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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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대항해와 인쇄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바닷길을 열어 아메리카를 유럽 경제에 편입시켰다. 인쇄술이 종교개혁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들었다.

한반도

조선 전기

성리학을 국시로 삼은 새 왕조. 훈민정음과 측우기의 시대이자 사림과 훈구가 다투던 때다.

전쟁 1건

이탈리아 전쟁1494 – 1559
프랑스 vs 합스부르크·스페인

부유하고 분열된 이탈리아를 두고 프랑스와 합스부르크가 65년을 다퉜다.

포르노보 1495파비아 1525로마 약탈 1527

결과화약·상비군·용병이 결합한 근대 전쟁의 실험장이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이 혼란 속에서 쓰였고,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이 전쟁으로 끝났다.

65년 · 근대 전쟁의 시작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15명

이반 4세정치1547 · 처음으로 차르를 칭한 사람
1530 – 1584

카잔과 아스트라한을 정복하고 시베리아 진출을 시작했다. 동시에 친위 조직을 만들어 귀족을 학살했고, 화가 나 자기 아들을 때려 죽였다.

  • 1547년 차르 즉위
  • 카잔 정복 — 성 바실리 대성당
  • 오프리치니나 — 귀족 학살
코페르니쿠스과학1543 · 해를 가운데 놓은 사람
1473 – 1543

폴란드의 성직자이자 천문학자였다. 죽는 해에야 책을 냈다. 지구가 도는 편이 계산이 훨씬 단순하다는 것이 그의 근거였다.

  •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 죽기 직전 출판
  • 갈릴레이와 케플러가 이 위에서 시작했다
베살리우스과학1543 · 직접 해부한 해부학자
1514 – 1564

시신을 직접 해부해 갈레노스 이래 1,300년 된 오류를 바로잡았다.

  •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 1543
  • 근대 해부학 확립
  • 순례길에 조난해 객사
칼뱅사상1541 · 제네바를 개신교의 로마로 만든 종교개혁가
1509 – 1564

예정설과 엄격한 교회 규율. 그의 가르침은 네덜란드·스코틀랜드·뉴잉글랜드로 퍼져 근대 서구의 정신을 만들었다.

  • 「기독교 강요」(1536)
  • 제네바 교회 개혁과 신정 통치
  • 장로교·개혁교회의 뿌리
신사임당예술1540 · 조선의 화가
1504 – 1551

풀과 벌레를 그렸다. 당시 여성의 그림이 남은 것 자체가 드물다. 아들 이이를 길렀다는 것으로만 기억되는 것이 오래된 문제다.

  • 초충도 — 풀과 벌레
  • 시와 글씨와 그림에 모두 능함
  • 친정에서 오래 지내며 작품을 남겼다
이황사상1560 · 조선 성리학을 집대성한 대학자(퇴계)
1501 – 1570

이(理)를 중심에 둔 주리론을 세워 조선 성리학의 이론적 틀을 완성했다. 도산서원에서 후학을 길렀다.

  • 「성학십도」 저술
  • 주리론 정립, 사단칠정 논쟁
  • 도산서원에서 후학 양성
헨리 8세정치1534 · 이혼 문제로 영국 교회를 로마에서 떼어 낸 왕
1491 – 1547, 재위 1509 – 1547

여섯 번 결혼하고 두 왕비를 처형했다. 교황이 이혼을 거부하자 스스로 영국 교회의 수장이 됐다.

  • 수장령(1534) — 영국 국교회 성립
  • 수도원 해산과 재산 몰수
  • 왕비 앤 불린·캐서린 하워드 처형
피사로장군1533 · 잉카 제국을 정복한 문맹의 정복자
1478 무렵 – 1541

168명으로 카하마르카에서 황제 아타우알파를 사로잡고 방 하나 가득한 금을 받은 뒤 죽였다. 쿠스코가 무너지고 리마가 세워졌다.

  • 카하마르카에서 아타우알파 생포(1532)
  • 쿠스코 점령(1533), 리마 건설(1535)
  • 정복자들 내분 중 암살
아타우알파정치1532 · 금으로 방을 채운 왕
1502 무렵 – 1533

형과 5년을 싸워 이긴 직후 168명의 에스파냐인에게 사로잡혔다. 몸값으로 방 하나를 금으로, 두 개를 은으로 채웠는데도 죽임을 당했다.

  • 카하마르카에서 사로잡힘
  • 몸값을 다 치르고도 처형
  • 그의 죽음으로 잉카가 무너졌다
카를 5세정치1530 · 「해가 지지 않는」 첫 제국을 다스린 황제
1500 – 1558, 재위 1519 – 1556

에스파냐·네덜란드·오스트리아·나폴리·신대륙을 한 손에 쥐었다. 루터를 심문했고 프랑스와 오스만과 싸우다 지쳐 수도원으로 물러났다.

