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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빈 체제

혁명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보수적 국제 질서. 열강이 회의로 세력 균형을 관리했지만 그 아래에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가 끓었다.

한반도

조선 후기

세도정치와 삼정 문란이 겹쳤다. 서양 선박이 연안에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문을 닫아걸었다.

전쟁 3건

마라타 전쟁1775 – 1818
영국 동인도회사 vs 마라타 동맹

무굴이 무너진 뒤 인도 중부를 지배하던 마라타 동맹의 내분에 회사가 개입했다.

제1차 전쟁 1775–1782아사예 전투 1803제3차 전쟁 1817–1818페슈와 폐위 1818

결과웰즐리(뒷날 웰링턴)가 아사예에서 이기고 세 번째 전쟁으로 동맹이 해체됐다. 이로써 영국은 인도 아대륙의 실질적 지배자가 됐다.

43년 · 인도 지배 확정
나폴레옹 전쟁1792 – 1815
프랑스 vs 대프랑스 동맹 (영국·오스트리아·러시아·프로이센)

혁명 프랑스를 무너뜨리려는 왕정 국가들의 동맹과, 그 포위를 깨려는 나폴레옹의 팽창이 맞물렸다.

아우스터리츠 1805트라팔가 1805보로디노 1812라이프치히 1813워털루 1815

결과23년간 유럽 지도가 계속 뒤집혔다. 워털루에서 끝나고 빈 체제가 들어섰다.

23년 · 사망자 300만 이상으로 추정
머스킷 전쟁1807 – 1837
마오리 부족 연합들 간의 전쟁

유럽 무역상을 통해 머스킷 총이 들어오면서, 총을 먼저 확보한 부족이 그렇지 못한 이웃 부족을 압도할 수 있게 됐다.

응아푸히족의 원정 1818무기 균형의 확산 1830년대

결과총을 먼저 손에 넣은 응아푸히족이 초기에 크게 우세했으나, 곧 다른 부족들도 총을 구하면서 전쟁이 뉴질랜드 전역으로 번졌다. 인구 이동과 전통적 세력권 재편이 뒤따랐다.

30년 · 마오리 사회 전역에 막대한 인명 피해와 재편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28명

주제 지 산마르틴장군1817 · 안데스를 넘긴 장군
1778 – 1850

아르헨티나에서 군대를 만들어 눈 덮인 안데스를 넘어 칠레를 해방하고 배로 페루로 갔다. 볼리바르와 만난 뒤 지휘권을 넘기고 스스로 유럽으로 떠났다.

  • 안데스 도하 — 5,000명이 4,000m를 넘었다
  • 과야킬 회담 뒤 은퇴
샤카 줄루장군1818 · 줄루를 제국으로 만든 사람
1787 무렵 – 1828

던지는 창 대신 짧은 찌르는 창을 쓰게 하고, 소뿔 모양으로 감싸는 진형을 만들었다. 작은 부족을 10년 만에 남아프리카 최강으로 바꿨다.

  • 이클와 — 짧은 찌르는 창
  • 소뿔 진형
  • 이복동생들에게 살해
시몬 볼리바르장군1819 · 여섯 나라를 떼어 낸 사람
1783 – 1830

안데스를 넘어 스페인군의 뒤를 쳤다. 오늘의 베네수엘라·콜롬비아·에콰도르·페루·볼리비아·파나마가 그의 원정에서 나왔다. 하나로 묶으려 했으나 갈라졌다.

  • 보야카 1819
  • 그란콜롬비아의 결성과 해체
  • 혁명에 헌신한 자는 바다를 간 것이나 같다
웰링턴장군1815 ·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을 꺾은 「철의 공작」
1769 – 1852

이베리아반도에서 프랑스군을 몰아냈고 워털루에서 프로이센군과 함께 나폴레옹의 마지막 도박을 끝냈다. 뒤에 총리도 지냈다.

