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지도에 표시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틀린 데나 빠진 데를 알려주시면 확인하고 고칩니다.
이 브라우저에만 저장됩니다. 서버로 아무것도 보내지 않습니다.
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프랑스 혁명이 왕정을 무너뜨리고 '국민'이라는 새로운 정치 단위를 만들었다. 나폴레옹이 그 이념을 총검에 실어 유럽 전역에 퍼뜨렸다.
세도정치와 삼정 문란이 겹쳤다. 서양 선박이 연안에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문을 닫아걸었다.
왜하이데르 알리와 아들 티푸 술탄의 마이소르가 프랑스와 손잡고 남인도에서 영국에 맞섰다.
결과네 차례 전쟁 끝에 티푸 술탄이 성벽에서 죽었다. 로켓 부대로 영국군을 놀라게 한 마이소르는 영국의 위성국이 됐다.
왜무굴이 무너진 뒤 인도 중부를 지배하던 마라타 동맹의 내분에 회사가 개입했다.
결과웰즐리(뒷날 웰링턴)가 아사예에서 이기고 세 번째 전쟁으로 동맹이 해체됐다. 이로써 영국은 인도 아대륙의 실질적 지배자가 됐다.
왜혁명 프랑스를 무너뜨리려는 왕정 국가들의 동맹과, 그 포위를 깨려는 나폴레옹의 팽창이 맞물렸다.
결과23년간 유럽 지도가 계속 뒤집혔다. 워털루에서 끝나고 빈 체제가 들어섰다.
왜나폴레옹이 영국의 인도 항로를 끊겠다며 이집트로 갔다.
결과기병 돌격이 방진에 부딪혀 무너졌다. 나폴레옹은 이겼지만 함대를 넬슨에게 잃고 갇혔다. 함께 온 학자 167명이 이집트를 조사했고 그 과정에서 로제타석이 나왔다.
마이소르의 왕으로 네 차례 영국과 싸웠다. 로켓 무기를 실전에 썼고, 그 기술이 영국으로 건너가 콩그리브 로켓이 됐다.
최초의 전지를 만들다
수원 화성에 거중기를 만들어 썼다. 천주교 문제로 18년간 강진에 유배됐고, 그 유배지에서 500권을 썼다.
정수론·통계학·측지학까지 남긴 업적이 방대해 수학자들의 왕이라 불린다.
노예로 태어나 프랑스·에스파냐·영국군을 차례로 물리쳤다. 나폴레옹에게 붙잡혀 알프스 감옥에서 죽었으나 이듬해 아이티가 독립했다.
우두 고름을 접종해 천연두를 막는 첫 백신을 만들었다.
원자설을 세우다
혁명의 이념을 총검에 실어 유럽에 퍼뜨렸다.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국민국가가 자랐다.
트라팔가에서 프랑스·에스파냐 연합함대를 꺾고 전사했다. 영국의 제해권이 굳어졌다.
덕 없는 공포는 해롭고 공포 없는 덕은 무력하다. 혁명을 지키려 단두대를 돌리다 자신도 거기서 죽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시집온 14세 소녀가 사치의 상징이 됐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은 하지 않은 말이지만 민중의 분노는 진짜였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유럽을 울렸고 60년에 걸쳐 「파우스트」를 완성했다. 시인이자 정치가, 과학자였다.
청력을 잃고 유서를 썼지만 「운명」을 목덜미로 붙잡겠다며 일어섰다. 9번 교향곡의 「환희의 송가」는 유럽연합의 노래가 됐다.
정밀한 저울로 연소와 질량 보존을 증명했다. 프랑스 혁명 중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땅은 누구의 것도 아니어서 팔 수 없다고 했다. 흩어진 부족을 하나의 연합으로 묶어 서쪽 확장을 막으려 했다. 1813년 전사하며 그 구상도 끝났다.
기체 속 입자 수의 법칙
스페인, 이어 이 지역을 점령한 브라질(포르투갈)에 맞서 게릴라식 저항운동을 이끌며 우루과이 독립운동의 기틀을 놓았다. 정작 자신은 독립을 보지 못한 채 파라과이로 망명해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다섯 살에 작곡하고 여덟 살에 교향곡을 썼다. 「피가로의 결혼」「돈 조반니」「마술피리」와 미완의 「레퀴엠」을 남기고 빈에서 빈곤 속에 죽었다.
이베리아반도에서 프랑스군을 몰아냈고 워털루에서 프로이센군과 함께 나폴레옹의 마지막 도박을 끝냈다. 뒤에 총리도 지냈다.
나폴레옹 이후의 유럽을 왕정과 세력 균형으로 되돌렸다. 33년간 혁명을 억눌렀으나 1848년 혁명에 쫓겨났다.
아르헨티나에서 군대를 만들어 눈 덮인 안데스를 넘어 칠레를 해방하고 배로 페루로 갔다. 볼리바르와 만난 뒤 지휘권을 넘기고 스스로 유럽으로 떠났다.
평생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우리의 틀로 본다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었다.
임금의 초상을 그리는 화원이면서 씨름하고 서당에서 우는 아이를 그렸다. 그림의 주인공이 왕에서 사람으로 내려온 순간이다.