  • 보름스 국회에서 루터 심문(1521)
  • 파비아에서 프랑스 왕 생포(1525)
  • 제국을 두 갈래로 나누고 퇴위
술레이만 대제정치1529 · 오스만 제국의 절정을 이끈 「입법자」
1494 – 1566, 재위 1520 – 1566

베오그라드와 로도스를 취하고 빈을 포위했다. 법전을 정비하고 이스탄불을 건축으로 채워 튀르크인은 그를 카누니(입법자)라 부른다.

  • 모하치 승리, 헝가리 정복(1526)
  • 빈 포위(1529)
  • 쉴레이마니예 모스크, 오스만 법전 정비
바부르정치1526 · 무굴을 세운 사람
1483 – 1530

티무르와 칭기즈 칸의 피를 함께 받았다. 사마르칸트를 되찾으려다 실패하고 카불로 밀려났다가 인도로 내려갔다. 회고록을 직접 썼다.

  • 파니파트 승리
  • 바부르나마 — 왕이 직접 쓴 회고록
  • 인도의 더위와 과일에 대해 솔직하게 적었다
구스타브 바사정치1523 · 칼마르 동맹을 깨고 스웨덴을 독립시킨 왕
1496 – 1560, 재위 1523 – 1560

덴마크가 주도하던 칼마르 동맹에 맞서 반란을 이끌었다. 1523년 스웨덴 왕으로 추대되며 근대 스웨덴 왕국의 시조가 됐다.

  • 스톡홀름 피바다 이후 반란 주도
  • 1523년 스웨덴 독립·즉위
  • 바사 왕조를 열어 이후 100여 년간 이어짐
콰우테목장군1521 · 마지막까지 싸운 사람
1496 무렵 – 1525

스물다섯에 아즈텍의 마지막 지도자가 되어 80일 포위를 버텼다. 금을 어디 숨겼느냐며 발을 불에 지지는 고문을 받았다. 지금 멕시코에서 저항의 상징이다.

  • 테노치티틀란 80일 농성
  • 고문 끝에도 말하지 않음
  • 1525년 교수형
코르테스장군1521 · 아즈텍 제국을 무너뜨린 정복자
1485 – 1547

수백 명의 병사와 원주민 동맹, 천연두로 테노치티틀란을 함락했다. 아즈텍은 무너지고 그 자리에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이 세워졌다.

  • 베라크루스 상륙, 배를 불태움(1519)
  • 틀락스칼라 동맹, 목테수마 억류
  • 테노치티틀란 함락(1521)

그 무렵의 사건

1565
몰타 대공방전
1565년, 오스만 제국의 대함대가 지중해의 전략 요충지 몰타섬을 공격했으나, 소수의 성 요한 기사단이 넉 달에 걸친 포위를 끝내 막아냈다.
오스만 제국은 지중해 패권을 굳히기 위해 몰타를 근거지로 삼은 기독교 기사단(구호기사단)을 뿌리 뽑으려 대규모 원정군을 보냈다. 병력에서 크게 밀렸던 기사단은 요새를 사수하며 끈질기게 버텼고, 결국 지원군이 도착하자 오스만군은 막대한 손실을 입고 물러났다. 이 승리는 유럽 기독교 세계에 오스만의 진격을 저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고, 6년 뒤 레판토 해전 승리로 이어지는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527
마자파힛
동남아 최대 해상제국이 내분과 이슬람화로 저물었다
가자 마다 재상 시절 오늘날 인도네시아 대부분을 아우르는 해상 세력권을 이뤘던 마자파힛은 15세기 후반 왕위 계승 다툼과 이슬람 항구 도시국가들의 성장으로 쇠퇴했다. 1527년 드막 술탄국이 마지막 수도를 함락하며 사실상 소멸했다.
1526
대서양 노예무역
16~19세기,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약 1,250만 명이 강제로 끌려갔다.
포르투갈이 1526년 첫 직항 노예선을 아메리카로 보낸 뒤 약 350년간 이어졌다. 유럽에서 무기·직물을 아프리카로, 노예를 아메리카로, 설탕·면화를 다시 유럽으로 나르는 삼각무역의 한 축이었다. 항해 중 사망률이 10~15%에 달했다.
1523
칼마르 동맹
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를 하나로 묶었던 동맹이 무너졌다
1397년 세 스칸디나비아 왕국이 한 왕을 섬기기로 맺은 칼마르 동맹은 덴마크가 사실상 주도권을 쥐면서 스웨덴 귀족들의 불만을 샀다. 1520년 덴마크의 스웨덴인 대학살(스톡홀름 피바다) 이후 구스타브 바사가 반란을 이끌어 1523년 스웨덴을 독립시키며 동맹이 사실상 끝났다.
1522
마젤란의 세계일주
마젤란 함대의 마지막 배 빅토리아호가 3년 만에 세비야로 돌아왔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몸으로 증명됐다.
1519년 다섯 척 270명이 떠나 남미 끝 해협을 찾았고, 석 달 넘게 육지 없는 바다를 건너 「태평양」이라 이름 붙였다. 마젤란은 필리핀 막탄에서 죽었고 엘카노가 한 척을 이끌고 인도양과 희망봉을 돌았다. 돌아온 18명은 날짜가 하루 어긋난 것을 발견했다. 실은 향료로 항해 비용을 뽑았지만 에스파냐는 향료 제도를 포르투갈에 팔았다.
1575
붕당의 형성
선조 때 사림이 정계를 장악한 뒤, 이조 전랑 임명 문제를 둘러싸고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지며 붕당 정치가 시작되었다.
여러 사화를 거치면서도 꾸준히 세력을 키운 사림은 선조 즉위 이후 마침내 훈구파를 밀어내고 중앙 정계를 완전히 장악했다. 그러나 정권을 잡은 사림은 이조 전랑(인사 실무를 담당하는 요직) 임명을 둘러싼 갈등을 계기로, 1575년 김효원을 지지하는 동인과 심의겸을 지지하는 서인으로 나뉘었다(붕당의 시작). 동인은 다시 정여립 모반 사건 처리를 둘러싸고 강경파인 북인과 온건파인 남인으로 갈라졌다. 붕당은 처음에는 학문적 입장과 정책 노선의 차이에서 비롯된 정치 집단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며 상대 붕당을 배척하는 당쟁으로 흐르는 경우도 잦아, 이후 조선 후기 정치사의 큰 흐름을 이루게 된다.