  • 반도전쟁 — 살라망카·비토리아 승리
  • 워털루 전투 승리(1815)
  • 영국 총리(1828–1830), 가톨릭 해방법
메테르니히정치1815 · 빈 체제를 설계한 반동의 재상
1773 – 1859

나폴레옹 이후의 유럽을 왕정과 세력 균형으로 되돌렸다. 33년간 혁명을 억눌렀으나 1848년 혁명에 쫓겨났다.

  • 빈 회의 주도(1814–1815)
  • 카를스바트 결의 — 언론·대학 통제
  • 1848년 혁명으로 실각·망명
무함마드 알리정치1820 · 근대 이집트를 연 사람
1769 – 1849

오스만의 알바니아계 군인으로 왔다가 실권을 잡았다. 유럽식 군대와 공장과 학교를 들였다. 아시아·아프리카에서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시도한 첫 예로 꼽힌다.

  • 맘루크 학살로 권력 장악
  • 면화 재배와 공장
  • 프랑스에 유학생 파견
테쿰세장군1811 · 부족을 하나로 묶으려 한 사람
1768 무렵 – 1813

땅은 누구의 것도 아니어서 팔 수 없다고 했다. 흩어진 부족을 하나의 연합으로 묶어 서쪽 확장을 막으려 했다. 1813년 전사하며 그 구상도 끝났다.

  • 부족 연합 결성
  • 땅은 팔 수 없다는 논리
  • 템스 전투에서 전사
아보가드로과학1811 · 물리학자
1776 – 1856

기체 속 입자 수의 법칙

  • 아보가드로 가설 1811
  • 분자 개념을 도입
  • 사후 재조명돼 인정받음
호세 아르티가스정치1811 · 우루과이 독립의 아버지
1764 – 1850

스페인, 이어 이 지역을 점령한 브라질(포르투갈)에 맞서 게릴라식 저항운동을 이끌며 우루과이 독립운동의 기틀을 놓았다. 정작 자신은 독립을 보지 못한 채 파라과이로 망명해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 스페인·포르투갈에 맞선 저항운동 지도
  • 토지 개혁 등 급진적 사회 개혁 시도
  • 말년 파라과이 망명, 사후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
괴테예술1808 · 「파우스트」의 시인, 독일 문학의 정점
1749 – 1832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유럽을 울렸고 60년에 걸쳐 「파우스트」를 완성했다. 시인이자 정치가, 과학자였다.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
  •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
  • 「파우스트」(1808·1832), 「색채론」
베토벤예술1808 · 귀먹은 뒤 「합창」을 쓴 작곡가
1770 – 1827

청력을 잃고 유서를 썼지만 「운명」을 목덜미로 붙잡겠다며 일어섰다. 9번 교향곡의 「환희의 송가」는 유럽연합의 노래가 됐다.

  • 교향곡 3번 「영웅」(1804), 5번 「운명」(1808)
  • 하일리겐슈타트 유서(1802) — 난청 고백
  • 교향곡 9번 「합창」(1824)
과학1827 · 물리학자
1789 – 1854

전류·전압·저항의 법칙

  • 옴의 법칙 발표 1827
  • 당대엔 무시당함
  • 전자공학의 기초 법칙
넬슨장군1805 · 영국 제독
1758 – 1805

트라팔가에서 프랑스·에스파냐 연합함대를 꺾고 전사했다. 영국의 제해권이 굳어졌다.

  • 나일 해전 1798
  • 트라팔가 승리 1805
  • 그 전투에서 전사
나폴레옹장군1804 · 프랑스 황제
1769 – 1821

혁명의 이념을 총검에 실어 유럽에 퍼뜨렸다.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국민국가가 자랐다.

  • 아우스터리츠 대승 1805
  • 나폴레옹 법전
  • 러시아 원정 실패와 몰락
라이엘과학1830 · 지질학자
1797 – 1875

동일과정설을 세우다

  • 지질학 원리 저술 1830
  • 동일과정설 확립
  • 다윈에게 큰 영향을 줌
패러데이과학1831 · 제본소 견습공 출신 실험가
1791 – 1867

정규 교육 없이 독학해 전자기유도를 발견했다. 그의 실험을 맥스웰이 방정식으로 완성한다.