청에 다녀와 열하일기를 썼다. 오랑캐라 부르던 나라가 실제로는 더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적었다.
던지는 창 대신 짧은 찌르는 창을 쓰게 하고, 소뿔 모양으로 감싸는 진형을 만들었다. 작은 부족을 10년 만에 남아프리카 최강으로 바꿨다.
안데스를 넘어 스페인군의 뒤를 쳤다. 오늘의 베네수엘라·콜롬비아·에콰도르·페루·볼리비아·파나마가 그의 원정에서 나왔다. 하나로 묶으려 했으나 갈라졌다.
오스만의 알바니아계 군인으로 왔다가 실권을 잡았다. 유럽식 군대와 공장과 학교를 들였다. 아시아·아프리카에서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시도한 첫 예로 꼽힌다.
독립을 이끌고 왕이 되기를 거절했다. 두 번의 임기 뒤 스스로 물러났다.
규장각을 세우고 수원 화성을 쌓았다. 탕평으로 붕당을 눌렀다.
「보이지 않는 손」— 각자가 자기 이익을 좇을 때 사회 전체가 부유해진다. 분업과 자유무역을 설명한 이 책이 자본주의의 경전이 됐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썼으면서 노예 600명을 소유했다. 루이지애나를 사들여 나라를 두 배로 넓혔다.
인쇄공에서 시작해 피뢰침을 발명하고 프랑스를 독립전쟁의 동맹으로 끌어들였다. 독립선언과 헌법에 모두 서명한 유일한 인물 중 하나다.
분리 응축기로 증기기관의 효율을 세 배 올렸고 회전 운동으로 바꿔 공장과 기차를 움직였다. 힘의 단위 「와트」가 그의 이름이다.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유럽의 공산품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 유럽. 세 대륙이 하나의 경제로 묶였다.
인물 · 1799 · 로켓을 쏜 마이소르의 호랑이
마이소르의 왕으로 네 차례 영국과 싸웠다. 로켓 무기를 실전에 썼고, 그 기술이 영국으로 건너가 콩그리브 로켓이 됐다.
【그때 그 자리】 18세기 후반 남인도 마이소르다. 영국 동인도회사가 인도를 잠식하던 때다.
아버지 하이데르 알리가 군인으로 시작해 실권을 잡았다. 티푸가 뒤를 이었다.
「마이소르의 호랑이」라 불렸다. 호랑이 무늬를 군복과 왕좌와 무기에 넣었다.
【왜 그렇게 됐나】 영국과 네 차례 싸웠다(마이소르 전쟁).
1780년 폴릴루르에서 영국군을 크게 깼다. 동인도회사가 인도에서 당한 최악의 패배로 꼽힌다.
무기가 달랐다. 쇠통에 화약을 넣은 로켓을 썼다.
그전까지 로켓의 몸통은 종이나 대나무였다. 쇠로 만들자 압력을 더 견뎌 사거리가 2km까지 갔다. 끝에 칼날을 달아 회전하며 날아가게 한 것도 있다.
한 번에 수백 발을 쏘았다. 대열이 흩어지고 말이 놀랐다.
【어떻게 흘렀나】 안으로도 근대화했다. 도로와 관개를 정비하고, 비단 산업을 들여왔으며(지금도 마이소르는 인도 비단의 중심이다), 자체 화폐와 달력을 만들었다.
프랑스와 손잡으려 했다. 오스만과 아프가니스탄에도 사절을 보냈다. 나폴레옹이 이집트로 간 목적 가운데 하나가 그와 잇는 것이었다는 해석이 있다.
영국이 그것을 두려워했다.
1799년 4차 전쟁에서 영국이 마라타·하이데라바드와 손잡고 밀고 들어왔다.
5월 4일 수도 세링가파탐이 함락됐다. 성벽의 무너진 자리에서 싸우다 죽었다. 달아나라는 권유를 거절했다.
「호랑이로 하루를 사는 것이 양으로 백 년을 사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그의 것으로 전한다.
【그래서】 영국군이 로켓 잔해를 수집해 본국으로 보냈다. 윌리엄 콩그리브가 그것을 연구해 콩그리브 로켓을 만들었다.
그 로켓이 1814년 미국 볼티모어 포격에 쓰였다. 그것을 본 사람이 쓴 시가 미국 국가가 된다 — 「로켓의 붉은 섬광」이라는 구절이다.
인도의 무기가 영국을 거쳐 미국 국가의 가사로 들어갔다.
【남은 것】 인도에서 평가가 갈린다.
반영 항쟁의 선구자로 보는 쪽과, 힌두교도와 기독교도를 박해했다는 기록을 드는 쪽이 있다. 사원에 기부한 기록도 함께 남아 있어 논쟁이 정리되지 않았다.
그 논쟁이 지금 인도 정치와 얽혀 교과서 서술이 몇 번 바뀌었다.
그가 만들게 한 태엽 장난감이 런던 V&A 박물관에 있다. 호랑이가 영국 병사를 물어뜯는 모양이고, 손잡이를 돌리면 병사의 신음 소리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