교역로 1개

희망봉 항로1500 – 1900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오간 것후추와 면직물, 그리고 나중엔 차와 아편. 지중해를 거치지 않는 길이 베네치아와 오스만을 밀어냈다.
거점리스본 · 카나리아 · 희망봉 · 모잠비크 · 고아 · 말라카

이반 4세

인물 · 1547 · 차르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

카잔과 아스트라한을 정복하고 시베리아 진출을 시작했다. 동시에 친위 조직을 만들어 귀족을 학살했고, 화가 나 자기 아들을 때려 죽였다.

【그때 그 자리】 세 살에 모스크바 대공이 됐다. 여덟 살에 어머니가 독살됐고, 귀족들이 궁에서 서로 죽이는 것을 보며 자랐다.

1547년 열여섯에 대관식을 하며 「차르」를 칭했다. 카이사르에서 온 말로, 황제라는 뜻이다.

콘스탄티노플이 무너진 뒤 모스크바가 「제3의 로마」라는 논리가 여기 깔려 있다.

【왜 그렇게 됐나】 초기 15년은 개혁기였다. 법전을 정비하고 지방 자치를 넓히고 전국회의(젬스키 소보르)를 열었다.

카잔과 아스트라한을 정복해 볼가강 전체를 얻었다. 시베리아로 가는 길이 열렸다.

【어떻게 흘렀나】 1560년 아내 아나스타샤가 죽자 달라졌다. 독살당했다고 믿었다.

1565년 나라를 둘로 나눴다. 오프리치니나 — 자기가 직접 다스리는 땅과 나머지다.

검은 옷을 입고 개 머리와 빗자루를 안장에 단 오프리치니키를 두었다. 반역자를 물어뜯고 쓸어 낸다는 뜻이다.

귀족을 죽이고 땅을 빼앗았다. 1570년 노브고로드가 반역했다는 소문에 도시를 쳐 수천 명을 죽였다.

【그래서】 1581년 아들 이반을 지팡이로 때려죽였다. 며느리의 옷차림을 꾸짖다 아들이 말리자 벌어진 일이다.

레핀의 그림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이 그 장면이다. 아들의 머리를 안고 있는 아버지의 눈이 그림의 전부다.

남은 아들 표도르는 병약했고 후사가 없었다. 류리크 왕조가 끊기며 「동란 시대」가 온다.

【남은 것】 러시아어 별명 「그로즈니」는 「무서운」보다 「경외로운」에 가깝다. 영어로 Terrible이라 옮기면서 뜻이 한쪽으로 굳었다.

영토를 세 배로 넓혔고 중앙집권을 세웠다. 동시에 귀족을 없애 견제를 지웠고 농노제를 강화했다.

스탈린이 그를 높이 평가하고 영화를 만들게 했다. 강한 지도자가 필요할 때마다 이 이름이 다시 불려 나온다.

지도에서 보기: 153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코페르니쿠스 베살리우스 칼뱅 신사임당 이황 헨리 8세