  • 전자기유도 발견 1831
  • 발전기 원리의 토대
  • 왕립학회 크리스마스 강연 창시
돌턴과학1803 · 화학자
1766 – 1844

원자설을 세우다

  • 근대 원자설 제창 1803
  • 일정 성분비 법칙 설명
  • 색맹을 스스로 연구
정약용사상1801 · 실학을 모은 사람
1762 – 1836

수원 화성에 거중기를 만들어 썼다. 천주교 문제로 18년간 강진에 유배됐고, 그 유배지에서 500권을 썼다.

  • 거중기 — 수원 화성 공사
  • 목민심서·경세유표·흠흠신서
  • 18년 유배 중에 500여 권 저술
가우스과학1801 · 수학자들의 왕
1777 – 1855

정수론·통계학·측지학까지 남긴 업적이 방대해 수학자들의 왕이라 불린다.

  • 정수론 연구 1801
  • 정규분포·최소제곱법
  • 세레스 궤도 계산으로 명성
투생 루베르튀르정치1801 · 노예 반란을 승리로 이끈 아이티 혁명의 지도자
1743 – 1803

노예로 태어나 프랑스·에스파냐·영국군을 차례로 물리쳤다. 나폴레옹에게 붙잡혀 알프스 감옥에서 죽었으나 이듬해 아이티가 독립했다.

  • 생도맹그 노예 반란 지휘(1791–)
  • 프랑스 총독으로 노예제 폐지 관철
  • 1801년 헌법, 나폴레옹에게 체포
볼타과학1800 · 물리학자
1745 – 1827

최초의 전지를 만들다

  • 볼타 전지 발명 1800
  • 동물전기설을 반박
  • 전압 단위 볼트의 유래
티푸 술탄장군1799 · 영국에 끝까지 맞선 사람
1751 – 1799

마이소르의 왕으로 네 차례 영국과 싸웠다. 로켓 무기를 실전에 썼고, 그 기술이 영국으로 건너가 콩그리브 로켓이 됐다.

  • 마이소르 전쟁 네 차례
  • 금속통 로켓 — 영국이 베껴 감
  • 1799년 세링가파탐에서 전사
배비지과학1837 · 수학자·발명가
1791 – 1871

기계식 컴퓨터를 구상하다

  • 차분기관 설계
  • 해석기관 구상 1837
  • 에이다 러브레이스와 협업
제너과학1796 · 백신을 처음 만든 의사
1749 – 1823

우두 고름을 접종해 천연두를 막는 첫 백신을 만들었다.

  • 첫 백신 접종 실험 1796
  • 백신(vaccine)이라는 말을 만듦
  • 1980년 천연두 박멸의 시작점
로베스피에르정치1793 · 공포정치를 이끈 「부패할 수 없는 자」
1758 – 1794

덕 없는 공포는 해롭고 공포 없는 덕은 무력하다. 혁명을 지키려 단두대를 돌리다 자신도 거기서 죽었다.

  • 자코뱅 지도자, 국왕 처형 주도(1793)
  • 공안위원회 — 공포정치(1793–1794)
  •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처형
마리 앙투아네트정치1793 · 단두대에서 죽은 프랑스의 마지막 왕비
1755 – 1793

오스트리아에서 시집온 14세 소녀가 사치의 상징이 됐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은 하지 않은 말이지만 민중의 분노는 진짜였다.

  • 루이 16세와 결혼(1770)
  • 목걸이 사건(1785), 바렌 도주(1791)
  • 혁명재판소에서 처형(1793)
에이다 러브레이스과학1843 · 최초의 프로그램을 쓴 사람
1815 – 1852

작동한 적 없는 계산 기계를 위한 절차를 최초로 적어 남겼다.

