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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그리스 각지에 도시국가가 섰다. 왕정이 귀족정으로, 다시 참주정과 민주정으로 갈라졌다. 인구가 늘어 흑해와 시칠리아까지 식민시를 세웠다. 같은 무렵 이탈리아에서는 로마가 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운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주 왕실이 힘을 잃자 제후들이 「왕을 받든다」는 명분으로 서로를 쳤다. 실제로는 패자 자리를 다툰 것이다.
결과170여 나라가 십여 개로 줄었다. 전쟁이 잦아지자 병법과 외교술이 발달했고, 그 혼란 속에서 공자와 제자백가가 나왔다.
실존 여부조차 확실치 않다. 눈이 멀었다는 전승만 있고, 여러 음유시인의 노래가 한 이름으로 묶였을 수 있다.
남쪽 쿠시의 왕이 북쪽으로 올라가 이집트 전체를 다스렸다. 25왕조를 검은 파라오들이라 부른다. 그들은 이집트를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옛 전통을 되살렸다.
정복지를 속주로 바꾸고 주민을 강제 이주시켜 반란의 뿌리를 뽑았다. 잔혹했지만 효율적이었고, 이후 모든 제국이 이 방식을 참고했다.
해당 없음
인물 · BC 750 ·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는 사람
실존 여부조차 확실치 않다. 눈이 멀었다는 전승만 있고, 여러 음유시인의 노래가 한 이름으로 묶였을 수 있다.
【그때 그 자리】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지은이로 전한다. BC 8세기쯤 사람으로 본다.
그런데 그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눈이 멀었다는 전승이 있고, 태어난 곳을 주장하는 도시가 일곱이다.
【왜 그렇게 됐나】 「호메로스 문제」라 부른다. 한 사람이 쓴 것인가, 여러 사람이 오래 다듬은 것인가.
20세기에 밀먼 패리가 답에 가까이 갔다. 유고슬라비아의 문맹 음유시인들을 녹음해 비교한 것이다.
글을 모르는 사람이 몇 시간짜리 서사시를 부르는 방법이 있었다. 정해진 상투구를 쌓아 가는 것이다 — 「빠른 발의 아킬레우스」, 「장밋빛 손가락의 새벽」, 「포도줏빛 바다」.
「일리아스」에 이런 구절이 수천 개 반복된다. 글로 쓴 문장이 아니라 노래로 쌓은 문장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오랜 구전이 어느 시점에 문자로 정착됐다고 본다. 그 정착에 한 사람의 손이 있었는지가 남은 물음이다.
【어떻게 흘렀나】 「일리아스」는 10년 전쟁 가운데 마지막 해의 51일을 다룬다. 트로이 함락은 나오지도 않는다.
첫 단어가 「분노」다. 아킬레우스가 전리품으로 받은 여자를 총사령관에게 빼앗기고 싸움에서 빠지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마지막 장면은 승리가 아니다. 아들의 시신을 찾으러 온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가 아들을 죽인 아킬레우스의 손에 입 맞추고, 둘이 함께 우는 장면이다.
「오디세이아」는 반대다. 집으로 돌아가는 10년이다. 신도 괴물도 나오지만 결국 아내와 침대와 늙은 개의 이야기다.
【그래서】 트로이는 오래 신화로 여겨졌다. 1870년대 슐리만이 히사를리크 언덕을 파서 실제 도시를 찾았다.
다만 그가 「프리아모스의 보물」이라 부른 것은 훨씬 이른 시대의 것이었다. 층을 마구 뚫어 정작 트로이 전쟁 시기의 층을 상당히 훼손했다.
【남은 것】 그리스인들은 이 두 편으로 글을 배웠다. 알렉산드로스가 「일리아스」를 베개 밑에 두었다.
서양 문학의 첫 두 권이 전쟁의 무의미함과 귀향의 어려움을 다룬다.
지은이가 실재했는지는 여전히 모른다. 이름 하나가 남았고 작품이 2,800년을 갔다.
지도에서 보기: BC 10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피예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