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아인의 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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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청동기의 붕괴

해양 민족의 이동과 함께 여러 왕국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1건

도리아인의 남하BC 1100 – BC 1050
도리아계 vs 미케네 잔존 세력

미케네 궁전이 무너진 뒤 북쪽에서 그리스어를 쓰는 집단이 펠로폰네소스로 내려왔다.

펠로폰네소스 정착

결과정복인지 이주인지 지금도 논쟁이다. 결과로 스파르타 등 도리아계 폴리스가 자리 잡고, 이오니아계는 소아시아로 건너갔다.

암흑기의 인구 이동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해당 없음

그 무렵의 사건

BC 1050
페니키아 알파벳
서기관의 독점이 22자로 깨졌다.
쐐기문자는 수백 자, 상형문자도 수백 자였다. 페니키아인은 자음 22자로 줄였고, 상인이라면 며칠이면 배웠다. 그리스인이 여기에 모음을 더해 오늘날 우리가 쓰는 알파벳이 됐다.
BC 1046
목야 전투
천명이 옮겨간다는 논리가 태어났다.
주 무왕이 상 주왕을 쳤다. 주는 「하늘이 덕 없는 왕에게서 명을 거둬 갔다」는 천명 사상으로 왕조 교체를 정당화했고, 이 논리가 이후 3,000년 동아시아 정치의 문법이 된다.

교역로

해당 없음

도리아인의 남하

전쟁 · BC 1100 · 그리스가 글을 잃은 400년

미케네 궁전이 무너진 뒤 북쪽에서 그리스어를 쓰는 집단이 펠로폰네소스로 내려왔다. 정복인지 이주인지 지금도 논쟁이다. 결과로 스파르타 등 도리아계 폴리스가 자리 잡고, 이오니아계는 소아시아로 건너갔다.

【그때 그 자리】 BC 12세기다. 미케네 문명이 무너졌다.

그 전까지 그리스에는 궁전 국가들이 있었다. 미케네·티린스·필로스·크노소스다.

왕이 창고를 관리하고 배급했다. 선문자 B로 양과 기름과 사람을 기록했다.

그 궁전들이 BC 1200년 무렵 한꺼번에 불탔다.

【왜 그렇게 됐나】 고대 그리스인들은 「헤라클레스 후손들의 귀환」이라 설명했다.

북쪽 도리아계 사람들이 남쪽으로 내려와 펠로폰네소스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근대 학자들이 그것을 「도리아인의 침입」으로 정리했다.

지금은 의심받는다. 대규모 침입을 보여 주는 고고학 증거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종류의 유물이 한꺼번에 들어온 흔적이 없다.

대신 이렇게 본다. 청동기 붕괴로 궁전 체제가 안에서 무너졌고, 그 뒤 인구가 이동했으며, 방언 분포가 재편됐다는 것이다.

결과로서의 도리아 방언권은 분명하다. 스파르타·크레타·로도스가 도리아 방언을 썼다.

【어떻게 흘렀나】 그 뒤 400년을 「암흑기」라 부른다.

문자가 사라졌다. 선문자 B로 쓴 점토판이 BC 1200년 이후 나오지 않는다.

인구가 줄었다. 유적지 수가 크게 감소한다.

무덤이 작아지고 부장품이 초라해진다. 궁전 벽화나 큰 건축이 사라진다.

교역이 끊겼다. 수입 물품이 유적에서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 시기에 철기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에게해 건너 소아시아 해안으로 이주했다 — 이오니아다.

【그래서】 BC 8세기에 회복이 시작된다.

페니키아 문자를 빌려 알파벳을 만들었다. 자음만 있던 문자에 모음을 넣었다.

그 알파벳으로 처음 적힌 것 가운데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있다. 400년 동안 노래로만 전해지던 것이 글이 됐다.

폴리스가 생겼다. 왕이 없는 도시, 시민이 모여 결정하는 구조다.

궁전이 사라졌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해석이 있다. 왕이 모든 것을 관리하던 체제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은 것】 스파르타가 스스로를 도리아인의 후손으로 여겼다.

정복자의 후손이라는 자의식이 그 나라의 구조를 설명한다. 헤일로타이라는 예속민이 농사를 짓고 스파르타 시민은 군사 훈련만 했다.

19세기 유럽에서 이 「도리아인 남하」가 인종 이론에 이용되기도 했다. 그런 해석은 지금 폐기됐다.

지도에서 보기: BC 15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