  • 해석기관 주석 집필 1843
  • 최초의 알고리즘 기록
  • 프로그래밍 언어 Ada의 이름
과학1843 · 물리학자
1818 – 1889

일이 열로 바뀐다는 것을 재다

  • 에너지 보존 법칙의 실험적 증명
  • 열의 일당량 측정
  • 에너지 단위 줄의 유래

그 무렵의 사건

1815
빈 회의
나폴레옹 이후 유럽 지도를 다시 그린 회의. 정통성과 세력 균형으로 40년 평화를 만들었다.
메테르니히가 주재하고 탈레랑이 패전국 프랑스를 대변했다. 왕들은 무도회를 열며 협상했고 — 「회의는 춤춘다」 — 나폴레옹의 백일천하 소식에 서둘러 마무리했다. 프랑스는 혁명 이전 국경으로, 폴란드는 러시아에, 라인란트는 프로이센에 갔고 독일연방이 만들어졌다.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는 억눌렸지만 강대국 전쟁은 크림 전쟁까지 없었다.
1815
탐보라 화산 폭발
기록상 최대의 화산 폭발. 이듬해 지구에 「여름 없는 해」가 왔다.
4월 인도네시아 숨바와섬의 탐보라가 산 높이의 3분의 1을 날려 버렸다. 화산재로 인근에서 1만 명이 즉사하고 기근과 병으로 7만 명이 죽었다. 성층권의 황산 에어로졸이 지구 기온을 낮춰 1816년 유럽과 북미에 여름 서리와 흉작이 들었다. 제네바 호숫가에 갇힌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썼고, 말 사료가 부족해지자 드라이스가 자전거의 원형을 만들었다.
1821
페루 독립
1821년, 아르헨티나 출신 혁명가 산마르틴이 리마에서 페루의 독립을 선포했다.
이후 북쪽에서 내려온 시몬 볼리바르의 군대가 스페인 왕당파 잔존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며 독립을 완성했다(1824년 아야쿠초 전투).
1822
브라질 독립
1822년 9월 7일, 포르투갈 왕자 동 페드루가 이피랑가 강변에서 브라질의 독립을 선언했다.
다른 라틴아메리카 나라들과 달리 오랜 전쟁 없이 왕실 인사가 그대로 독립국의 황제가 된 특이한 경우다. 포르투갈 왕실은 나폴레옹의 침공을 피해 브라질로 아예 수도를 옮겼던 전력이 있었다.
1811
우루과이 독립
호세 아르티가스가 이끈 저항운동을 시작으로, 우루과이는 스페인과 브라질(포르투갈), 아르헨티나 사이에서 여러 차례 지배자가 바뀌는 긴 과정 끝에 1828년 독립국이 됐다.
우루과이가 위치한 땅은 아르헨티나(부에노스아이레스)와 브라질 양쪽 모두가 탐내는 완충지대였다. 아르티가스는 스페인에 이어 이 지역을 점령한 브라질(포르투갈)에도 맞서 싸웠으나 끝내 독립을 보지 못하고 파라과이로 망명해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그의 사후, 영국의 중재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우루과이를 양국 사이의 독립 완충국으로 남겨두는 데 합의하면서 1828년 독립이 이뤄졌다.
1811
홍경래의 난
세도정치의 폐단과 서북 지역민에 대한 차별에 반발해, 홍경래가 이끄는 봉기군이 평안도 일대를 한때 장악했다.
세도정치 시기 삼정의 문란으로 백성의 삶이 피폐해진 가운데, 평안도(서북) 지역은 조선 정부의 오랜 지역 차별로 과거 급제자가 있어도 요직에 오르지 못하는 등 불만이 특히 컸다. 몰락 양반 출신 홍경래는 우군칙 등과 함께 광산 노동자, 상인, 빈농 등을 규합해 1811년 봉기를 일으켰다. 봉기군은 초반 기세를 몰아 정주성을 비롯한 평안도 여러 고을을 순식간에 장악했지만, 관군의 반격에 밀려 정주성에서 넉 달간 농성하다 결국 진압되었고 홍경래도 전투 중 사망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이 봉기는 세도정치의 구조적 모순을 정면으로 드러내며, 이후 임술농민봉기 등 19세기 전국적 민란의 선구가 되었다.

