이 겹치는 드문 전쟁
바다민족의 침입BC 1200 – BC 1150
이집트·히타이트·우가리트 vs 바다민족

가뭄과 기근으로 지중해 각지의 집단이 배를 타고 이동했다. 침략군이 아니라 가족과 가재도구를 실은 이주 행렬이었다.

젤레 하구 해전 BC 1175

결과히타이트와 우가리트는 지워졌고 이집트는 막아냈으나 국력을 잃었다. 청동기 세계 전체가 이 50년에 무너졌다.

문명 여럿이 한꺼번에 소멸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해당 없음

그 무렵의 사건

BC 1200
올메크
아메리카 최초의 문명이 거대한 두상을 남겼다.
산로렌소와 라벤타에 20톤짜리 현무암 두상이 서 있다. 채석장이 80km 밖이라 바퀴도 가축도 없이 옮겼다는 뜻이다. 마야와 아즈텍의 달력·구기 경기·재규어 신앙이 여기서 시작된다.
BC 1200
라피타의 항해
별과 파도만 보고 태평양으로 나갔다.
특유의 무늬 토기를 남긴 라피타 사람들이 비스마르크 제도에서 피지·통가·사모아까지 퍼졌다. 나침반 없이 수천 km를 항해했고, 훗날 폴리네시아인이 되어 하와이와 뉴질랜드, 이스터섬까지 간다.
BC 1177
바다민족
이름 모를 무리가 지중해 동부를 쓸었다.
이집트 기록에 「바다에서 온 사람들」로 남았다. 배에 가족과 소를 싣고 왔다는 부조가 있어 침략보다 이주에 가까웠다. 람세스 3세가 겨우 막아냈지만 이집트도 이후 회복하지 못했다.
BC 1259
최초의 평화조약
이집트와 히타이트가 문서로 전쟁을 끝냈다.
카데시 이후 16년, 두 제국이 상호 불가침과 범죄인 인도를 약속했다. 이집트어판과 히타이트어판이 모두 남아 있고 내용이 일치한다. 복제본이 유엔 본부에 걸려 있다.

교역로

해당 없음

바다민족의 침입

전쟁 · BC 1200 · 문명 여럿이 한꺼번에 무너진 50년

가뭄과 기근으로 지중해 각지의 집단이 배를 타고 이동했다. 침략군이 아니라 가족과 가재도구를 실은 이주 행렬이었다. 히타이트와 우가리트는 지워졌고 이집트는 막아냈으나 국력을 잃었다. 청동기 세계 전체가 이 50년에 무너졌다.

【그때 그 자리】 BC 1200년 무렵이다. 동지중해에 여러 나라가 얽혀 있었다.

이집트·히타이트·미케네·우가리트·키프로스가 사절과 선물과 구리와 주석을 주고받았다.

청동을 만들려면 구리와 주석이 있어야 하는데, 주석은 멀리서 와야 했다. 무역이 끊기면 무기도 농기구도 못 만든다.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 강점이자 약점이었다.

【왜 그렇게 됐나】 BC 1200~1150년 사이에 거의 모든 것이 무너졌다.

히타이트 제국이 사라졌다. 수도 하투샤가 불탔다.

미케네의 궁전들이 모두 파괴됐다. 그리스가 문자를 잃었다 — 선문자 B가 끊기고, 400년 뒤 알파벳이 들어올 때까지 글이 없다.

우가리트가 지워졌다. 그 도시의 마지막 편지가 가마 안에서 구워진 채 발견됐다.

「적의 배들이 왔습니다. 그들이 우리 도시를 불태우고 우리 땅에 몹쓸 짓을 했습니다. (…) 우리 군대는 히타이트 땅에, 우리 배는 리키아에 있습니다. 나라가 홀로 남았습니다.」

【어떻게 흘렀나】 이집트만 버텼다.

람세스 3세가 BC 1177년 나일 삼각주에서 막았다. 메디네트 하부 신전 벽에 그 전투가 새겨져 있다.

육상전과 해전이 함께 그려져 있다. 소달구지에 여자와 아이를 싣고 오는 무리도 있다 — 군대가 아니라 이주민의 모습이다.

이집트가 그들을 「바다에서 온 사람들」이라 적었다. 펠레세트·셰르덴·셰켈레시 같은 이름이 나온다.

그 「펠레세트」가 뒤에 팔레스타인 해안에 정착한 블레셋인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팔레스타인」이라는 지명이 여기서 왔다.

【그래서】 오래 「바다민족의 침입」이 원인으로 설명됐다.

지금은 그들이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견해가 강하다.

여러 가지가 겹쳤다. 나이테와 꽃가루 분석에서 이 시기에 300년 가까운 가뭄이 확인된다. 지진이 잇따랐다는 증거도 있다.

흉년으로 사람들이 움직였고, 무역이 끊기자 청동을 못 만들었으며, 중앙 궁전이 배급을 못 하자 체제가 무너졌다.

밀려난 사람들이 다시 다른 곳을 밀었다. 연쇄였다.

【남은 것】 청동기가 끝나고 철기가 왔다. 주석을 멀리서 들여와야 하는 청동과 달리, 철광석은 어디에나 있었다.

역설적으로 무역망이 끊긴 것이 철기를 퍼뜨렸다.

궁전이 사라진 자리에 작은 나라들이 섰다. 이스라엘·페니키아 도시국가·그리스 폴리스가 그 뒤에 나온다.

무너지는 문명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동시에 무너진 드문 사례다. 지금 기후와 공급망을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된다.

지도에서 보기: BC 15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