교역로 2개

희망봉 항로1500 – 1900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오간 것후추와 면직물, 그리고 나중엔 차와 아편. 지중해를 거치지 않는 길이 베네치아와 오스만을 밀어냈다.
거점리스본 · 카나리아 · 희망봉 · 모잠비크 · 고아 · 말라카
대서양 삼각무역1600 – 1850

유럽의 공산품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 유럽. 세 대륙이 하나의 경제로 묶였다.

오간 것유럽의 총기·직물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1,200만 명이 대서양을 건넜다.
거점리버풀 · 리스본 · 기니만 · 카리브 · 버지니아

주제 지 산마르틴

인물 · 1817 · 이기고 물러난 해방자

아르헨티나에서 군대를 만들어 눈 덮인 안데스를 넘어 칠레를 해방하고 배로 페루로 갔다. 볼리바르와 만난 뒤 지휘권을 넘기고 스스로 유럽으로 떠났다.

【그때 그 자리】 1778년 지금의 아르헨티나에서 났다. 일곱 살에 에스파냐로 가 그곳 군인이 됐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20년 넘게 에스파냐 편으로 싸웠다.

1812년 모든 것을 버리고 돌아왔다. 서른넷이었다.

【왜 그렇게 됐나】 남아메리카 독립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가 본 판이 남달랐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페루로 곧장 북상하는 것은 어렵다고 보았다 — 에스파냐군의 중심이 페루의 리마인데, 그 사이에 안데스 고원이 있었다.

그래서 다른 길을 짰다. 먼저 안데스를 서쪽으로 넘어 칠레를 해방하고, 거기서 배를 타고 바다로 페루를 친다는 것이다.

【어떻게 흘렀나】 멘도사에서 2년을 준비했다. 지역 전체를 동원해 대포와 화약과 신발과 담요를 만들었다.

1817년 안데스를 넘었다. 병력 5천에 노새 1만 마리, 소 1,600마리다.

해발 4,000m가 넘는 고개 여럿을 동시에 넘었다. 3주가 걸렸고 노새의 절반과 말의 대부분이 죽었다.

적을 속이려 여러 경로로 나눠 보내고, 일부러 거짓 정보를 흘렸다.

차카부코에서 이겼고, 이듬해 마이푸에서 칠레 독립을 굳혔다. 칠레 통치를 오이긴스에게 맡기고 자신은 받지 않았다.

1820년 함대를 꾸려 페루로 갔다. 1821년 리마에 들어가 페루 독립을 선포했다.

【그래서】 1822년 과야킬에서 볼리바르를 만났다.

둘만 네 시간 이야기했다. 기록이 없다.

회담 뒤 산마르틴이 모든 직위를 내려놓고 남아메리카를 떠났다.

무엇이 오갔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군주제를 두자는 그와 공화제를 주장한 볼리바르가 갈렸다는 설,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내전이 난다고 판단했다는 설이 있다.

「내 앞에는 두 길이 있었다. (…) 나는 조국이 나 때문에 갈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남은 것】 프랑스로 가서 27년을 살다 1850년 죽었다.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아르헨티나·칠레·페루 세 나라가 그를 함께 기린다. 「해방자(엘 리베르타도르)」다.

볼리바르는 이름을 딴 나라를 남겼고 산마르틴은 남기지 않았다.

이길 수 있는 자리에서 물러난 사례로 오래 인용된다.

지도에서 보기: 1815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샤카 줄루 시몬 볼리바르 웰링턴 메테르니히 무함마드 알리 테쿰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